고원 위에 쌓은 성채 ‘빅토리아 시타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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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 위에 쌓은 성채 ‘빅토리아 시타델’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10.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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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첫 수도 졸본성도 그러했듯 방어를 위한 요새

지중해 몰타를 가다④

시타델(Citadel)이라는 용어가 있다. 뜻은 요새또는 성채’, ‘도시라는 뜻이다. 대부분 높은 지대의 평평한 곳에 자리한 거대한 성채를 말한다. 높은 지대에 성채를 지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쟁 시 방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어원은 라틴어로 도시를 뜻하는 치비타(Civita)에서 나왔다.

오르막길 끝에 거대한 시타델의 성벽이 보인다. 사진=정연일
오르막길 끝에 거대한 시타델의 성벽이 보인다. 사진=정연일

로마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가면 치비타 베키아라는 항구가 나온다. 치비타는 도시 베키아는 오래된 곳이라는 뜻이다. 즉 오래된 항구 도시라는 뜻이다. 고대 라틴어 치비타는 이태리어로 Citadella, 불어 Citadelle, 영어로는 City로 분화되었다가 중세 이후에 Citadel로 정착한다. 아직도 이탈리아에서는 치타델라 Citadella라고 부르기에, 유럽 지역에서는 시타델, 치타델, 치타델라가 혼용된다.

시타델은 고유명사이기보다는 보통명사다. 시타델은 몰타 외에도 전 세계 곳곳에 있다. 요르단 암만에도 있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도 있다. 지어진 시기와 양식은 제각각 다르다. 우리 역사에서도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졸본성, 즉 만주에 위치한 오녀산성이 시타델이다.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졸본성 오녀산성. 사진=위키백과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졸본성 오녀산성. 사진=위키백과

남한산성 역시 시타델로 표기를 하나, 서양의 시타델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서 용어 재정립 논쟁이 있다. 시타델은 장소나 건축물을 지칭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양 문화에서 여러 형태로 애용되고 있다. 미국 드라마 제목으로도 유명하고, 여행 중에는 회사 이름이나 카페 식당 이름으로도 종종 보인다.


기원전 1500년 전부터 조성


빅토리아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시타델을 보기 위해서다. 몰타의 고조섬에서 고지대인 빅토리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시타델이 위치했다. 빅토리아 시타델의 역사는 기원전 1500년 전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높고 평평한 지형이다. 선사시대에도 사람이 모여 집단 거주하기 좋았을 것이다.

거대하고 육중한 빅토리아의 시타델.
거대하고 육중한 빅토리아의 시타델.

이후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기반을 뒀던 페니키아(카르타고)와 로마 제국 시대를 거쳤다. 지금의 형태는 오스만투르크와 그에 대항했던 요한기사단 (구호기사단)의 작품이다. 1600년대 초에 지었다. 투르크(지금의 투르키예, 터키) 뿐만 아니라 당시 지중해에서 활약했던 바르바리 해적을 견제하기 위해서 지었다.

빅토리아의 작은 광장에서 택시를 내리면 시타델로 가는 길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시타델이라는 표지판이 있기도 하지만 높은 곳으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광장의 길 건너편 골목 끝에 시타델의 거대한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오르막 길을 따라 올라가면 거대한 시타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시타델로 들어가는 입구에 시타델의 모형이 있다.

성문으로 들어서면 나오는 광장과 산타마리아 성당.
성문으로 들어서면 나오는 광장과 산타마리아 성당.

모형으로 먼저 구조롤 파악하고 들어가면 동선을 잡기에 편하다. 대부분의 성채 도시는 내부로 들어가는 주 출입구 하나와 성벽을 따라 보조 출입구가 몇 개 설치되어 있다. 빅토리아의 시타델도 마찬가지이다. 육중한 메인게이트로 들어가면, 외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광장이 나오고 광장 앞에는 성당이 있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유노(JUNO) 신전이 있던 자리에 지은 산타 마리아 성당이다. 17세기 몰타의 건축가 로렌초 가파가 바로크 양식으로 지었다. 바로크 양식을 알아 보는 방법은 쉽다. 외관의 장식이 화려하고, 건축물을 반으로 접는다고 가정했을 때 완벽한 좌우 대칭이 이뤄지면 대부분 바로크이다.

몰타의 트레이드 마크인 원색의 발코니 장식 모형.
몰타의 트레이드 마크인 원색의 발코니 장식 모형.

성당이 있는 광장을 지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다. 골목길을 따라 이어지는 기념품 가게 벽에 걸어놓은 몰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발코니 창 모형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길을 따라 계속 걸어 올라가다보면 시타델에서도 가장 높은 지점이 나온다.


360도 열린 기막힌 풍광


빅토리아의 시타델은 완전히 평평한 곳이 아니라 비스듬한 곳에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곳에서 보는 풍광은 정말 압도적이다. 가장 높은 곳에 지어졌기에 360도로 막힘이 없이 보인다. 멀리 지중해 바다도 눈에 들어온다. 성벽위에서 보는 풍광은 먼 곳 뿐만 아니라 시타델 내부도 아름답다. 지중해의 섬은 사암(limestone)으로 지은 건축물이 많다. 도시 전체가 누르스름한 연한 레몬빛을 띤다.

시타델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시타델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유럽의 요새와 성채는 대부분 홑겹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짓는다. 1차 방어선이 뚫리면 2, 3차에서 다시 방어할 수 있도록 지형을 이용해 겹겹이 두텁게 성벽을 세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오각형 육각형 모양이 많은 이유다. 유럽에서 가장 성채 요새를 잘 쌓은 곳은 동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던 베니스 공화국이었다.

그래서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지중해 일대 곳곳에서 베네시안 월(wall), 베네시안 포트리스(fortress)라는 안내문을 종종 만난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이 대표적이다. 베네시안 포트리스는 아시아에도 진출해, 청나라 말기에 대만 섬에 지은 것이 아직 남아 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대만을 지배했을 때 지은 질란디아 요새이다. 대만의 서쪽 타이난에 있다. 질란디아는 네덜란드 북쪽의 바다를 뜻한다. 뉴질랜드 지명의 어원이기도 하다.

시타델 주변의 풍경.
시타델 주변의 풍경.

빅토리아의 시타델도 가장 높은 곳의 성벽에서 내려다보니 역시 그렇다. 비스듬한 지형을 이용해 여러 겹으로 돌출형 성벽을 쌓았다.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면 다시 시타델의 주 출입구로 돌아온다.


보존이 아니라 복원 유적


처음 빅토리아의 시타델에 갔을 때는 이렇게 거대한 성벽이 원형이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어 감탄했는데, 두 번째 다시 찾았을 때는 80% 이상이 복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산타마리아 교회.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산타마리아 교회.

자세히 보니 원래 있었던 성벽의 아래쪽과 위쪽이 확연히 드러난다. 아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 아니구나. 안내판을 보면 유네스코 세계 유산 후보이지 세계 유산은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의 기준은 생각보다 깐깐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원형 보존이다. 서울 성곽 재보수와 경주의 유적 재보수가 이뤄지면서 유네스코에서 세계 유산 등재를 박탈하겠다는 경고가 이어지는 이유이다.

다시 광장으로 내려와 시타델 반대편 마을의 골목길로 들어가 본다. 기념품 가게와 카페등이 이어지는 골목길 초입은 유럽이 아니라 마치 인도나 중동 혹은 모로코나 튀니지 같은 북아프리카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암 건축물과 여러 문화가 섞인 몰타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리라.

빅토리아 구시가 골목 입구. 인도나 중동, 북아프리카와 비슷한 분위기다.
빅토리아 구시가 골목 입구. 인도나 중동, 북아프리카와 비슷한 분위기다.

골목길을 따라 깊숙이 걸어 들어가면 집집이 곳곳에 가톨릭의 성모상이나 성상으로 장식했다. , 여기는 기독교 문화권 유럽의 몰타지. 몸과 마음이 잠시 인도나 중동 북아프리카를 갔다가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 듯하다.

역시 두 번째 찾아서 그런지 골목도 깨끗하고 아름답지만 구석구석 관민 협동으로 정비된 느낌이다. 몰타의 주 수입원이 관광업이라는 사실이 다시 떠오른다. 아름답지만 너무 다듬어진 느낌이다. 개인적 취향은 조금 더 날 것의 분위기가 좋다.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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