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서 생사 엇갈린 美 유학생들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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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서 생사 엇갈린 美 유학생들 ‘그날’
  • LA=황상호 전문기자
  • 승인 2023.11.0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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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참사 다룬 ‘크러쉬’ VPN으로 무료 시청 가능
생존자 증언 따라 20대들의 일상 파괴된 순간 전해
휴대전화, CCTV 조각영상 더해져 전체 그림을 완성

미국 다큐멘터리 크러쉬 시청기

이태원 참사를 다룬 미국 다큐멘터리 크러쉬의 장면들. 사진=크러쉬 화면 갈무리.
이태원 참사를 다룬 미국 다큐멘터리 크러쉬의 장면들. 사진=크러쉬 화면 갈무리.

미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파라마운트플러스가 이태원 참사 1주년을 맞이해 해당 사건의 자초지종을 다룬 다큐멘터리 크러쉬(Crush)를 공개했다. 하지만, 독립 제작사가 파라마운트플러스 미국하고만 영상 공급 계약을 맺어 한국에서는 시청할 수가 없다. 다만, 국내 시청자는 가설사설망(VPN)으로 우회해 접속하면 이 다큐멘터리를 일정 기간 무료로 볼 수 있다.

다큐는 ’1편 골목(The Alley)‘2군중(The Crowd)‘으로 구성해 있다. 각각 약 45분이다. 2017년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11(11Minutes)’을 연출한 제프 짐발리스트가 또 다른 도시 참극을 영상에 담았다.

카메라는 빠르게 달리는 도시 전철과 길게 늘어선 고가다리, 하늘에 닿을 듯 우뚝 솟은 롯데타워를 비춘다. 그 직선의 이미지는 바로 폭 4m, 길이 50m의 이태원 골목으로 향한다. 마치 신이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듯 좁은 골목길을 위에서 아래로 조망한다.


유학생 아리아나의 시선으로


다큐는 미국 유학생의 증언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누가, , 그날, 이태원에 갔는지 말이다. 남미 혈통의 유학생 아리아나 이바라는 미국 뉴멕시코주 출신이다. 한국 문화를 좋아했고 부모로부터 얼마나 떠나 살 수 있는지 궁금했던 20대 여성이다.

영상은, 그들이 얼마나 평범한 보통 인간이었는지 나열한다. 고궁에 가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전통시장에 가서 길거리 음식을 먹는다. 제주도에서 귤을 먹는 정도가 특별하다고 할까.

참사가 있었던 그날 역시 보통의 하루였다. 이바라와 친구들은 오전에는 서울 남산타워에 갔고, 작은 엽서에 손편지를 써 가족에게 보냈다. 이바라는 룸메이트인 앤을 어렵게 설득해 저녁 시간 이태원에 갔다. 앤은 생전 술집 한 번 가본 적 없던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날 압사당한다. 한국, 여느 바다를 보며, 신에게 깊은 감사를 보하던 유학생이었다.

이어 다큐는 한국인 생존자를 통해 이태원이라는 장소를 설명한다. ‘서울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주현 씨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것을 좋아해 이태원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그날도 적당히 유령처럼 보이는 흰옷을 입고 이태원에 갔다고 했다.

또 다른 생존자인 김초롱 작가는 갑갑한 유교 사회에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곳이 이태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밤 문화에 성소수자, 외국인이 많이 다니는 이태원을 싸잡아서 욕하기 좋은 장소라며 요약했다. 다큐는 또 팬데믹 시기 바이러스 확산지로 지목됐던 이태원의 과거를 짚는다.


기성세대의 발언은 무기력


휴대전화와 폐쇄회로TV에 녹화된 다양한 영상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지하철 안에서 밖으로, 이태원역에서 골목길로, 그 전 과정을 영상 조각으로 붙여, 전체 그림을 완성한다. 다큐는 다소 연극적이다. 골목이라는 제한된 무대에, 다양한 각도의 카메라가 피해자와 목격자를 촬영하고 있다. 작은 몸짓에도 그들이 느꼈던 당혹스러움, 절망감, 낙담 등 온갖 감정을 전달받는다. 이 때문에 현실판 트루먼 쇼같은 기분마저 든다.

다큐는 시간대별로 참사 상황을 전한다. 비극이 발생하기 전 수많은 신고가 소방 당국에 접수된 점, 조치가 늦는 상황, 혼란스러운 구조 현장, 시신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습이 연이어 나온다. 다큐는 잔인한 장면 최대한 자제해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신이 천에 덮여 있는 장면은 피할 수 없다. ,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참사 후 책임 회피로 일관한 한국 정부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다큐의 첫 질문. 정부는 왜 참사를 예방하지 못했는지 꼬집는다.

흥미로운 점은 참사의 해결책을 50~60대에게 묻지 않는다.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기성 언론이 아닌 온라인 독립 매체 뉴스타파에 묻고, 제도적 해결책을 초선의원인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에게 질문한다. 다큐에 등장하는 차명일 중앙응급의료센터 상황 팀장과 최한조 재난의료팀장의 발언은 사실상 무기력하다.

오로지 한 명의 어른, 이태원 옷 가게 사장님의 사과만이 시청자를 위로한다. 그러면서, 다큐는 이태원 참사를 세월호 비극과 연결짓는다.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세대가 기성세대에게 당한 참극이라 말한다. 다큐는 책임이 있는 정부 기관이 인터뷰를 모두 거부했다고 끝을 맺는다. 또다시, 크러쉬다.


LA 이태원 추모식희생자 차례로 호명

1028, 종교인 한인 60여 명 참석해서 애도

정부 향해 공식 사과, 참사 원인 정확히 밝혀야

 

이날 집회는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 등 종교인들이 주도했다.
이날 집회는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 등 종교인들이 주도했다.

1028(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한민국 총영사관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미주 서부지역 진보단체인 엘에이포세월(LA4Sewol)LA진보네트워크, LA촛불행동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기억, 추모 그리고 진실을 위한 다짐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 등 종교인들이 참석해 다양한 종교의식으로 진행했다. 김요한 세인트제임스성당 신부는 희생자를 향해 너희들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한국 정부는 책임자를 처벌하고 철저히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어, 박상진 목사는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대참사를 불러놓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윤석열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10월 28일 미국 LA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집회. 사진=황상호
10월 28일 미국 LA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집회. 사진=황상호

이날 추모식 참석자들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보라색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하라”, “국가책임 인정하고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등의 문구를 쓴 피켓을 들었다.

이어 사회자 김미라 씨는 영정 사진을 추모제에 걸지 못했던 지난해 상황을 비판하며 희생자 15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김 씨는 우리는 그 이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그들이 편안한 곳에서 쉴 수 있도록 애도하는 시간을 갖자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국화를 헌화하거나 손푯말을 들고 요구사항을 외쳤다.
참석자들은 국화를 헌화하거나 손푯말을 들고 요구사항을 외쳤다.

추모제에 참석한 하이디 씨는 젊은이들이 축제를 즐기려고 길을 걷다가 목숨을 잃는다는 게 말이 되냐인파가 많이 모일 것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미리 배치해서 통제하지 못한 한국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현장을 지나가던 다른 인종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뉴스에서 이태원 참사를 본 것이 기억난다끔찍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며 희생자를 함께 애도했다.

추모제는 추모 편지 낭송과 헌화와 분향, 촛불 밝히기 등 3시간가량 진행됐으며 미주 한인 60~70명이 참석했다. 미주 한인들은 앞서 1022일에도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온라인 추모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이 참석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진상 규명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황상호

글 쓰는 사업가다. 청주방송(CJB)기자에 이어 미국 현지 중앙일보에서 신문기자를 했다. 이후 미국 인권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다, 현재 LA 컬처 투어리즘 업체 ‘소울트래블러17’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오프로드 야생온천>, <내 뜻대로 산다>,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벼랑에 선 사람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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