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의 공화국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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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의 공화국 거리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12.0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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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언론인의 죽음과 몰타의 법원
0. 발레타의 공화국 거리 Republic St. 사진=위키피디아
0. 발레타의 공화국 거리 Republic St. 사진=위키피디아

지중해 몰타를 가다 ⑩

카라바조의 그림이 있는 성 요한 공동대성당을 나와 발레타의 번화가인 공화국 거리(Republic st)로 접어든다. 발레타의 성문(Gate)부터 바다로 향해 돌출한 반도의 끝 성 엘모(St Elmo) 요새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1km 정도 거리의 보행자 전용 길이다. 애초의 이름은 왕의 거리였으나 근대 이후 공화국 거리로 바뀌었다. 공화국 거리를 따라 발레타의 주요 건물과 상업 시설이 밀집해 있으니, 발레타의 중심거리라 할 만하다. 성 요한 공동대성당과도 붙어있다.

공화국 거리와 대성당의 측면 벽에 있는 작은 광장에 1565년 오스만 튀르크의 몰타 포위 공방전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있다. 조형물 앞에는 어느 여성을 추모하는 듯 여러 장의 사진이 놓여있다.

 

몰타 포위 공방전 기념 조형물 앞은 2017년 암살 당한  몰타의 언론인 다프네의 추모 장소로 바뀌었다. 사진=정연일
몰타 포위 공방전 기념 조형물 앞은 2017년 암살 당한 몰타의 언론인 다프네의 추모 장소로 바뀌었다. 사진=정연일

정의(Justice)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와 누구인지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해 보니,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라는 이름의 몰타의 언론인이자 블로거였다.

1964년 몰타에서 태어나 2017년 몰타에서 암살당했다. 사망원인은 자신의 자동차에 설치된 폭탄이었다. 다프네는 정치권과 연관된 몰타의 부정부패를 주로 폭로했다유럽인 것을 참작한다면 몰타의 부패지수는 예상보다 높다. 2022년 기준으로 세계 55위다. 아프리카의 르완다와 같은 수위다. 중미의 그레나다가 오히려 몰타보다 높다.

유럽의 부패지수는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낮아지고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높아진다. 특히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남부 유럽은 특유의 혈연 지연 중심의 집단문화 때문에 더 그렇다. 몰타뿐만 아니라 그리스 등 발칸반도의 나라도 그렇다.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공개조사 (파나마 게이트)를 요구했을 뿐이다라는 문구가 자물쇠에 프린트되어 있다.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차량 폭탄테러 였다. 사진=정연일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공개조사 (파나마 게이트)를 요구했을 뿐이다라는 문구가 자물쇠에 프린트되어 있다.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차량 폭탄테러 였다. 사진=정연일

신대륙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달리 구대륙 유럽은 이민 제도가 없지만,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와 키프로스는 투자 이민제도가 있다. 한화로 10억 원 이상 투자하면 몰타 시민권과 몰타 여권을 바로 부여받을 수 있다. 이중국적을 허용해서 기존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몰타는 유럽연합 EU에 속해있어, 몰타 시민권을 받는다는 것은 유럽연합 26개국 안에서 자유로운 이동과 거주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중국적을 파는 나라


여행의 목적만으로도 유럽연합 지역을 방문하려면 매번 비자를 받아야 하는 저개발국 출신의 부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주로 중국 러시아 중동 아프리카 출신들의 부자가 몰타의 시민권을 획득하고 부동산을 사들여, 최근 몇 년 몰타의 부동산 가격이 로켓처럼 올랐다. 이는 유럽연합에는 큰 골칫거리다. 몰타의 투자이민 정책이 국적 장사라고 비난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몰타 법원 건물 사진=위키피디아
몰타 법원 건물 사진=위키피디아

이미 숱한 살해 협박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다프네 갈리지아는 몰타의 투자이민 제도에 얽힌 부정부패뿐만 아니라 몰타의 고위 권력층이 얽힌 권력형 부정부패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집요하게 폭로했다.

사망 직전 가장 큰 폭로는 의원내각제인 몰타의 최고위 권력자인 총리와 총리 부인이 연관된 파나마 게이트였다. 조세회피 지역인 파나마에 있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총리의 가족이 소유한 회사를 폭로한 것이다. 그리고 곧 자신의 자동차에 설치된 폭탄으로 인해 폭사했다.

1776년 문을 연 몰타 국립도서관
1776년 문을 연 몰타 국립도서관

 

다프네를 추모하는 사진이 놓인 곳의 위치를 생각해 보니 정말 절묘하다. 몰타의 지리적 위치는 유럽보다 북아프리카가 가깝고, 이슬람의 지배와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이슬람이 아닌 유럽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게 된 역사적 사건이 오스만 튀르크의 몰타 포위 공방전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결국 몰타를 함락시키지 못했다. 몰타가 함락당했더라면 지금의 몰타의 모습은 유럽보다 북아프리카 이슬람권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다프네의 사진이 놓인 곳은 몰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1565년의 몰타 포위 공방전 기념 조형물 앞이다. 조형물 뒤로 몰타의 또 다른 정체성의 근원이자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인 성 요한 공동대성당이 있다. 공화국 거리 건너편 조형물 맞은편에는 몰타의 법원(Courts of Justice)이 있다.

1837년에 개업한 카페 코르디나. 국립도서관 맞은 편에 있다.
1837년에 개업한 카페 코르디나. 국립도서관 맞은 편에 있다.

다프네의 사진이 놓여있는 몰타 공방전 기념 조형물 하단의 정의라는 문구가 몰타의 정의를 몰타의 법원에 촉구한다는 중의적 의미를 띄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거리의 이름도 공화국 거리다. 권력형 부패는 공화정의 적이다.

바로크 스타일 국립도서관


공화국 거리를 따라 조금 걸으면 바로크 스타일의 외관이 아름다운 몰타 국립도서관이 나온다. 1776년 요한 기사단의 단장이 세운 도서관이다. 도서관 맞은편에는 1837년에 개업한 카페 코르디나(Caffe Cordina)가 있다.

 

요한 기사단 단장의 궁.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 중이다. 사진=픽사베이
요한 기사단 단장의 궁.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 중이다. 사진=픽사베이

유럽의 오래된 도시에서 종종 만나는 오랜 역사의 카페처럼 발레타의 카페 코르디나도 내부가 고전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염불보다 잿밥이라는 말처럼, 함께 여행하는 일행들은 도서관보다 카페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유럽의 오래된 카페는 그 유명세 때문에 의도하지 않게 관광지화된 곳이 많다. 파리 베니스 비엔나 그리고 최근에는 부다페스트의 카페가 그렇다. 대부분 외지인 여행자 관광객으로 너무 붐비고 심지어 입장을 하려면 몇 시간 줄을 서야하는 경우도 있다.

 

기사단 단장 궁의 내부 . 사진=픽사베이
기사단 단장 궁의 내부 . 사진=픽사베이

커피값을 비롯한 음식값도 너무 비싸서 투어를 진행할 때는 소개는 하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피하는 편이지만, 발레타의 코르디나는 그리 붐비지 않고 커피값도 그렇게 비싸지 않다.

, 이렇게 오래되고 아름다운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고 나와서 역시 오래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해질 무렵이면 어퍼 바라카 가든에서 로어 바라카 가든까지 바다를 따라 산책을 하면 정말 좋겠구나. 몰타 영주권이 얼마부터 시작한다더라? 국적 장사를 비난했던 마음이 금새 바뀐다. 내가 하면 여행 남이 하면 관광, 뭐든지 내로남불이 되기 십상이다.

초대 기사단 단장인 '장 파리조 드 라 발레트' 의 동상. 유럽의 동상 중에서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으면 그 도시의 설립자나 입안자이다.
초대 기사단 단장인 '장 파리조 드 라 발레트' 의 동상. 유럽의 동상 중에서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으면 그 도시의 설립자나 입안자이다.

도서관을 지나면 몰타의 지배자였던 성 요한 기사단 단장(Grand Master)의 궁이 나온다. 몰타의 수도인 발레타라는 이름은 초대 기사단장의 이름 장 파리소 드 라 발레트(Jean Parisot de la Valette)에서 유래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몰타 의회로 사용되었다가 2015년 이후엔 몰타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몰타는 의원 내각제라 대통령을 의회에서 선출한다.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 중이지만, 기사단장의 궁은 관광객에게도 개방하나 보수공사 중이라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유럽의 문화재 보수공사 기간은 짧아도 최소 몇 년은 걸린다. 천천히 하지만 매우 꼼꼼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성 엘모 요새로 공화국 거리는 계속 이어진다.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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