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의 아픈 역사 지나 미래로 가는 익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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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의 아픈 역사 지나 미래로 가는 익산역
  • 신용철 전문기자
  • 승인 2023.12.09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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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종교 등 수십 개 관광지 보유하고 있는 관광도시
지역민이 추천한 아가페정원과 순환형 익산 시티투어 강추

신용철의 철길 따라-전북 익산역

철도밥을 먹기 전까지 아니 소위 철도덕후로 성장하고자 철도에 관심을 가지기 전까지는 익산역이 인근 전주역이나 군산역보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신기하고 좀 이상하게(?) 느껴졌을 뿐.

지역의 상징인 보석을 형상화한 익산역 전경. 사진=신용철
지역의 상징인 보석을 형상화한 익산역 전경. 사진=신용철

그런데 이번에 12일간 익산여행을 하며, 익산의 철도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됐다. 가슴 한편 어딘가에 뭔지 모를 씁쓸함 그리고 분노와 함께 말이다.


이제는 이리역 아닌 익산역


익산역은 옛 세대들에게 아직도 이리역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연식이 있는 분들이 지금의 한국철도공사를 철도청으로 부르고, 공기업 직원이 아닌 공무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철도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전국 360여 개역 철도스탬프 가운데 익산역 공간에 철도스탬프를 찍고 있다.
한국철도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전국 360여 개역 철도스탬프 가운데 익산역 공간에 철도스탬프를 찍고 있다.

익산역은 지난 19123, 호남선(대전-이리 간) 및 군산선 개통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오늘날엔 호남선과 전라선, 장항선이 교차하는 곳으로 가히 트리플 전국 기차선 역세권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20154월부터는 호남고속선까지 개통되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기차선이 만나는 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호남에서 가장 바쁜 역사이며 한국철도공사 전북본부도 익산시보다 인구 규모가 큰 인근 전주시나 군산시가 아닌 이곳에 있다.

197711, 역사 인근에서 안타까운 폭발사고가 발생해 이듬해인 197811, 역사를 새롭게 준공했고, 익산군과 통합으로 지역명이 이리시에서 익산시로 바뀌며 19959월 역명도 이리역에서 익산역으로 변경했다. 20081월 장항선의 종착역이 되었으며 20159월부터 2층이 없는 4층 건물로 이 지역의 상징인 보석을 형상화한 선상유리궁전으로 역사를 준공해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호남·전라·장항 트리플 역세권


우리나라 최초의 경편 사설철도였던 전북경편철도는 1927년 국유화 이전까지 당시 이리-전주 간을 운영하며 높은 수익성을 자랑하던 철도였다. 이후 전주에서 순천을 거쳐 여수까지 연결하며 지금의 전라선을 만들었다.

익산역 앞에 만들어진 여러 철도조형물들.
익산역 앞에 만들어진 여러 철도조형물들.

기실 익산역이 오늘날 국내에서 이렇게 활발한 역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뒤에 좀 더 서술하겠지만 일제의 아픈 착취 역사와 맞닿아 있다. 1927년 자료에 따르면 옛 이리역은 호남선에서 가장 많은 여객을 취급하고 있었으며 화물의 경우도 목포역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70%가 바로 일본 본토로 향하는 쌀이었다고 한다. 1937년 전라선이 개통되면서 그 당시 건평 330평 규모의 대형역사로 지어진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익산역 앞에 만들어진 여러 철도조형물들.
익산역 앞에 만들어진 여러 철도조형물들.

익산역사를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중앙시장 쪽을 향해 걷다 보면 철도에 친화적인 익산시의 수많은 철도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조형물은 유라시아 대륙철도 (가상)승차권 조형물이었다.

익산역이 유라시아 대륙철도 거점역이 되길 기원하는 의미로 제작된 조형물로 고속철도와 일반철도가 동시 정차하며, 장항선과 전라선 등의 노선분기결절점인 익산역의 지리적 강점을 살려 유라시아 거점역으로 육성시키는 바람을 담아 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조형물에 언급된 78일은 백제 역사유적지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일을 의미하며 익산-런던 간 소요일 수 11일은 이 지역의 자랑인 국보 제 11호 미륵사지 석탑을 상징한다. 좌석번호 6호차 28A는 철도의 날인 628일은 의미하며 95510원의 운임요금은 익산군과 이리시의 통합 연월일을 상징적으로 표기했다.


익산서 만난 뜻밖의 맛


42교대로 야간근무를 하고 바로 내려온지라 몹시 출출했다. 익산을 본격적으로 여행하기에 앞서 오래된 풍경과 현대식 시설이 교차하는 역 앞 중앙시장에서 요기 할 식당을 찾다가 ‘since 1980’가 적힌 간판에, 음식 내공이 느껴지는 한 식당을 발견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주던 칼국수 맛과 아주 비슷해 순간 코끝이 시큰해졌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어릴적 끓여주신 칼국수가 생각나 순간 코끝이 시큰했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어릴적 끓여주신 칼국수가 생각나 순간 코끝이 시큰했다.

식사를 마친 후 익산시 관광안내도를 펼쳤더니 수십 개의 관광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많은 관광지 가운데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머금고 있는 춘포역사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 오늘날에는 관광지가 된 한 역사가 더욱 눈에 들어왔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이 신용철의 철길 따라작가로서 또 철도덕후로 거듭나고 있는 이로서 차마 이곳을 지나칠 수 없는 일. 바로 시내·외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며 그곳으로 향했다.

이제는 폐역이 된 춘포역사 전경
이제는 폐역이 된 춘포역사 전경

버스 기사님도 잘 모르는 그 옛날 화려했던 춘포역은 여느 시골 폐역들이 그렇듯이 이제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서 서서히 잊혀 가는 듯했다! 지역관광지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거의 관광객의 발길이 없는 곳에서 홀로 잠시 머물며 그때 그 시절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1914년부터 2011년까지 거의 100년 가까이 기차가 다녔던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간이역이자 폐역인 춘포역. 그 옛날 일제는 이 지역 부근의 넓은 평야에서 농사지은 쌀을 수탈해 이곳 대장역(현 춘포역)을 거쳐 군산항을 통해 본국으로 보냈다. 춘포 간이역사에 앉아 그 시절 고생하고 고통 받던 조선 농민들의 심정을 생각했다.


춘포역의 아픔을 간직하다


내친김에 춘포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만경강 일대를 주름잡은 대지주 호소카와의 농장에서 기계 담당 직원이었던 에토가 1940년 무렵에 지은 호화로운 2층 목조건물로 향했다. 가서 직접 보니 국내에서 보기 힘든 잘 보존된 일본식 2층 목재가옥이었다.

옛 일본인 농장가옥.
옛 일본인 농장가옥.

이 작은 마을에서는 일본인 대지주 밑에서 가난을 벗어나고자 이곳으로 온 일본 농민들과 그들에게 부림을 당한 더 가난한 조선 농민들이 적대적 공존관계로 해방되기 전까지 함께 어색하게 살아갔다. 유한한 12일의 시간 동안 익산에서 가고픈 관광지가 많은지라 마음은 조금 급해지지만, 익산의 한 외곽 시골 마을에서 왜 그런지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랑 가득한 아가페정원


다음 여행코스로 익산에서 태어나 현재까지도 사는 토박이 지인이 추천해 준 아가페정원 관광지로 향했다. 아가페정원은 메타세쿼이아, 섬잣나무, 공작단풍 등 수목 171416주가 등재된 전라북도 제4호 민간정원이다.

무료개방 정원인 아가페정원에 뻗어있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무료개방 정원인 아가페정원에 뻗어있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1970년에 고 서정수 신부가 노인복지시설인 이곳 아가페정양원을 설립해 시설 내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자연친화적인 수목정원을 조성했다. 2013년에 민간정원으로 등록한 뒤 정비사업을 거쳐 지금은 시민들의 무료쉼터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 정원을 조용히 홀로 걷고 산책하며 어느 노 신부의 한땀 한땀 큰 노력이 깃든 공간을 아낌없이 내준 아가페정양원과 익산시청 관계자들께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건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1000원의 행복을 맛보다


익산여행 이튿날은 작정하고 순환형 익산 시티투어 버스를 몸을 실었다. 특별히 올해는 익산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2023 익산 방문의 해를 맞아서 그런지 시티투어 버스비용이 정거장 앞에 적혀 있는 4000원이 아닌 단돈 1000원이었다.

‘1000원의 행복’을 경험시켜준 순환형 익산 시티투어와 시간표.
‘1000원의 행복’을 경험시켜준 순환형 익산 시티투어와 시간표.

익산역 앞에서 10시 첫차로 출발해 원불교종부고스락교도소세트장미륵사지왕궁리유적보석박물관 등을 각각 1시간씩 관광하고 다음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1755분에 다시 익산역으로 돌아올 때까지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그야말로 ‘1000원의 행복이라고나 할까. 위에 언급한 관광지들 가운데 너무도 의미 있고 가치가 있는 곳들이 많기에 이곳에 소개하고 싶으나 지면 관계상 쓰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 그에 대한 각자의 관람평을 몫으로 남기며 필자는 이제 다음에 갈 철도여행 지역과 관광지를 생각하고 있다.

●신용철

월간 ‘말’에 이어 ‘충청리뷰’, ‘제주신문’ 등에서 10여 년 동안 다양한 기자생활을 경험했다. 제주도에 꽂혀 7년 동안 자연과 벗하며 살다가 지금은 어쩌다 철도노동자의 길을 가고 있다. 이른바 ‘철도덕후’가 되고자 퇴직 전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역을 방문하리라 계획하고 있으며, 먼 훗날 퇴직 후엔 전 세계로 기차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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