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금서를 허許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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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금서를 허許 하라!
  • 천정한 문화잇다 대표, 전북대 문헌정보학과 외래교수
  • 승인 2023.12.1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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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도서관 계()에 금서 논쟁이 뜨거웠다. 보수개신교단체에서 일부 성평등, 성교육 도서의 선정성과 성인식 왜곡 등을 이유로 해당 도서의 도서관 열람 대출을 막고 보유 서가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금서 지정 및 검열 활동을 펼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게다가 일부 국회의원과 지자체, 교육청이 각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에 해당 도서의 비치 실태조사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는 도서관에 대한 사실상 검열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이 지목한 도서들은 모두 간행물윤리위 심의를 마쳤고 여성가족부 선정 나다움 어린이 책목록에 있을 뿐 아니라 국내 출판 독서전문가와 해외에서 좋은 평을 받은 교양서들이었다.

성평등과 성 인권 책들을 충분한 숙의 없이 마치 조기 성애화를 부추기는 음란 도서로 낙인을 찍은 것도 문제지만 도서관을 대상으로 특정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열람 대출 제한과 폐기하도록 한 것은 도서관의 목적과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이다.

도서관법 제1, 2조에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자유롭고 평등한 접근과 이용을 위하여 도서관의 공공성과 공익성 보장을 기본 이념이라 명시하고 있다.

그에 앞서 헌법은 언론, 출판을 통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전 검열을 금지함으로써 민주주의 사회에 기본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사상적 이해관계로 도서관에 도서 검열과 정보접근 제한을 강요해 온 사례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빈번하게 발생해왔다. 2008년 국방부가 불온도서 28권을 지정해 큰 파장이 일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함께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

얼마 전 현 여당 의원은 전국 교육청으로 공문을 보내 학교도서관에 세월호 관련 도서나 박원순, 손석희 같은 특정 인물의 책 보유 현황 자료를 요청해 학교 비치 도서로 정치적 성향을 검열하려 하기도 했다. 경기도 일부 공공도서관에서는 정치편향을 이유로 특정 도서를 금서 목록에 올려놓고 이용자들의 희망 도서를 배제한 일도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 내 보수우파들을 중심으로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 흑인 인종차별,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도서를 도서관에서 없애려는 검열, 금서 운동과 유사하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권력자들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기록만 남기고 그 반대의 사료들을 없애고 조작했던 일들을 기억한다. 이는 역사왜곡과 더불어 학문, 사상의 퇴행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도서관은 특정 이념에 갇혀 있기보다 정보와 사상의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학문과 사상이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하고 헌법적 기본권인 알 권리와 지식정보에 모든 사람들의 평등한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자료수집과 선정을 업무로 하는 사서들이 도서관 내외부의 간섭과 압력로부터 자기검열 하지 않고 다양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알 권리와 지적 자유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도서관을 대상으로 한 금서 지정과 도서 폐기 압력은 사서들에게 스스로 검열하게끔 만들고 결국 이용자들에게 제한되고 편향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누구나 어디서나 무엇이든 읽을 권리, 어떠한 정보에도 자유롭게 접근해 알 수 있는 권리, 사상과 학문에 있어 언제든 탐구할 수 있도록 할 권리, 이런 민주주의 시민권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 모두의 행동이 필요한 때다. 도서관에 금서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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