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천하어천하의 겨울, 시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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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하어천하의 겨울, 시골은…
  • 장인수 시인, 국어교사
  • 승인 2023.12.13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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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눈이 온 세상을 덮으니 아름다운가, 혹독한가?

혹독한 아름다움의 계절!


시골살이를 하다 보면 겨울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들판을 걷다가 무릎 꿇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하고, 아름다움이 한순간에 조각나기도 한다.

우리 집은 마당과 텃밭에도 수도가 있다. 동파 방지를 위해 두꺼운 보온재와 보온 테이프를 동여맨다. 수도꼭지 커버를 씌운다. 그래도 꽝꽝 얼어버릴 때가 많다. 텃밭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생무가 땅속에 보관되어 있고, 겨울 대파와 시금치가 파릇파릇 자라고 있다.

텃밭의 마늘은 얼지 않도록 왕겨를 깔고, 부직포를 씌웠다. 시설 딸기 재배 중인 이웃 동네 농사꾼은 작년에 북극발 한파와 폭설로 딸기밭 비닐하우스가 엿가락처럼 휘어졌었다. 올해는 특히 혹한기 난방비와 시설물 관리비가 껑충 올라서 걱정이 태산이다.

새벽에 진눈깨비가 날리면 시골 노인들은 무척 위험하다. 현관 계단이나 마당, 골목의 얼음판이 진눈깨비에 가려져서 낙상을 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배차꼬갱이와 동치미의 계절!


허리와 무릎 수술을 연달아서 하신 82세 엄마가 갑자기 겨울 벌교 새꼬막을 드시고 싶다고 해서 벌교 꼬막을 3kg 사서 삶았다. 탱탱하다. 오십이 넘은 아들은 꼬막무침을 잘 만든다. 내일 병실에 계신 엄마에게 드릴 것은 남기고, 나머지는 아버지랑 먹는다. 엄마가 수술과 재활 치료까지 한 후 퇴원하게 될 3주 동안 아버지는 시골에서 혼자 지내야 한다. 엄마는 현관 마루에서 1m 밑의 마당으로 주저앉듯이 뒹굴어서 척추가 고장이 났다. 이미 고장 나 있던 무릎도 더 고장이 났다.

아버지 혼자 밥해 드실 수 있겠어요?”

걱정하지 마라. 하루 세끼 맛있게 해 먹을 거다.”

혼자 계시면 적적하시겠어요.”

절간도 아닌데 뭐가 적적하니? 개와 고양이도 있으니 적적할 것 하나도 없다.”

! 그렇군요. 짝짝짝! 83세 아버지랑 소주 두 병을 비운다. 명랑한 83세의 아버지는 룰루랄라 혼자 사는 법을 터득하시겠구나. 설거지를 혼자 다 하시겠구나.

다음 날 아침, 병원에 가기 전에 전화를 드리니 배차꼬갱이도 먹고 싶단다. 탱글탱글한 꼬막무침과 비닐하우스에 있는 배추를 반으로 잘라 노오란 배추 고갱이를 가지고 병원에 갔다. 엄마는 배추 고갱이에 꼬막무침을 올려 아삭아삭 씹어 드셨다. 걸신들린 듯 아삭거리는 엄마를 기특한 듯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 후로도 매일 전화를 하면 배차꼬갱이가 제일 맛있다고 하신다. 그러더니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전화를 드리니 얼음 살짝 언 동치미를 먹고 싶다고 했다. 장자(莊子)천하는 천하로 품어야 한다(藏天下於天下)’고 했다. 온 세상을 품으며 눈 내리는 풍경이 그와 같으리!

눈발은 하늘이 내려주는 경악할 선물이며, 열락(悅樂)의 습격이며, 고공의 윤무(輪舞)이며, 카오스의 엔트로피! 세상의 바탕을 하얗게 칠하기 위한 회사후소(繪事後素)의 성품으로 내리는 눈발!

동치미를 퍼서 병원에 가니 엄마는 쪼름한 무와 삭은 청고추를 함께 씹으면서 찬 국물을 벌컥벌컥 드시고 트림을 하셨다. 대저 천하의 생취(生趣)와 천지만물의 비의(秘義)를 품고 내리는 눈발이 병원 창밖으로 펼쳐진다. 청주 성모병원 창문 밖은 미호천 평야가 펼쳐져 있다.

엄마 병문안을 마치고 시골로 가서 들판으로 들어선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어디선가 신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겨울은 마을회관과 노인정의 풍경이 최고!


엄마는 3주 만에 퇴원했다. 퇴원하기 전에 엄마의 침대를 좀 더 낮은 것으로 바꾸었다. 노인 전동스쿠터도 샀다. 현관 마루와 계단에는 푹신푹신한 매트를 깔았다. 엄마는 강인한 의지로 지팡이 없이 절뚝거리며 걷는다. 나는 직장에 다니느라 다시 성남으로 올라왔다. 매일 전화를 드린다.

허리 어떠셔요? 다리는요? 혈압은요? 물리치료는 잘 받고 계세요?”

으응, 괜찮혀. 내 차례여.”

핸드폰 건너편 엄마가 건성으로 대답한다. 분명 딴짓하면서 핸드폰을 받는 것 같다. 그러더니 갑자기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홍단에 초단이요.”

아하! 엄마는 지금 마을회관에 모여 화투를 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거 득점 타이밍이었구나. 하하하, 그래도 아들 전화를 건성으로 받으시다니! 그런 엄마가 괜히 고마웠다.

진천군에서는 마을회관이나 노인정마다 쌀, 닭고기, 찐빵, 국수 등을 군에서 공짜로 보내준다. 노인들은 매일 모여서 만두, 칼국수, 떡국을 겨우내 해 먹는다. 요가와 체조와 웃음 등 건강 운동 강사가 오셔서 노인들의 건강을 돌본다. 강사는 치매 예방에 고스톱이 치고라며 함께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인정이 넘치는 풍경은 노인들의 쉼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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