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디나에서 만나는 사도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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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디나에서 만나는 사도 바울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12.1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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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등 곳곳에 남아있는 전도여행 발자취

지중해 몰타 여행 ⑪

임디나(Mdina)는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서 서쪽으로 15km 정도 거리에 있다. 발레타와 고조 섬의 빅토리아처럼 오래된 요새 도시다. 발레타에서 임디나로 가는 방법은 택시와 시내버스 외에도 빈티지 버스가 있다. 일종의 셔틀버스인 셈이다.

몰타의 빈티지 버스. 사진=정연일
몰타의 빈티지 버스. 사진=정연일

마치 오래된 미국의 스쿨버스 같은 외양에서 복고풍이 물씬 느껴지는 몰타의 옛 교통수단이다. 몰타를 찾는 관광객을 위해 복원한 레트로 상품이다. 요금도 시내버스와 비교하면 그리 비싸지 않아 한 번은 타 볼만하다.

발레타의 메인 게이트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향하는 데 마침 빈티지 버스가 보인다. 빈티지 버스는 시간표가 있지만, 승객이 차야 출발하는 방식이다. 시간표보다 승객의 수가 더 중요하다. 우리 일행이 모두 탑승하니 좌석이 거의 다 차버렸다. 버스 기사는 출발시각까지 조금 시간이 남았는데도 시동을 건다. 시간표에 구애받지 않고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지중해 방식이다.

멀리서 본 임디나의 전경. 왼쪽의 거대한 돔은 바울 대성당이다. 사진=정연일
멀리서 본 임디나의 전경. 왼쪽의 거대한 돔은 바울 대성당이다. 사진=정연일

빈티지 버스는 셔틀이기에 시내버스와 달리 중간 정류장에 서지 않고 임디나를 향해 택시처럼 달린다. 발레타를 떠나 30분 정도 지나니 멀리 언덕 위의 요새 도시 임디나가 한눈에 들어온다.

처음에 봤을 때 기시감이 든 이유는 멀리서 본 전경이 마치 이탈리아 중부지방 토스카나의 오르떼(Orte)나 오르비에토(Orvieto) 같기 때문이다. 빈티지 버스는 임디나의 성문 입구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줬다.

하늘에서 본 임디나. 사진=위키피디아
하늘에서 본 임디나. 사진=위키피디아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대부분의 요새 도시가 그렇듯, 임디나 역시 안으로 들어가려면 깊고 거대한 해자 뒤의 주 성문을 지나야 한다. 해자 위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 성문을 통과 후 길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른편에 꽤 큰 광장과 광장 앞의 대성당이 보인다. 몰타의 주교좌 성당(Cathedral)인 성 바울(St Paul) 성당이다.

 

바을, 폭풍 만나 몰타에 상륙

 

신약 성서의 많은 부분을 집필했고, 예수의 사후에 가장 많이 전도 여행을 떠나 초기 기독교 전파에 큰 공을 세운 사도 바울은 몰타에도 발자취를 남겼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 전도 여행에서 그리스의 크레타 섬을 거쳐 로마로 향하던 배가 폭풍을 만나 몰타섬에 상륙한다. 신약 성서 사도행전에 멜리데라고 나오는 섬이 지금의 몰타이다. 바울의 몰타 상륙과 체류에는 바울이 행한 여러 이적의 얘기가 전한다.

임디나 주 성문으로 들어가는 돌다리. 다리 아래엔 넓고 깊은 해자가 있다.
임디나 주 성문으로 들어가는 돌다리. 다리 아래엔 넓고 깊은 해자가 있다.

바울이 몰타에 상륙했을 때, 몰타의 주민은 폭풍으로 추위에 시달린 바울 일행을 위해 불을 피웠는데, 바울이 땔감을 집어 들어 불에 넣으려고 할 때 땔감에 숨어 있던 뱀이 바울의 손을 물었다. 몰타 사람들은 뱀이 바울을 문 것을 보고 바울을 악인으로 판단했으나, 뱀에게 물린 바울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보고 놀란다.

몰타의 주민 대표였던 보블리오 라는 사람은 바울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깨닫고 바울 일행을 극진히 대접하고, 병에 걸린 그의 아버지를 치유해주길 부탁한다. 바울은 기도와 안수로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기적처럼 낫게 했고, 소문을 듣고 몰려온 몰타 사람들을 역시 낫게 해주었다.

 

임디나의 사도 바울 대성당. 사진=정연일
임디나의 사도 바울 대성당. 사진=정연일

보블리오는 바울에게 감화해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몰타의 초대 주교가 되었다는 얘기다. 지중해 여행의 테마 중에서 빠지지 않고 빼놓을 수도 없는 기독교의 이적에 얽힌 일화다.

성경을 신앙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바울의 몰타 상륙과 이적에는 논란과 이견이 있다. 사실 보블리오(Publis)라는 이름 자체의 뜻은 평민이다. 이적은 이성과 과학으로 판단하면 납득이 되지 않지만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 임디나의 성 바울 대성당 앞에서 이성과 신앙과 광신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사도 바울 대성당의 주 제단.
사도 바울 대성당의 주 제단.

하여튼, 몰타의 주교좌 성당이자 임디나의 대성당에 사도 바울의 이름이 붙은 이유는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처럼 사도 바울의 몰타섬 상륙 때문이다. 구글맵에서 몰타의 성 바울(St Paul)을 검색하면 임디나의 바울 대성당 외에도 검색 결과에 많은 곳이 나온다.

바울이 처음 상륙한 곳인 성 바울 만(St Pauls bay)부터 바울이 포교 활동을 펼친 곳, 펼친 자리에 세워진 성당, 바울의 조각과 동상, 바울의 이름을 딴 회사와 호텔과 식당 등 많은 곳이 몰타 특히 임디나 근처에 있다.

 

사도 바울 대성당 문의 조각. 열쇠를 들고 있는 사람은 베드로,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은 바울이다. 유럽 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성당에서도 같다.
사도 바울 대성당 문의 조각. 열쇠를 들고 있는 사람은 베드로,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은 바울이다. 유럽 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성당에서도 같다.

임디나의 대성당이 사도 바울에서 유래한 반면에, 발레타의 대성당은 구호 기사단의 수호성자 세례 요한에서 유래했기에 성 요한 성당이다.

 

뒤러의 목판화를 만나는 행운

 

사실 임디나라는 이름은 아랍어 메디나(Medina)에서 나왔다. 메디나는 도시라는 뜻의 일반명사와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이슬람의 성지인 도시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인다. 몰타의 임디나는 일반명사다. 영어로는 음디나(Mdina) 이나 몰타어로는 임디나(L-imdina)이다. 임디나 앞에 붙은 L은 라틴어 관사의 흔적으로 보인다.

옛 신학교 건물을 보수해 사용 중인 성당 부속 박물관. 사진=위키피디아
옛 신학교 건물을 보수해 사용 중인 성당 부속 박물관. 사진=위키피디아

임디나라는 이름만 봐도 아랍어와 라틴어의 혼용을 알 수 있고, 아랍어에서 유래한 이름의 도시에 기독교의 사도 바울 대성당이 세워졌다. 몰타의 오랜 세월 동안 겹겹이 쌓인 몰타를 스쳐 지나간 문화의 층을 느낄수 있다.

이러한 역사 문화적 배경에 대한 기본적 이해 없이 임디나를 찾는다면, 늘 반응은 대동소이하다. 예쁘다, 아름답다, 이국적이다, 뭔가 신비하다, 사진이 잘 나온다 등등 임디나 뿐만 아니라 아시아 바깥 유럽 문화권 어디에서나 접하는 감상과 반응이다.

바울 대성당 부속 박물관의 내부. 엄청난 수준의 유물에 놀라고 한적함에 또 놀랬다.
바울 대성당 부속 박물관의 내부. 엄청난 수준의 유물에 놀라고 한적함에 또 놀랬다.

물론 여행은 각자가 원하는 대로 각자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기에, 어떤 여행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지만 그 먼 곳 까지 어렵게 시간과 돈과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서 늘 한결같은 반응을 접하면 투어 진행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임디나의 바울 대성당은 유료 입장이다. 성당이 유료 입장일 경우는 실내에 대단한 볼거리가 있지 않으면 지나칠 때가 많지만, 바울 대성당은 성당 부속 박물관과 성당 입장을 통합권으로 묶어 놨다.

 

박물관 내부의 알브레흐트 뒤러 상설 전시관.
박물관 내부의 알브레흐트 뒤러 상설 전시관.

입장권은 한화 15000원 정도 하지만, 예전의 신학교 건물에 있는 부속 박물관의 리뷰가 좋아서 입장권을 끊어 돌아봤더니 훌륭했다.

대성당도 아름다웠지만 역시 리뷰처럼 부속 박물관이 더 좋았다. 1500년대에 처음 지어진 박물관 건물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내부에는 성화와 성물과 몰타의 인물의 유품이 가득했다.

뒤러의 '실락원' 목판화. 우측 상단에 제작 연도와 뒤러의 사인이 보인다.
뒤러의 '실락원' 목판화. 우측 상단에 제작 연도와 뒤러의 사인이 보인다.

특히, 임디나에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독일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목판화 작품이 많아서 깜짝 놀랬다. 초청전도 아니고 무려 상설전이었다. 이유가 궁금해 영어 안내문을 읽어보니 17세기에 몰타에 정착한 프랑스 귀족 사베리오 메르케세(Saverio Marchese) 백작의 수집품이자 증정품이었다.

패트런,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이 훌륭한 박물관 내부에는 단체관람을 온 몰타의 초등학생을 제외하고 개별 관람객은 거의 없었다. 몰타 여행 중에 임디나를 들른다면 놓치지 마시길.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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