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O유치 참사 이면…대통령의 자아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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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O유치 참사 이면…대통령의 자아도취
  • 김종대 전문기자
  • 승인 2023.12.1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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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해외공관에 뿌린 돈 등 홍보비만 5400억 원 집행
개발도상국에 막강한 중국 영향력 무시 美日에만 편중
재벌총수들 병풍 세워 파리에선 폭탄주에 삼겹살 파티
윤석열 대통령 1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1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0월 초에 유럽의 한 작은 국가 공관에 근무하는 A씨는 갑작스럽게 본국에서 온 지침에 적잖이 당혹해했다. 주재국의 한국대사관과 한국문화원은 각종 한류 문화제를 개최하고 비싼 호텔에서 주재국 언론 간담회를 개최하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행사에 부산 엑스포 마스코트를 등장시켜 지지를 유도하라고도 했다.

대사관과 문화원에 그 비용으로 수십억의 실탄이 뿌려졌다. 사실 부산 엑스포 유치는 한류 문화제 개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국가 차원의 외교지만 대사관과 문화원이 동원되어 무슨 일이라도 하라는 분위기였다. 이런 식으로 유럽과 아시아 등 해외 공관에 긴급히 뿌려진 비용은 46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를 포함하여 부산 엑스포 홍보비로 총 5400억 원이 집행되었다.

엑스포 유치를 외교의 핵심 목표로 정하자 외교부에는 돈 폭탄이 쏟아졌다. 재정 압박으로 정부의 모든 부처가 예산을 긴축하는 마당에 유독 외교부는 2024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약 12.8% 늘어난 42895억 원으로 편성했다. 예산이 폭증한 것은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통 크게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대통령의 유엔 총회에서의 개발도상국 지원을 약속한 총회에서 한 연설에 따라 한국의 무상 공적개발 원조(ODA)예산은 2023년보다 8800억 원 증가한 28964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편성했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인도적 지원예산도 올해 2993억 원에서 4408억 원 늘어난 7401억 원이 책정됐다.

개발도상국 지원이야 자유, 법치, 인권을 중시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바지함이 타당하다. 순수한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구현하며 기후 위기 대응에 협력하는 중간 국가로서 한국의 품격을 높이자는 데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10월에 유엔 총회의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결의안에도 기권표를 던졌다. 개발도상국은 자유무역을 훼손하고 무역장벽을 세우는 미국이 만드는 규칙을 불신하며 독자 행동에 나서고 있는 판이다. 이런 때 개발도상국에 영향력이 강한 중국을 멀리한 한국은 오로지 미국과 일본에 편중된 외교를 했다.


120 40 법칙의 비밀


특히 지난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에 미국과 서방 선진국들은 국제 백신 공급 기구로 코백스를 설립하고도 각자 제약회사들과 이면계약으로 백신의 80%를 빼돌렸다. 서방 국가들이 2~3차 백신 접종을 받는 동안 개발도상국들은 백신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를 앞두고 파리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1월 23일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를 앞두고 파리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1월 23일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후 위기 대응에서도 7년 전에 파리에서 선진국들은 2500억 달러를 개발도상국에 지원하기로 하고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기금이 조성되기는커녕 선진국은 입으로만 300억 달러 수준의 기금 출연 계획만 내놓았다. 한 마디로 거지 취급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개발도상국들은 최근 집단행동으로 국제 사회에서 실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결의안에 찬성한 120여 개국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러시아 경제제재에 현재 참여하는 국가는 47개국에 머무른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바로 엑스포 표결의 비밀이 있다.

사우디를 차기 개최지로 찬성한 129개국과 서울과 로마를 지지한 43개국이 바로 국제질서에서 서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가르는 바로 그 표의 구도다. 국제질서에서 개발도상국과 서방 선진국의 대치 구도,120 40의 법칙이 관철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제 사회에 약간의 돈을 뿌려댄들 이 법칙은 변함이 없다. 결국, 외교부에 쏟아진 돈 폭탄은 국제 사회로부터 아무런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한 헛된 비용이 되고 말았다. 그마저도 약속한 돈이니 안 줄 도리가 없다.

최근 언론 보도와 기업인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건 처음부터 무모한 도전이었다. 윤 대통령을 수행한 재벌 회장들도 엑스포 유치는어렵고 힘든 일로 다 알고 있었다. 다만 말을 안 했을 뿐이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가 12월 초에 지적한 것처럼 한국은 개발도상국에 영향력이 강한 중국과 외교가 단절되어 있다는 점도 패인의 중요한 이유다.

이 매체는중국이 개발도상국에 한국의 엑스포 유치를 찬성하지 말라고 했다며 한중관계의 마비가 엑스포 유치 실패의 주요한 원인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예술의 경지에 오른 아첨


정작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아무도 대통령 앞에서 엑스포 총회에서의 표결에서 우리가 극도로 불리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지난 9월의 유엔 총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30여 개국과 정상회담을 강행하고 나자 박진 외교부 장관은 기자들에게대통령의 정상외교 이후 급속도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라며여러 나라가 한국 지지로 속속 돌아서고 있다라고 했다.

부산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뒤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나섰다. 12월 6일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방문해 떡볶이를 맛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부산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뒤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나섰다. 12월 6일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방문해 떡볶이를 맛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평소 신중하고 합리적이라고 알려진 박 장관의대통령의 외교로 인해 판이 바뀌었다라는 설명은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아부의 극치였다. 박 장관마저 이러니 검찰에 약점이 많은 재벌 회장들도 그 앞에서 손뼉 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눈도장을 찍었다.

90여 개국과 150여 회 정상외교를 강행했다는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수석 회의에서 코피를 쏟는 장면까지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통령에 대한 아부와 아첨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떤 공직자나 정보기관이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보고를 했겠는가.

언론은 더 황당했다. 투표가 이루어지던 1128일에 한국 언론은한국 1차 투표 통과를 기정사실로 보도했다. “부산 천지개벽“43조 원 경제효과”, “50만 명 일자리 창출과 같은 기사가 일제히 그 뒤를 이었다. 엑스포 개최 예정지인 부산 북항 일대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초현실적인 망상에 가까운 집단사고(Group Thinking)가 형성되면서 사태는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달았다.

여기서 한스 모겐소라는 정치학자가 말한 국가의 전략적 자아도취(strategic narcissism) 개념을 떠올려보자. 이는 경쟁국이나 적대국 등 다른 국가가 나의 의도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예단하고 일방적으로 사고 행동하는 개념이다. 모겐소에 따르면 이런 자아도취가 전략에서 실패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그는 신중하면서도 합리적인 외교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감정이입(strategic empathy)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상대방의 처지와 입장, 감정과 문화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막상 글로벌 중추 국가로 세계에서 자신이 위신을 과시하는 데 치중하는 윤석열 정부는 자아도취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있는 현실을 바라볼 시야마저 상실했다. 특히 자아도취 성향이 강한 윤 대통령은 주변에 자존감이 강한 참모를 두지 않는다.

맹종하고 눈치만 보는 참모가 즐비하다 보니 손쉽게 지배하고 복종하는 위계적 관계가 형성된다.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는 토론조차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누구와 60분을 대화하면 59분을 혼자 말한다.


국제질서 왜곡하는 심각한 편견


자아도취의 황홀경에서 현실을 인지하는 능력의 부족은 심각한 판단 오류로 이어진다. 지난 강서 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선거 당일까지 윤 대통은 박빙이거나 국민의힘 후보가 이기는 줄 알았다. 이런 식의 인식 오류는 대북정책이나 한중관계에서 훨씬 노골적이다.

윤 대통령을 보좌하는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은 2021년 학술지 <신아세아>에 발표한-중 신냉전시대 한국의 국가전략논문에서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은 마치 과거에 소련에 했던 것처럼 중국이 미국 앞에 완전히 굴복하고 쓰러질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위험한 전제를 제시하면서 친북,친중 노선을 폐기하자고 주장한다.

바로 이 인식이 윤 대통령을 장악하면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신냉전이라는 망상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막상 올해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포린 폴리시에서 우리는 종종 미국과 중국과의 경쟁의 최종상태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중국에 대해) 소련 붕괴와 같은 혁신적인 최종상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미국이 이득을 얻겠지만 중국도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세상을 신냉전으로 인식하는 극우 정치학자는 미국과 정반대의 말을 지금도 하고 있다. 어떻게든 중국과 신냉전을 형성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의도를 정반대로 인식하는 전략적 자아도취와 망상이다. 이 정도면 언제든 교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조태용 안보실장 후임으로 언론에 거론된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의 경우는 증세가 더 심각하다. 그는 조선, 문화 등 언론 기고문에서 대놓고중국은 지난 3000년 이래 한국의 제1의 적국이라며 중국에 대한 초강경 정책을 외치고 있다. 이런 주술과도 언어에 윤 대통령의 자아도취가 얹어지자 국가는 이상한 방향으로 행진한다.

이런 대통령실을 보면서 억지라도 대통령과 해외 순방에 동행하고 부산에 가서 떡볶이를 먹어야 하는 재벌 총수의 심경은 복잡하다. 부산 엑스포 참사가 벌어지기 나흘 전에 파리에서 삼겹살에 폭탄주를 곁들인 2차 술자리에 끌려 나가 3시간 동안 대통령에게 고문을 당한 재벌 총수들이다.

그중 한 명은 술자리를 파하고 나오던 중 엘리베이터 안에서 먹은 것을 다 쏟아내고 부축을 받아 호텔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난 30년 동안 기업이 확보한 기술과 시장을 수호하지는 못할망정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하라는 대통령은 기업들에 더없이 불편한 존재다.

그러니 억지로 먹은 술이 체할 수밖에 없다. 한 지도자가 자아도취에 빠져 재벌들을 비공식 자라에 불러내고, 대통령 행사에 병풍처럼 세우는 일은 그 자체로 정경유착이며, 폭거다. 이런 조직 폭력배 같은 국정운영을 언제까지 인내해야 할 것인가.

●김종대

병장 출신 군사전문가.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계 입문 전에는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원회와 국방부 장관 보좌관을 거쳤다. 2007년 말 외교‧안보월간지 ‘디앤디포커스’(디펜스21+)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기사를 썼다. 최근 유튜버로 맹활약 중이다. 저서로는 <서해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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