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있고 ‘우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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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있고 ‘우리’는 없다
  • 주현진 인문학자,한남대 연구교수
  • 승인 2023.12.21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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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속가능한 국가인가

한 해가 저무는 12월이 되면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여 교수신문에다 발표한다. 올해는 논어에 나오는 견리사의(見利思義)’에서 파생된 견리망의(見利忘義)’가 한 해 모습을 담은 사자성어로 선정되었다. 옛 문헌은 제자인 자로(子路)가 성인(成人)이 되는 길을 스승인 공자에게 묻자 견리사의로 시작되는 문구를 들려주었다고 기록한다.

 

 

교수신문이 정한 사자성어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옛날에도 또한 시간을 초월해도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가 보다. ‘공자님 말씀은 곧 견리망의로 변해버렸으니 말이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옳고 그름을 따져보지 않는 인간의 고유한 본성, 사악한 이기심이 돌출하였다. 성스러운 현자는 인간에게 이러한 본성이 있음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일까. 혹은 범상치 않은 현자의 성품은 인간 존재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품었던 것일까. 아무튼 범인(凡人)에겐 견리망의견리사의보다 훨씬 더 쉽게 이해되는 뜻일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삶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종종 취하게 되는 삶의 자세 같은 것이다.

자신을 비롯해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견리망의를 쫓는 인간들이 더 많지 않은가. 그러니 견리망의는 조금도 새롭지 않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 할 수밖에. 그런데 공부를 많이 한 대학교수들이 소박한 시민들의 삶의 자세를 지적하려고 견리망의를 꼽았을까. 한국의 대학교수들이란 집단은 직접적인 사회참여를 통해 참된 지식인이 되는 길을 선뜻 나서지는 못해도 올해의 사자성어투표와 같은 사변적인 참여는 은근히 즐기는 다소간 변태적인 식자층이다. 그러니, 그들이 선정한 사자성어 견리망의는 그들 나름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발화인 셈이다.

 

한국정치의 퇴행

 

무엇보다도 지금 국내외적으로 유례없는 잡음과 잡설을 생산하는 한국 정치의 퇴행을 겨냥한 발화이다. 그러나 이 고매한 인격체들은 정치적으로 내향적인 사람들인 까닭에, ‘자칭 보수인 극우성향의 정부와 국힘당을 비꼬거나 자칭 진보이지만 구태(舊態)를 벗지 못해 종극으로 질주하는 민주당을 정신 차리게 할 의도는 없어 보인다. 늘 그렇게 해왔듯이, 교수들은 관망자의 위치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한국 정치판의 행태를 ()’로서 묘사한 것뿐이다. 올 한 해 유난히 난잡했던 정치판에선 범인(凡人)의 보잘것없는 식견으로도 알 수 있는 견리망의의 인간들만이 설쳐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정치판과는 달리 한국 문화는 일찍이 누려본 적 없는 황금기를 겪는 중이다.

새천년과 함께 한류라는 물꼬를 틔웠던 한국 문화는 ‘K-Culture’라는 새로운 영토를 건설하면서 최근 십여 년간 탁월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 덕으로 오늘날 한국인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는 문화선진국의 국민이 되어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정확히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찬란한 알참을 전 세계에 송출한 이래로, 국제사회 속 한국의 문화적 위상은 과거이를테면, 필자가 파리에서 유학하던 199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해외에 나가보면 한국인의 자긍심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런던 웨스트엔드의 코번트 가든 광장을 거니노라면,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아차린 영국인이 다가와 한국 영화에 관해 아는 바를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친근감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대화가 깊어지면, 김기영 감독까지도 꿰차고 있는 영국인의 한국 영화사 레퍼토리가 대충 검색한 수준이 아닌 것에 당황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현재의 K-Culture는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문화가 되었다. 그렇다면 정치가 아닌 정치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과연 한국의 정치판에서 지속 가능한 국가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인가.

지금으로선 부정적이다. “한국 민주화 이후 35년 역사상 가장 역겹고”, “영화 <기생충>보다 더 생생하게 엘리트들의 지저분한 면모를 보여주는 쇼가 진행되는대선을 거친 한국 정치판은 올해 더 일그러졌다. 그렇다고 2024년에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주지 않는다. 사실상 한국 문화가 선사한 국민적 자긍심을 정치판이 마멸시키는 중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의로움뿐만 아니라 보편 윤리조차 망각하는 모리배들이 들끓는 정치판은 언제쯤 종료될 것인가. 그들의 견리망의가 반복 재생되는 정치판의 폐해는 심각하다.

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좇는 모리배들의 정치판은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면 바이러스처럼 사람들을 감염시킨다. 그래서 이 계절엔 견리망의류() 플랜카드가 유난스레 나부낀다. “규제 완화하라”, “철회하라”, “결사반대등 도시에서부터 농촌 마을까지 신기루에 버금가는 견리망의 망령이 만 있고 우리는 없는 정치판을 벗어나 다시 우리의 생활을 점거한다. 언제쯤이면 를 초월하여 우리를 생각하는 견리사의의 ‘K-Politics’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갑진년을 기다리며, 우리 모두 자문해보자. 한국은 지속 가능한 국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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