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고 싶은 세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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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고 싶은 세상에 대하여
  • 우석훈 경제학자
  • 승인 2023.12.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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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도 케인즈를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29년 세계대공황은 결국 인플레이션 등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던 독일에서 히틀러를 등장시켰고, 미국에서는 케인즈를 등장시켰다. 시장은 왜 실패하는지를 사람들이 이해하게 되었고, 정부가 경제 이론 내에서 비로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수많은 케인즈의 제자와 케인즈를 반대하는 사람들, 그렇게 경제학은 두 개로 양분되었다.

20세기가 끝나가면서 과학과 기술이 본격적으로 경제성장 이론들에 접목되면서, 내생성장론이 등장하였다. 지식경제, 창조경제, 이런 수많은 이름들이 결국은 기술이라는 생산 요소를 어떻게 모델 안에 삽입할 것인가, 그런 문제다. 클린턴 시대에 디지털 경제와 함께 장기 호황이 오면서 주기적으로 경제에 위기가 온다는 경제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21세기는 그렇게 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많은 것이 바뀌었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위기가 왔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한국도 어느 정도는 이런 흐름을 타고 지금까지 왔다. 진보와 보수가 모두 합의하는 것은 기술개발은 중요하고, 여기에는 돈을 아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역대 한국 정부의 경제 담론은 케인즈에 찬성하는 큰 정부와 여기에 반대하는 작은 정부, 둘 중의 하나였다. 여기에 기술에 대한 강조를 공통적으로 더하면 거의 대부분의 정부에서 사용하는 경제 담론이 된다. 보조축으로 토건이 들어가기는 하는데, 사실 토건을 안 한 정부는 별로 없다. 문재인 정부 초기, 토건을 절제하겠다고는 했는데, 엄청난 규모로 도심재생을 하면서 형태만 바꾼 토건이 되었다. 대외정책은 대체적으로 경제를 위한 실리외교가 중심이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이런 기조가 개방경제에서 수출이 중요한 축이 된 한국이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이런 공식이 윤석열 정부에서 깨졌다. 보수 특유의 작은 정부라는 기조는 동일한데, 기술은 예산 삭감을 통해서 별 필요 없는 요소로 인식되게 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이명박 정부였는데, 그때도 정부는 연구개발 예산을 늘렸었다. 노무현 정부 때 아마추어 정부라는 얘기가 유행이었는데, 사람 잡아가는 거 제외하면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아마추어 정부인지를 제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연구개발비 삭감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정부가 크든 작든, 기술은 중요하다고 하는 큰 사회적 합의가 깨졌다.

또 하나 깨진 게 있다. 중소벤처부는 새로 생겨난 부처이고, 작은 기업이 중요하고, 기술 기업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 같은 게 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분야에서 주로 담론을 이끌어온 것은 정치인 안철수였다. 그의 삼성 동물원은 이 분야에서는 거의 역사적 교과서 같은 얘기가 되었다. 이런 경제 중추 역할을 하는 기관에 비전문가를 보내는 것은 상식 밖이다. 부산에 사진 병풍이 되어서 오뎅 먹는 재벌 총수들 신세도 딱하기는 하지만, 아마 재벌 개혁 같은 얘기는 이 정권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심부름꾼이 된 재벌들이 요긴하게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준석, 한동훈, 이런 새로운 정치인들이 총선을 계기로 전면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아직 그들에게서 정무적인 얘기만 들었지, 정책적인 얘기는 들은 게 없다. 왜 정치를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아직 없다. 기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중소기업은 어떻게 살릴 것인지, 익숙한 토건으로 돌아갈 것인지, 그런 얘기들이 사실 궁금하다. 기왕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는데, 새로운 경제 담론도 같이 등장하면 좋을 것 같다. 한국의 보수들은 너무 공부 안 해서, 지금까지는 계속 과거로 회귀하기만 했다. 20세기 하고도 20년이 넘었는데, 작은 정부 말고 뭐 좀 새로운 얘기가 듣고 싶다. 그렇게 논쟁을 하다 보면,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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