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부모를 버리는 고려장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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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부모를 버리는 고려장은 있었나?
  •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고학자
  • 승인 2023.12.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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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국 설화에서 와전…삼국시대 빈장의 오해일 수도
1963년에 개봉한 영화 ‘고려장’의 포스터와 영화 장면. 김기영 감독, 주연 김진규, 주증녀. 사진=다음 영화
1963년에 개봉한 영화 ‘고려장’의 포스터와 영화 장면. 김기영 감독, 주연 김진규, 주증녀. 사진=다음 영화

노동능력이 없는 늙은 부모를 산채로 갖다 버린다는 뜻의 고려장은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1963년도에 실제 영화로도 나오고 교과서에도 효를 강조하는 이야기로 많이 소개되면서 그 용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그 역사적인 근거는 전혀 없고 일제강점기 때에 고려라는 이름을 붙여서 마치 한국의 풍습인 양 교육했다. 노인을 내다 버리는 이야기는 사실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에 널리 있었던 이야기로 효를 권장하기 위한 이야기가 일제강점기를 전후해서 마치 사실인 양 널리 퍼뜨린 것이다.

고려장 설화와 비슷한 내용은 유라시아 일대에 널리 퍼져있다. 그 중 특히 불교의 이야기책인 <잡보장경(雜寶藏經)>에 나오는 기로국(棄老國) 설화는 고려장 설화와 매우 유사하다. 기로국은 몽골 일대에 있었다는 나라다.

그 설화의 줄거리는 노인을 내다 버리라는 국법을 차마 지키지 못해서 아버지를 집의 지하실에 몰래 봉양하던 효자가 있었다. 때마침 적들이 쳐들어와서 위협하며 어려운 문제를 풀도록 겁박했다. 이에 왕이 온 나라에 지혜를 구했는데, 숨겨놓은 아버지가 해결한다. 이에 감동해서 왕은 노인을 버리라는 법을 없앤다는 내용이다.

힘 있는 젊은 사람을 더 우대하는 것은 유목민의 풍습이다. 하지만 그것은 노인에 대한 홀대와 관계가 없다.
힘 있는 젊은 사람을 더 우대하는 것은 유목민의 풍습이다. 하지만 그것은 노인에 대한 홀대와 관계가 없다.

기로고려는 얼핏 비슷한 발음이다. 어쩌면 고려장이라는 말은 기로라는 말에서 유래해서 고릿(高麗)이라는 말처럼 막연히 옛날이라는 뜻으로 바뀐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으니 추후 연구를 기다려야겠지만, 어쨌든 고고학적으로 볼 때 고려나 조선시대에 실제로 노인들을 동굴이나 토굴에 놓았다는 증거는 없다.

이야기라고 해도 기로국이라는 나라가 몽골 초원에 있었다는 설정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흉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을 더 대우한다고 적혀있다. 중국인들은 농경민보다 훨씬 험한 자연환경에 노출된 유목민들이 노인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힘 있는 젊은 사람을 더 우대하는 것은 유목민의 풍습이다. 하지만 그것은 노인에 대한 홀대와 관계가 없다. 험난한 유목 생활은 힘 있는 장정이 있어야만 유지가 될 수 있다. 그러니 기근이 들기라도 하면 어쨌거나 젊은 사람을 먹여 살려놓아야 노약자를 부양하고 미래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노인들은 육아를 담당하고 초원의 지혜를 전달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평소에는 홀대받는 듯 구석에 있지만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나 기후의 변화가 올때에 노인들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로국의 설화는 유라시아 초원의 지혜가 이야기로 된 것이다.


오해를 낳은 장례 빈장


그렇다면, 고려장이라는 오해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가. 아마도 고대 이래로 전해오는 빈장이라는 풍습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빈장은 한마디로 시신을 무덤에 묻히기 전에 밖에서 일정 기간을 두고 모시는 장법을 말한다. 요즘에는 흔히 3일장이 흔한데, 과거에는 그 기간이 길게는 3년을 넘기도 했다.

()이라는 용어는 삼국시대와 일본의 귀족들이 죽은 상황에 해당한다. ‘수서(隋書)’에는 고구려인들이 사람이 죽으면 집 안에 안치하여 두었다가, 3년이 지난 뒤에 좋은 날을 가려 장사를 지낸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고구려뿐 아니라 삼국과 일본 곳곳에서는 귀한 사람들이 죽으면 3년상을 치르고, 그동안에 밖에 마치 산 사람처럼 모셔두었다.

이처럼 밖에 모셔두는 동안에는 시신을 그냥 방치할 리 없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있었던 그 기간 동안은 따로 거처를 마련해서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공양했다. 따로 거처를 마련해서 계속 옷을 갈아입히고 봉양을 하는 그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 사연을 잘 모르면 산속의 사당에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모셔있는 빈장을 보고 와전되어서 고려장이라는 엉뚱한 이야기의 토대가 된 것이다.

나주 정촌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의 복제품. 실제 유물에서 빈장의 흔적이 발견됐다.
나주 정촌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의 복제품. 실제 유물에서 빈장의 흔적이 발견됐다.

한국에서도 빈장의 증거가 마한에서 발견되었다. 지난 2017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나주 정촌에서 서기 6세기경의 마한 고분을 발굴하여 화려한 황금과 금동제 유물을 다수 발굴했다. 그중에서 화려한 금동 신발에는 다리뼈가 일부 남아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파리(검정뺨금파리)의 번데기도 함께 발견되었다.

시신을 외부에 두고 그 겉은 화려한 황금과 비단으로 감쌌지만, 정작 그 속에서는 이미 파리가 알을 까고 부패가 진행 중이었다. 오랫동안 시신에 화려한 옷과 신발을 신기고 모셨다는 뜻이다.

이렇게 빈장을 하는 것은 사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마지막 예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이유로는 무덤을 사시사철 아무 때나 만들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추운 지방은 땅을 팔 수 있는 시기가 극히 짧다.

시베리아 초원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만든 쿠르간(고분)은 땅이 녹는 7~8월 2개월에 집중해서 만든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시베리아 초원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만든 쿠르간(고분)은 땅이 녹는 7~8월 2개월에 집중해서 만든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예컨대 시베리아 초원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만든 쿠르간(고분)7~82개월에 집중해서 만든 것이다. , 몇 년에 걸쳐서 만들어야 하는 왕이나 족장의 무덤이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뜨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경우 부부를 합장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부부를 모두 합장하려면 몇 년씩 기다려야 한다.

두 번째 이유로는 사람의 죽음을 인정하는 데에 일정한 시간, 즉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의 빈장은 보통 3년이라고 한다. 3년간 돌아가신 귀족은 마치 산 사람처럼 빈궁(殯宮, 일본어로 모가리노미야) 또는 빈전(殯殿)에서 앉아있는 채로 있어야 한다.

때가 되면 산 사람처럼 음식도 올리고 옷도 갈아입혀야 한다. 그러니 산 사람처럼 시신을 3년씩이나 모시려면 그사이에 부패가 진행되는 것을 막고 최대한 외형을 산 사람과 비슷하게 보존한다. 아마 산속의 정자나 사당에 이런 사람을 모시는 것이 와전되어서 후대의 고려장이라는 이름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마지막 이유로는 무덤을 만드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의 경우 왕이나 귀족의 무덤에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죽는 날을 받아놓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 갑자기 사고로 사람이 죽는다면 무덤을 다 만들 때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빈장을 해두어 몇 달이나 몇 년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에 문제가 되는 고려장


우리는 흔히 그냥 죽어버린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죽음은 기나긴 과정으로 삶과 죽음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다. 사람을 무덤에 넣지 않고 몇 년을 두는 것은 바로 그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마지막 존중을 하기 위한 것이다.

고려장으로 오해된 빈장은 결국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제도로 만들어 그 기간을 설정한 것이다. 가족을 잃는 것만큼 인간에게 큰 슬픔은 없을 것이다. 그 순간을 이기기 위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 빈장인 것이다.

사실, 고려장이 지금 회자되는 것은 각박한 현대사회 때문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노인에 대한 부실한 복지를 빗대어 고려장이라는 말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8년도에 전상국이 발표한 소설 고려장은 현재 진행형인 치매에 걸린 노모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은 도시의 소시민으로 간신히 노모를 부양했지만, 한국전쟁 통에 남편과 큰아들을 잃고 정신이 혼미한 노모는 치매로 더는 함께 살 수 없었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결국 그는 어머니를 길에 버리고 결국 경찰의 백차에 노모가 실려 무의탁 환자를 위한 병원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부모에 대한 효() 사상이 절대적이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였지만, 40년 남짓 지나고 보니 세계적으로 고령화되는 지금을 예상한듯하다.

비극적인 것은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데 정작 일할 수 있는 청장년의 인생은 거의 늘어나지 않은 채 고령화된 시간이 증가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비극적인 것은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데 정작 일할 수 있는 청장년의 인생은 거의 늘어나지 않은 채 고령화된 시간이 증가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1970년대에는 한국 사회의 고도성장과 험난한 현대사를 거치면서 강퍅해진 사회, 그리고 전통적인 부모 공양이 주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21세기가 되면서 고려장에 대한 걱정은 변화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치매 걸린 노령인구에 대한 걱정 대신에 길어진 노년에 대한 걱정이다.

한참 일할 50~60대의 목을 죄는 구직난은 기본이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데 정작 일할 수 있는 청장년의 인생은 거의 늘어나지 않은 채 고령화된 시간이 증가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인생을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도 없고 경제활동이 없으면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불안한 노년의 삶이 길어지고 있는 지금 ‘21세기 고려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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