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의 어촌 포구, 마샤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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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어촌 포구, 마샤슬록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12.3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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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쪽 끝에 있는 옛 헤라클레스 항구

지중해 몰타 기행-마지막회

몰타에서 머물렀던 호텔은 수도인 발레타에서 서북쪽으로 20km 정도의 거리에 있다. 동네 이름은 세인트 폴스 베이(St. Paul’s Bay)이다. 크레타섬을 떠나 로마로 가던 사도 바울이 풍랑을 만나 몰타에 상륙했다는 곳이 여기였구나. 임디나를 다녀왔더라도 사도 바울 성당의 유래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상륙한 세인트 폴스 베이의 오른쪽 반도 (붉은 선 안). 사진= 정연일
사도 바울이 상륙한 세인트 폴스 베이의 오른쪽 반도 (붉은 선 안). 사진= 정연일

세인트 폴스 베이의 오른쪽은 발레타보다는 작으나 역시 발레타처럼 바다를 향해 돌출한 작은 반도이다. 호텔을 짓기에 좋은 위치라서 여러 호텔이 몰려있다. 어디에서나 오션뷰가 나온다. 시내버스를 타면 40분이면 발레타로 갈 수 있고, 관광객이 많은 발레타의 혼잡함을 피해 한적하게 쉬기도 좋다.

게다가 해안선이 대부분 암반 지대인 몰타에서 반도 곳곳에 있는 모래 해변 덕분에 사도 바울의 상륙지는 몰타의 휴양촌으로 거듭났다. 호텔 앞의 거리 이름이 관광객 거리(Tourist street)라는 것만 봐도 이곳을 찾는 대부분이 외지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호텔과 세인트 폴스 베이의 식당가에서 들리는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유럽 언어다.

세인트폴스베이의 아침 풍경, 바다 건너는 고조섬이다. 사진= 정연일
세인트폴스베이의 아침 풍경, 바다 건너는 고조섬이다. 사진= 정연일

몰타에 온 지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몰타를 떠나는 날이다. 몰타를 떠나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는 저녁에 출발한다. 오전에 호텔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나면 한나절 이상 시간이 남는다.

몰타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인 마샤슬록에 들렀다가 발레타 공항으로 이동해 몰타항공을 타고 몰타를 떠난다. 떠나려고 하니 날씨가 좋다. 아침의 세인트 폴스 베이는 싱그럽다. 왠지 떠나기가 아쉽다.

마샤슬록의 일요장터.
마샤슬록의 일요장터.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 먼저 흥정부터 한다. 공항으로 바로 가는 거라면 요금이 얼추 정해져 있지만 마샤슬록에 들렀다가 공항으로 가는 것이기에 흥정은 필수다. 몰타의 택시요금은 유럽 수준이라 한국보다는 비싼 편이다. 한국 택시요금의 두 배 정도 하지만 승합차 택시가 있어 인원이 좀 된다면 부담이 덜하다. 흥정을 마치고 택시에 짐을 싣고 몰타섬의 동남쪽 끝에 있는 마샤슬록으로 출발한다.


몰타 수산업의 중심지


마샤슬록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몰타의 어촌 포구다. 역사는 고대 그리스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에는 헤라클레스 항(Portus Herculis)으로 불렸다.

몰타의 전통 어선인 루쯔로 가득한 마샤슬록 포구. 사진= 픽사베이
몰타의 전통 어선인 루쯔로 가득한 마샤슬록 포구. 사진= 픽사베이

사실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이 붙은 항구는 몰타뿐만 아니라 지중해 일대에 많다. 대표적인 곳이 유럽의 소국 모나코의 항구이다. 어쨌든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말은 포구의 역사가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얘기이다.

마샤슬록(Marsaxlokk)이라는 지명에는 아랍어와 몰타어가 섞여 있다. 항구를 뜻하는 아랍어 마르사(Marsa)와 동남쪽을 의미하는 몰타어 슬록(xlokk)이 붙어 마샤슬록이 되었다. 동남쪽에 있는 항구라는 뜻이다. 슬록은 지중해의 바람 중에서 동남풍에 해당하는 시로코(Siroco)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몰타의 남쪽, 지중해 건너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다.

마샤슬록 포구.
마샤슬록 포구.

몰타와 지중해의 여러 섬처럼, 마샤슬록은 카르타고와 그리스 로마 이후 북아프리카 이슬람과 유럽 기사단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침공과 세계 12차대전을 거쳤다. 지금은 몰타 수산업의 중심이자 유명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포구 인근의 고대 로마 유적은 폐허의 흔적만 남아 잇어 굳이 찾을 정도는 아니다.

세인트 폴스 베이를 출발한 전세 택시는 30여 분을 달려 마샤슬록에 도착했다. 마침 일요일이라 마샤슬록의 유명한 노천장터가 들어서 사람이 많았다. 유럽의 도시가 그렇듯, 마샤슬록에도 일요일마다 들어서는 장터가 유명하다. 바다에서 잡아 올린 수산물부터 잡다한 생활용품과 관광객 대상의 기념품 등이 다양하게 장터에 있다.

루쯔의 뱃머리에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호루스의 눈을 장식한다.
루쯔의 뱃머리에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호루스의 눈을 장식한다.

마샤슬록의 명물은 루쯔(Luzzu)라고 부르는 몰타의 전통 어선이다. 몰타 여행을 하다 보면 바다뿐만 아니라 내륙에서도 화려한 색깔로 칠해진 전통 어선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루쯔다.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지리적 환경 그리고 일요 장터가 있는 포구는 유럽 지중해 일대에서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루쯔는 몰타에서만 볼 수 있고 마샤슬록에 가장 많다. 원래 돛과 노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작은 목선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모터나 엔진으로 움직인다. 아직도 어선으로 많이 사용하고 일부는 관광용으로도 쓴다.

루쯔는 어선 외에도 다른 용도로도 쓰이는 것을 몰타 곳곳에서 본다.
루쯔는 어선 외에도 다른 용도로도 쓰이는 것을 몰타 곳곳에서 본다.

루쯔는 화려한 색상과 뱃머리의 특이한 눈 장식이 특징이다. 몰타의 연구자에 의하면, 루쯔에 칠한 다양한 색깔은 출신 지역을 상징한다고 한다. 사람의 코 아래에 마치 남자의 콧수염 같은 배의 흘수선(吃水線, Waterline) 부위에 칠해진 색을 보고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붉은색은 세인트 폴스 베이, 황토색은 마샤슬록, 검은 색은 가족이 사망해 상중일 때라고 한다. 루쯔에 칠한 색을 보고 지역을 맞춰보는 재미가 있다.

몰타의 마지막 식사는 피쉬앤칩스. 몰타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몰타의 마지막 식사는 피쉬앤칩스. 몰타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루쯔를 정면에서 보면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루쯔의 눈은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호루스의 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뱃머리에 호루스의 눈을 붙인 이유는 시칠리아를 비롯해 나폴리등 이탈리아 남부의 산타루치아와 같은 이유다. 지중해가 잔잔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바다는 바다라 전 세계 어디에서나 뱃사람은 안전을 기원하고 안녕을 빌었다. 호루스의 눈은 보호를 상징한다고.


다시 올 이유를 남겨놓고


마샤슬록 포구는 그리 크지 않다. 끝에서 끝까지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4월인데도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시로코 바람 때문에 광장의 노천카페에 반팔 차림의 사람이 가득하다. 외지인보다는 몰타 현지인이 더 많은 느낌이다.

몰타 공항 면세점의 카라바지오의 명화를 라벨로 사용한 한정판 셋트.
몰타 공항 면세점의 카라바지오의 명화를 라벨로 사용한 한정판 셋트.

천천히 포구를 어슬렁거리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광장 한 구석의 대형 천막 간이 식당 앞에 서 있는 메뉴 입간판을 보니 피쉬 앤 칩스가 있다. 몰타를 마지막으로 지배한 나라는 영국이었지. 맥주와 함께 피쉬 앤 칩스를 받아 자리에 앉는다. 몰타에서의 마지막 식사다.

짐을 싣고 대기 중이던 택시를 불러 발레타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에 거의 다 와서 차량 정체가 심하다. 이륙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그리 초조하지 않았는데 택시 기사 마르코는 갑자기 갓길로 빠지더니 내비게이션을 보지 않고 좁은 골목을 질주한다.

꼬리날개에 몰타 십자가가 새겨진 몰타 항공기.
꼬리날개에 몰타 십자가가 새겨진 몰타 항공기.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보니 자신을 믿어보라고. 이리저리 골목을 헤집다가 빠져나오니 갑자기 눈앞에 공항이 나타난다. 마르코는 오늘 자신의 일당을 다 벌었다며 이제 집에 가서 샤워하고 쉴 것이라고 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하는 것도, 내용도 모두 몰타 지중해 사람답다.

항공 수속과 출국 심사를 마치고 면세구역으로 들어와 면세점을 구경하는 데 한정판이라는 문구가 찍힌 카라바지오 와인 세트가 보인다. 와인 라벨은 발레타의 요한 대성당에 있는 카라바지오의 그림, 성 제롬과 세례요한의 참수 두 작품이다. 카라바지오 팬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살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사지 않았다. 몰타에서 귀국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일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몰타에 다시 와야 할 이유를 하나 남겨놓고 떠난다.

*지금까지 시칠리아, 몰타 지중해 기행을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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