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중앙선 따라가는 양평군 기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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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중앙선 따라가는 양평군 기차여행
  • 신용철 전문기자
  • 승인 2023.12.3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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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가장 많은 14개 기차역을 보유한 지자체
양수역부터 지평역까지 소소한 행복 이어지는 일정

 

전국 223개 지자체 가운데 한 개 지자체에 기차역을 14개나 보유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양평군이다. 아니 머릿속에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는 걸 보니 양평군이 아마도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 싶다.

이번 편에 소개하는 경기도 양평 기차여행은 신용철의 철길따라제목에 가장 충실한 코스였다. 양평군에 소재하고 있는 14개의 기차역 가운데 11개의 기차역을 철길따라 발길따라 둘러보았고 내친김에 폐역인 구둔역까지 가 봤으니 말이다.


남한강과 북한강 만나는 두물머리


먼저 서울역과 청량리역 등을 거치는 경의중앙선을 타고 출발할 때 양평군에서 여행객들을 제일 먼저 맞는 곳은 양수역이다.

 

수령이 4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어우러진 양수리 두물머리 풍경.
수령이 4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어우러진 양수리 두물머리 풍경.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이라 지역명과 역사명 또한 그렇게 지었다. 이곳을 와 봤거나 그렇지 않거나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두물머리(순우리말로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이 머리를 맞댄다하여 붙여진 이름)가 바로 이곳이다.

MZ세대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연식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모른다고 외면하기 힘든 1996KBS방송의 최고 인기드라마였던 첫사랑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여기다. 최수종, 배용준, 이승연, 최지우 등 당시 최고의 하이틴 스타들이 출연하고 핀란드의 5인조 메탈그룹 StratovariusForever가 드라마 배경화면 분위기에 맞게 주제곡으로 쓰였다.

한국철도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364개역에 있는 철도스탬프 가운데 양수역과 양평역, 용문역에 있는 철도스탬프.
한국철도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364개역에 있는 철도스탬프 가운데 양수역과 양평역, 용문역에 있는 철도스탬프.

필자도 드라마의 영향으로 2000년대 초반에 와 보고 20년도 넘어 다시 방문했는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두 번 이상 변했으니 오죽하랴.

오래전 그 당시 날 것 그대로의 자연과 풋풋함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물머리는 그 자리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두물머리는 연인 및 지인 혹은 가족들과 함께 갈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대한민국 대표생태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곳을 방문 할 때 시간이 좀 더 허락된다면 바로 옆에 새로 조성된 경기도 제1호 지방정원이자 아름다운 물과 꽃의 정원인 세미원도 한번쯤 둘러볼 것을 권한다.


신원역에서 만난 몽양 여운형


이제 양수역 다음역인 신원역으로 가보자. 이 역은 역사 밖으로 나오자마자 왼편에 커다란 식당 하나가 영업 중인 것 말고는 딱히 둘러 볼 것도 먹을 곳도 많지 않았다.

몽양기념관 너머 몽양 여운형이 생가와 묘소가 한눈에 보인다.
몽양기념관 너머 몽양 여운형이 생가와 묘소가 한눈에 보인다.

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지난 201111월 개관한 몽양기념관에 가보자. 여운형 선생은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현대정치사 인물 가운데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이이서 그런지 두 번째 방문임에도 감동은 여전했다.

오늘날처럼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되고 좌우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그의 존재가 더욱 그립다. 해방 이후 백범 김구 선생이나 우남 이승만 전 대통령보다도 당시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가장 높았던 몽양 여운형 선생이 말이다.

민족통일과 좌우합작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그는 그 당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그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하였다. 결국 십 수 차례 테러를 당하다가 극우성향의 테러단체 백의사 소속의 한 청년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몽양기념관에서 오늘날 몽양 여운형 선생 같은 존재와 그의 정신을 잇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고 소원했다.

특별히 몽양기념관에서는 개관 12주년을 맞아 지난 11월부터 내년 2월 말까지 몽양의 수첩특별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기획전시실에는 몽양의 대표적 친필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격동적 해방전후사의 생생한 표상을 엿볼 수 있으며 그의 민주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구상과 분투 그리고 통한과 좌절의 과정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살펴볼 수 있다.


지평막걸리 그리고 장칼국수


다음코스로 경의중앙선 기차는 양평역을 거쳐 용문역을 지나 경의중앙선 동쪽 방면 종착역인 지평역에 도착했다. 기실 양평의 옛 지명은 지평이었다. 오늘날 양평군은 지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합쳐지기 전까지 남한강 유역의 낮고 넓은 들이라는 의미로 지평군으로 불리다가 인근 양근군과 합쳐서 생긴 이름이다.

비록 군 지명은 바뀌었지만 역사명에 옛 지역명을 그대로 쓸 만큼 지역민들은 지평이란 이름에 애착이 크다. 1951년 유엔군이 중국군 6개 연대의 집중공격을 막아냈던 지평리 전투의 현장이기도 한 이곳은 다른 수많은 역사들처럼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새롭게 지어진 뒤 2008년 중앙선 복선 전철화 사업에 따라 새 역사로 이전하며 청록색 지붕의 소박한 시골역사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새롭게 들어선 역사는 전면 채광을 위한 창의 현대식 건물로 출구가 한 개인 것이 특징이다.

지평의 대표적 막걸리 지평막걸리와 인근 식당에서 만난 맛있는 장칼국수.
지평의 대표적 막걸리 지평막걸리와 인근 식당에서 만난 맛있는 장칼국수.

지평까지 왔으니 막걸리 애주가들에게 유명한 지평막걸리를 한 잔 걸치지 않을 수 없다. 양평읍에 사는 지인이 알 만한 사람들만 아는 맛집이라며 안내한 식당이 마침 지평양조장 근처에 있어 더욱 입맛을 당겼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양옥집을 개조한 특이한 식당방에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맛이 기가 막힌 장칼국수에 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막걸리 한 잔을 걸치니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시골면의 한 식당에 왜 이리도 손님이 많은 건지 진정 맛집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서라도 먹는 곳인가 보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침이 고이는 내 모습을 보며 다음에 다시 찾아가서 장칼국수 맛을 보리라 다짐해 본다.


근대문화유산 된 폐역 구둔역


지평역까지 온 김에 조금 더 욕심을 내서 폐역인 구둔역을 대신해 새롭게 만들어진 일신역을 둘러본 뒤 역사 전경이 아름답기도 소문난 구둔역으로 향했다. 이곳은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이며 영화 건축학개론, 아이유의 앨범재킷과 방탄소년단 포스터 촬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1940년 일제감정기때 개통해 2012년 폐역이 된 구둔역 풍경
1940년 일제감정기때 개통해 2012년 폐역이 된 구둔역 풍경

1940년 중앙선에 설치한 구둔역은 한 때 서울 청량리, 원주, 안동, 경주를 잇는 철도로 일제강점기 물자의 공급과 운반을 위해 설치됐다. 해방 이후에도 계속 운행을 이어가다가 청량리-원주간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기존 노선이 변경되어 2012년부터 폐역이 되었다.

역 건물에는 손님이 열차를 기다리는 대합실과 역무원이 일을 보는 역무실이 있다. 역에 들어오고 나가는 기차를 쉽게 볼 수 있도록 역무실 일부 공간을 튀어나오게 해 3면에 창문을 달았다. 역 건물의 지붕은 책을 엎어 놓은 모양이다. 철도 쪽 출입구에는 비와 햇빛을 가리는 차양을 설치해 놓았는데 이런 일련의 모습들이 일제강점기 철도 역사 건축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역사 1동과 광장 일곽, 철로 및 승강장 등이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 296호로 지정되면서 폐역으로 사라질 위기에서 벗어나 관광지로 거듭났다.

같이 간 지인은 구둔역은 은행잎이 지기 시작하는 가을철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는데, 역사를 주위를 둘러보니 과연 그럴 만도 했다. 언젠가 다가오는 가을철에 다시 방문해 역사안 에서 여유 있게 책을 읽고 운행하지 않은 선로를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유로움과 한적함의 낭만을 누릴 그날을 그려본다.

●신용철

월간 ‘말’에 이어 ‘충청리뷰’, ‘제주신문’ 등에서 10여 년 동안 다양한 기자생활을 경험했다. 제주도에 꽂혀 7년 동안 자연과 벗하며 살다가 지금은 어쩌다 철도노동자의 길을 가고 있다. 이른바 ‘철도덕후’가 되고자 퇴직 전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역을 방문하리라 계획하고 있으며, 먼 훗날 퇴직 후엔 전 세계로 기차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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