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만필] 충청리뷰 31, 법고와 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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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만필] 충청리뷰 31, 법고와 창신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4.01.17 2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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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도 벌써 보름을 지나 달력 한 장을 넘길 때가 다 되어간다. 오는 4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가 예정돼 있어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미 총선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충청리뷰는 지난해 9월 창간 30주년을 지나고 올해 31주년을 맞았다. 창간 이래 줄곧 ‘올곧은 말 결 고운 글’을 사시로 심층 보도를 중심에 놓아 왔다. ‘약자의 편에 설 줄 알고, 할 말은 해왔다’는 높은 평가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이 그 시대에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남겨진 족적을 들춰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창간30주년 기념호와 타 언론 등에서도 다뤄졌다.

안타깝게도 창간 30주년을 맞은 해에 30년차, 22년차, 9년차 주축 기자들이 떠나게 되는 아픔을 겪었다. 마지막 최고참의 선임기자는 계약의 종료로, 편집국장과 부국장은 의원면직으로 함께 연말에 맞춰 사직했다. 알려진 대로 경영진에 의해 검찰특활비 보도 관련 칼럼이 무단 삭제된 데 따른 갈등 구도가 단초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경영진의 몇차례 진솔한 사과가 있었지만 멀어진 신뢰는 치유되지 못했다.

필자는 2011년 이전 2년 가량과 2019년부터 현재까지 지역주재로 모두 7년 가까이 활동하며 본보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이번 사태 발발 시기에 유선상이지만 편집국 및 경영국 핵심 당사자들의 입장을 면밀히 파악하고 편집국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판단해 힘을 실었다.

지난달 21일 표출된 연말 집단 사직 의사에 대해서는 주축 기자 중 누군가는 편집국을 이끌어 가야한다는 점에서 만류와 함께 대주주 측과의 직접 대화를 당부했다. 경영진 측에도 동일한 뜻을 피력했다. 하지만 양 측은 가능한 선을 이미 넘어 상황은 종료 상태라는 뜻을 밝혔고, 연말호에 의원면직 사고(社告)가 인쇄돼 발행됐다.

이 과정에서 편집국을 이끌어 달라는 경영진의 요청을 받았다. 이 몸 마저 뿌리친다면 ‘리뷰’가 쌓아온 명맥은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 누군가 말했던 그 총체(總體)에 미치는 영향과 사운(社運)이 걸린 문제가 아닐 수 없어 고민이 깊었다.

지난달 29일 경영자와의 첫 면담 자리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진행됐다. 원거리 통근이란 한계가 있지만 편집권의 독립과 일시적 보직이 아닌 정식 임용을 담보하는 상황에서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해 첫 출근부터 편집국 수습에 나서 기자 충원 및 외부필진 섭외 등 열악한 상태에서 재창간 수준의 신문 제작 절차에 돌입했다.

기존 편집국 일부 멤버에게 외부 필진으로라도 남아 있을 것을 간청했지만 고사했다. 필진 섭외에 응했던 몇몇 외부 인사들은 성명서를 발표한 일부 시민단체의 영향을 받아 기고 의사를 철회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검찰 기사’가 바로미터가 되었는데 ‘쓸 것인가’를 묻기도 했다. 그리하면 기고에 응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검찰에서 자료를 받아 올 때 함께 했지만 현재 그 자료가 남아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대답을 줬다. 사실 그대로다. 이런 내용에 대한 인수인계는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이 또한 편집권에 대한 도전은 아닌가 하는 압박감과 불쾌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언론이 닥치고 내편, 닥치고 진영논리 늪에 빠질 수는 없다. 어떤 사안이든 갈등 구조에 놓여 있다면 양측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게 먼저다. 그 후 시시비비를 논해야 한다. 이는 언론은 물론 시민단체 등 갈등 양상을 접하는 이들의 기본 양식일 것이다.

험난한 항해를 위해 선박 하부에는 반드시 밸러스트탱크(ballast tank)가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이곳에 화물 적재량 30% 이상의 밸러스트워터(Ballast water)를 싣도록 권고하고 있다. 선박의 복원력을 높여 주기 위함인데 이 밸러스트워터를 ‘평형수(平衡水)’라고 부른다. 늘 출렁이는 파도와 맞닥뜨려야 하는 선박의 중심추 역할을 하는 것이 평형수인 셈이다.

지난 6일은 김대중 탄생 100주년이었다. 여야 인사들이 모두 모여 그를 기렸다. 배기선 김대중 재단 사무총장은 방송 토론에서 자신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요지는 운동권적 시각에서 머무르지 말고 병렬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큰 깨달음을 줬다는 내용이다.

연암 박지원은 세월의 흐름과 풍속의 변천 속에 그 시대의 현실과 자신의 문제를 진실하게 다루면 금문(今文)이 곧 고전적 가치를 획득한 고문(古文)이 될 수 있음을 논증했다. 그것이 ‘옛 것을 기준으로 새 것을 만든다’는 ‘법고이창신(法古而創新)’이란 고문이론이다. 정론 31년을 맞은 충청리뷰는 멈춰서거나 뒷걸음질을 칠 수는 없다. 지난날의 영욕과 지금의 위기를 가다듬어 앞날을 열어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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