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훈민정음 '해례본'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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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훈민정음 '해례본' 인가?
  •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 승인 2024.01.18 15:5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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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동시 복간의 의미는?
최고의 세계기록유산을 푸대접하는 현실

 

지난해 한글 창제 580주년을 기려 199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1446, 이하 해례본)’ 및 세종시대 ‘언해본’이 최초로 동시 복간됐다(가온누리 출판사). 해례본만의 최초 복간본은 2015년에 교보문고에서 낸 바 있다.

한국은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이 2024년 현재 기준 18개로 전 세계 3위다. 아시아에서는 제일 많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기록의 상징과 실체인 문자의 해설서이기에 세계기록유산 가운데서도 으뜸이라 할 만하다.

이번 충청리뷰와의 특별기획으로 마련된 ‘훈민정음 해설’은 독자들과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앞서 두 차례(2015, 2023) 복간본 모두 필자의 학술적 책임 아래 나왔고 해설서도 나왔다. 하지만 원본의 가치를 살리다 보니 비싼 책(2015년 판은 25만원, 2023년 판은 35만원)이 되어 일반인들 접근이 쉽지 않다. 이번 연재는 학술적 해설서를 대중용으로 풀어 연재하는 뜻깊은 기획이다.

해레본 용자례

최고의 세계유산을 푸대접

지난해 복간 기념으로 일본 유스이문화재단(정희승 이사장)과 아이치슈큐토쿠대학교 국제학부(조술섭 교수), 재일본한글학교관서지역협의회(이은숙 회장) 초청으로 나고야, 도쿄, 오사카 등 세 지역 특강을 다녀왔다. 수강생의 반은 일본인이었고 반은 재일동포였는데 반응은 똑같았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해례본에 그런 놀라운 내용이 정말 담겨 있느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해례본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그 책이 왜 세계기록유산이 되었고, 왜 세계 최고의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국내 강연에서의 반응도 비슷했다. 중·고·대학교 학생이든 국어교사와 같은 전문가이든 해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본 경험이 없으므로 보이는 반응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해례본은 66쪽으로 된 한문본으로 현대말로 번역된 번역문은 낭독식으로 읽는다면 평균 한 시간이면 읽을 수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국어국문과나 국어교육과에서 자세히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다. 물론 해례본은 창제 당시로 보나 지금으로 보나 최고의 학문과 사상을 담고 있어 일반인들이 읽기가 쉽지는 않다. 그럴수록 대학교에서라도 가르쳐야 하는데 훈민정음 교육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2005년도에 훈민정음 역사 연구로 첫 번째 박사학위를, 2010년도에는 세종식 사유인 맥락 연구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2020년에는 훈민정음 해례본만의 순수 연구로 세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훈민정음 전공으로 대학교수를 뽑은 적이 없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대학 전임이 될 수 없었다. 재야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강의를 10년째 하고 있지만, 이는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장기 연재로 지상 강의를 마련해 준 ‘충청리뷰’가 고마운 이유이기도 하다.

해례본의 가치와 역사

언해본 어제 서문과 예의
언해본 어제 서문과 예의

1446년에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문자 해설서이자 문자 사상서이며 음성학과 문자학 교본이다. 이 책은 인류의 문자가 지향하고 꿈꾸는 보편 가치와 원리가 담겨 있다. 또한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백성이 쉽게 배워 쓰기 쉬운 문자로 제대로 소통하고 나누는 사회를 이룩하고자 했던 세종대왕의 아름다운 큰 꿈을 담고 있다.

즉 ‘훈민정음’ 해례본은 뛰어난 언어학 저술인 동시에 문자의 사상을 담은 사상서이며, 동아시아의 보편 문자인 한자의 권위에 도전한 정치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훈민정음’이란 문자의 효용성과 그것을 창제한 목적이 어우러져 우리 인류의 찬란한 지성을 끌어낸 역사이자 예술, 문화, 과학 등 모든 가치가 융합된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이다.

이렇게 위대한 책도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경위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세종의 명을 받아 1446년 9월 상한(음력)에 펴낸 초간본, 곧 원본이 언젠가부터 역사의 표면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세종이 직접 쓴 정음 편의 ‘정음 취지문(서문)과 예의’와 ‘정인지서’, ‘정음편(예의편)’을 우리말로 번역한 언해본이 유통되어 왔지만, 해례본은 오랜 세월 동안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원본이 다시 발견된 것은 우리의 말과 글의 주권을 빼앗겨 나라의 운명이 처참한 나락으로 떨어졌던 1940년이었다. 조선 시대 내내 비주류 문자로 무시당해 온 문자의 역사를 반영하듯 어느 집안 서재 한구석에서 그 서러운 역사를 견뎌낸 것이다. 그 흔한 필자, 복각조차 되지 못하고 494년을 알려지지 않았던 ‘훈민정음’ 해례본은 책 자체만으로도 이미 위대하지만, 험난한 역사를 견뎌낸 가치 또한 세상의 도량형으로는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엄청나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문자와 ‘훈민정음’ 해례본의 험난한 역사는 창제자 세종과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 해례본을 완성한 ‘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선로’ 여덟 명과 발견자 이용준, 소장자 전형필 모두의 이름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이 책 속에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와 배경이 분명하게 담겨 있다. 이용준은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의 문화재가 세상에 가치를 드날릴 수 있도록 빛을 보지 못한 책을 세상 밖으로 드러냈다. 간송 전형필은 온몸으로 이 책을 지키고 간직해 세상에 공개하였다.

2008년에 경상북도 상주에서 또 다른 원본으로 추정되는 해례본이 배익기 님에 의해 발견되었으나 출처와 소장자 논란에 휩싸여 아직 공개되고 있지 않아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다.

1940년에 제한 공개된 해례본은 소장자인 간송 전형필의 호를 따서 흔히 ‘간송본’이라 부른다. 일제 말기와 6·25 전쟁 등 민족의 온갖 시련 속에서 책을 지켜온 숭고한 역사와 그 뜻이 이름과 더불어 빛나고 있다. 문자의 탄생과 보급도 기적이지만, 이 책을 지켜온 것도 기적이었다.

해례본 영인본과 복간본의 역사

지난해 10월 일본 대학에서 열린 훈민정음 해례본 초청 강연
지난해 10월 일본 대학에서 열린 훈민정음 해례본 해설 초청 강연

수많은 문화재를 침략과 전쟁의 처참함 속에서 지켜온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그동안 해례본을 대상으로 하여 한 차례의 모사본, 두 차례나 영인본, 두 차례의 복간본 형식으로 그 의미와 내용을 온 국민과 함께 공유해왔다.

간송미술관은 1940년 최초 소장 이후 일제 강점기임을 고려해 모사본(필사본: 송석하)으로 세상에 알린 뒤, 1946년에는 조선어학회 요청으로 최초 영인본(해제: 방종현)을 펴냈고, 1957년에는 통문관의 두 번째 영인본을 허락했다(해제: 이상백, 김민수).

그러나 복사본 수준의 공유 방식은 여러 한계가 있었고 원본을 보고자 하는 국민들의 갈증은 더해 갔다. 2015년에 ‘훈민정음’ 해례본 최초 복간본을 간송미술문화재단과 교보문고에서 필자의 학술적 책임 아래 펴내게 된 것이다. 당시 고가의 책이었지만, 1년 만에 한정판 3천 질이 모두 나가 헌책방에서 2022년 기준 거래 가격이 400만 원까지 치솟아 오르기까지 했다.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2023년에는 해례본은 두 번째 복간본(김슬옹 해제/정우영 감수)을 세종 때 언해본을 최초로 동시에 가온누리에서 펴내 이 책의 가치와 의미를 더 크고 깊게 전 인류와 함께 나누게 되었다.

이러한 숭고한 뜻을 기리는 작업에 이름 없는 서생인 필자가 함께하여 끝없는 감동과 더불어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어찌 이 거대한 작업을 혼자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에 훈민정음을 연구하고 그 가치를 높여온 최세진, 최석정, 신경준, 유희, 헐버트, 주시경, 최현배, 홍기문, 방종현 선생과 같은 선각자들과 해례본 발견 이후 훈민정음 연구를 위해 밤낮으로 연구해 온 수많은 학자들, 그리고 훈민정음을 위해 애써 온 많은 분들의 업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직접 본 행운

2023년에 최초로 동시 복간된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세종 한글 국제홍보대사 후지모토 사오리(왼쪽)와 크리스티안 부르고스(오른쪽)
세종 한글 국제홍보대사 후지모토 사오리(왼
쪽)와 크리스티안 부르고스(오른쪽)

필자가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직접 보는 행운을 얻은 것은 두 차례였다. 첫 번째는 1996년 ‘세계로 한글로’(KBS 10월 9일 방영, 국어정보학회 제작, 이봉원 감독)라는 기록 영화를 찍으면서였다. 고 서정수(한양대), 고 안병희(서울대) 교수와 함께 보았다. 영화 제작을 위해 간송미술문화재단에서는 고이 간직해왔던 원본을 어렵게 공개했다. 비록 필자는 국어정보학회 선임연구원이자 이 영화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조감독으로 참여할 때라서 자세히 살펴볼 여건은 되지 않았지만, 유리창 너머로만 보았던 국보를 직접 대하는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2014년으로 해례본을 다시 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사를 통해 감히 해례본의 해제를 작성하는 분에 넘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실제 출판은 2015년). 2014년 12월 17일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특별 수장고에서 전인건 현 관장, 백인산 학예실장 등과 함께 해례본 원본을 한 시간 가까이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12월 10일 간송가를 방문하여 간송 전형필 첫째 아드님이신 고 전성우 이사장님을 뵙고 난 뒤였다. 이보다 앞서 11월 19일에 교보문고의 정혜림 님이 찾아와 복간본 기획 소식을 전해 주었고 해제를 필자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왜 인류의 고전인가를 설명한 2007년의 저서인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아이세움)을 보고 전문적인 지식을 정확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 믿음이 가서 그리 결정을 했다고 했다.

2015년 10월 6일 기자회견 때 원본을 직접 본 느낌을 어느 기자가 물었다. 무가지보 ‘훈민정음 해례본’을 직접 본 느낌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세종대왕님과 전형필 선생님을 직접 만난 기분이라고 답했다.

2023년에는 세종 때 언해본(재구정본)을 함께 복간해 더욱 의미가 깊다. 해례본은 언해본이 있어 더욱 가치가 있고 언해본은 해례본 없이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남아 있는 언해본 원본은 세종 때 나온 것이지만, 문화재청과 국어사학회에서 2007년에 세종 때 언해본을 재구하였고 실제 간행은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세종을 도운 여덟 명의 신하들은 해례본을 펴내면서 지혜의 세상이 비로소 열린다고도 했고, 문자 없는 오랜 어둠을 가시게 한 큰 빛이 비쳤다고도 했다. 어찌 그때의 감동을 오늘 다시 누리지 않을 수 있으랴.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이글은 2023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최초 복간본 해설서를 대중용으로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김슬옹 :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외대 교육대학원 객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간송미술관 요청으로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직접 보고 최초 복간본을 해설했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훈민정음 해례본만의 순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훈민정음학과 세종학 연구 업적으로 세종문화상 대통령상(학술)과 외솔상(학술), 연문인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세종학과 융합인문학’ 등 우리 말글 관련 111권(70권 공저)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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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현 2024-01-24 18:53:31
'훈민정음 해례본'은 기록의 상징과 실체인 문자의 해설서로 세계기록유산 가운데서도 으뜸이라 할 만한대도 정작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푸대접 받는다는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한글의 위대한 유산의 가치를 지켜내고자 그동안 끊임없이 연구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리며 2023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동시복간과 김슬옹 박사님의 특별기획 '훈민정음 해설' 연재를 통해 학술적 해설서를 대중용으로 풀어내시는 뜻깊은 수고로움이 앞으로도 세상에서 인류의 문자가 지향하고 꿈꾸는 보편가치와 원리를 담은 문자로의 가치를 더욱 빛내주시길 바랍니다.

최정자 2024-01-22 10:50:46
이 기사를 읽으면서 '훈민정음'에 대한 가치를 다시 알게 되었네요
문자에 사상도 담겨 있고 한자 권위에 도전하는 정치적인 목적도 있고 인류 모든 가치가 융합된 인류 최고의 문화 유산인데 그동안 많은 홀대 속에서도 이것을 지키고자 노력하신 분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고 계속 연구가 되고 있다는 사실들이 놀랍고 대단합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남아 있어서 글자 원리를 후손들이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매일 사용하는 한글 속에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김상기 2024-01-19 07:42:10
"지혜의 세상이 비로서 열린다"
이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요?

훈민정음이 세상에 나온 것.
험난한 시간에도 그것을 지켜 낸 것.
모든것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네요.

세종어제의 첫 귀절은 읽을 때마다
가슴 뭉클하고 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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