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61.6%, 악성 민원에 "그냥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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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61.6%, 악성 민원에 "그냥 참아"
  • 박소담 기자
  • 승인 2024.03.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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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메뉴얼 무용지물… 책임자, “혼자 해결해라”
충북 공무원, 전국 79.6%…청주시 공무원 1인당 주민 수 270명 상대

온라인 카페에 신상정보가 공개돼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던 30대 공무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6일 인천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 40분쯤 인천시 서구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서 경기 김포시 9급 공무원인 30대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지난달 29일 김포 도로에서 진행된 포트홀(도로 파임) 보수 공사와 관련해 차량 정체가 빚어지자 수백 통의 항의성 민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지난 20일, 민원공무원 보호를 위한 전담반(TF)을 본격적으로 가동한다고 밝혔다. 이날 TF는 △위법행위 대응 △민원제도 개선 △민원공무원 처우개선 등 3개 분야 과제에 대한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12월 인사혁신처가 공무원 1만98명을 대상으로 ‘공무원 감정노동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공무원들의 감정노동 수준은 감정규제, 감정 부조화, 조직모니터링, 보호 체계 등 4개 분야에서 모두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감정노동 원인으로는 장시간 응대, 무리한 요구로 업무 방해가 31.7%로 가장 많았고, 폭언·협박(29.3%), 보복성 행정제보·신고(20.5%)가 뒤를 이었다. 감정노동 영향은 직무 스트레스 증가 및 자존감 하락(33.5%), 업무 몰입·효율성 저해(27.1%) 등 조직 생산성에 부정적 영향이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감정노동 대응 방법으로 개인적으로 참아서 해결(46.2%)한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특히 감정노동이 신체‧심리적 질병으로 발현되는 경우 대부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있어(61.1%) 건강관리에 취약한 상황임을 나타냈다. 한편 충북도에서 발표한 충북의 공무원 총원은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4827명으로 인구 100만~200만인 도 평균 인원인 6062명의 79.6% 수준이다. 특히 청주시 공무원 1인당 주민 수는 270명이다.

폭언은 일상…상사는 ‘나 몰라라’

충북소속 공무원들의 사례를 들어봤다. 유흥업소 등 옥외광고물 단속을 하던 A주무관은 조직폭력배로부터 긴 시간 협박을 당했다. 이들은 지속해서 A주무관을 찾아와 괴롭혔고, 승합차에 갇혀 다수의 인원으로부터 엄청난 폭언을 당하기도 했다. A주무관은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나 혹시라도 지인들이 알까 두려워 알리지 못했다. 노점상 단속을 하던 B주무관은 회칼로 위협을 당했다. 당시 현장에는 팀장과 동료들이 있었지만, 흉기를 든 민원인을 상대로 어떤 조치도 할 수 없었다. B주무관은 “그 일이 있고 난 뒤 업무에 있어 소극적으로 변하게 됐다”고 말했다. C주무관은 2년 6개월째 같은 민원을 넣는 민원인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합당한 이유 없이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괴롭히고 진정서를 냈다”며 “폭언은 일상이다. ‘민원인도 힘들겠지’ 되뇌며 마음을 다잡지만, 스트레스와 모멸감에 종종 무너진다”고 전했다. 이어 “대처메뉴얼이 있으나 무용지물이다. 이용을 자제시키고 혼자 책임지게 하려는 풍토가 만연하다”며 “실제로 상사에게 읍소했으나 돌아온 건 ‘참아라’는 말뿐이었다”고 전했다. C주무관은 아무도 본인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면직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D주무관은 민원인의 자해공갈 협박을 받았다. 민원의 결과에 불복한 민원인이 흥분해 폭언하다 혼자 의자에서 넘어졌고 치료비 명목의 돈을 요구했다. 이후 해당 센터 의자마다 ‘뒤로 넘어갈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문구와 함께 바퀴 전체에 실리콘 커버를 부착했다. 이후 “의자가 불편하다”는 또 다른 민원인들의 불평을 받고 있다. E주무관은 진정을 하지 못하는 민원인의 어깨를 잡았다는 이유로 성추행으로 경찰에 출석했다. 이후 E주무관은 여성 민원인을 대할 때 팔짱을 낀 채 응대한다. 이후 “건방지다”는 불만이 접수됐다. 그는 “내 자식이 공무원이 된다고 하면 말릴 것이다”라며 “정신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는 공무원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충북 청주시에선 지난 1월 공무원을 폭행하고 욕설을 하며 난동을 부린 민원인이 법정구속 됐다. 지난달 경기도 파주에서는 한 민원인이 동일한 민원을 1000회에 걸쳐 제기하고 공무원의 머리를 둔기로 때린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또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며 담당 공무원을 살해한다고 협박했다. 지난해 7월에는 경기도에서 세무공무원이 악성 민원인을 응대하다가 숨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서류 발급을 위해 방문한 민원인이 고성을 지르며 항의하자 실신한 공무원은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시민과 공무원, 상호 존중 해야

행정문화위원회 김완식 위원은 지난 18일 청주시 본회의에서 ‘청주시 악성 민원 근절 및 공무원의 내적 강화를 위한 방안’을 촉구했다. 김 위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원노동조합이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공무원 84%가 악성 민원을 겪었다. 이에 김 위원은 △체계적인 스트레스 관리 시스템 구축 △상급 이상 직원 책임감 강조 교육 증설 등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무원들의 정신건강과 스트레스를 관리할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주변에 도움을 받지 못한 신규공무원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다. 이들이 지속해서 이탈하면 후에 누가 시민을 위해 일하겠느냐”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공무원들은 시민들과 함께 지역을 발전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상호 존중의 자세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는 “공무원은 명령어를 입력하면 일하는 인공지능(AI)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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