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아래 도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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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아래 도끼 들었다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7.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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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혁 상 충북인뉴스 편집장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른 대통령 때문에 ‘개구즉화(開口卽禍)’라는 새 유행어가 생겼다. 한나라당 대변인실에서 ‘(대통령이)입만 열면 화가 닥친다’는 뜻으로 만든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자신의 화법에 대해 ‘절제되지 못한 표현’을 인정했고 ‘변하지 못해 탈’이라고 고백했다. 대통령의 고백을 허투루 듣고 싶진 않지만,’그래도 할 말은 하겠다’고 다시 정색을 하니 그 뜻을 가늠하기 힘들다.

대통령의 설화(說禍)에 가슴졸인 도민들이 최근에는 도지사의 설화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다. 올 한해 충북의 핫이슈가 됐던 혁신도시 분산배치(공공기관 개별이전)를 놓고 제천 민경환 도의원과 벌인 설전 때문이다. 지난 22일 도의회 정례회 폐회에 앞서 자유발언을 신청한 민 의원은 충북도가 제천 교육연수타운 연구용역비 2억원을 편성하지 않은 것을 따지고 나섰다.

“국회에서 개별이전 법안이 무산되자 슬그머니 연구용역비를 삭감했다”며 ‘양두구육(羊頭拘肉)’이라고 몰아세웠다. “앞으로 더 이상 도의 교언영색(巧言令色)에 속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양두구육은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인데, 행여 ‘양의 탈을 쓴 늑대’로 오역한다면 큰 싸움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이날 도의회 본회의장에는 정례회 폐회에 대한 의전관행으로 정우택 지사가 참석했다. ‘양두구육’ ‘교언영색’으로 내몰린 정 지사의 답변이 고울리 만무였다. 그동안 제천 분산배치 당위성을 공개적으로 밝혀온 정 지사로써는 예상밖의 뒷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다소 ‘절제된 표현’을 구사했다면 ‘바늘 찌르기’로 끝났을텐데, 이날 민 의원의 발언은 ‘대못 박기’ 정도의 수위였다.

결국 분노한 정 지사 또한 수위를 넘고 말았다. “어디다 대고 함부로 그렇게 얘기를 해. 초선이고 나이가 젊어서 내가 잘 해주려고 했는데, 말 똑바로 해” 반말로 격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흥분했다. 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지자 도의원들은 ‘의회경시’ 라며 들끓었고 제천 개별이전대책위는 즉각 유감성명을 발표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선출직 공직자인 지사와 도의원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쏟아낸 이번 발언은 모두 ‘옐로카드’ 감이다. 민 의원은 제천 지역구 주민을 의식해 ‘오버’했고 정 지사는 신랄한 정치공세에 ‘판단력’을 잃고 말았다. 또다시 반칙을 범하면 유권자들은 지체없이 ‘레드카드’를 치켜들 것이다.

영국의 처질 수상은 유머있는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하루는 처칠이 그만 늦잠을 잤는데 그와 뜻이 맞지 않는 정치인이 “영국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게으른 정치인을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자 처칠은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맞받았는 것. “글쎄요, 당신도 나처럼 예쁜 아내와 함께 산다면 아침에 절대 일찍 일어나지 못할걸요?” 아마도 상대방은 할 말을 잃었을 테고 주변사람들은 웃음을 참느라 혼났을 것이다.

만약 우리 정우택 지사가 민 의원의 ‘양두구육’에 대해 “전 개고기를 못 먹습니다. 그런데 양두구육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사실은 구두양육(狗頭羊肉)을 한 것인데 민 의원이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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