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여건은 후진국인데 예체능 평가는 선진국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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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여건은 후진국인데 예체능 평가는 선진국형으로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3.05.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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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사교육비 절감위해 예체능 과목 등급제 평가 폐지

일선 담당 교사, ‘예체능 과목 죽이기다’ 반발 운동 전개
교원대, ‘예체능 과목 등급화 폐지 반대’ 퍼포먼스 벌여

지난 22일 한국교원대 캠퍼스에서는 ‘예술교육 장례식’이 열렸다. 교육인적자원부가 4월 9일 발표한 ‘예체능 과목 평가제도 변경’을 반대하는 이날의 퍼포먼스는 조용한 캠퍼스에 느닷없이 저승사자, 시체들, 정령들이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이슈를 낳았다.

퍼포먼스는 죽은 예술교육을 상징한 ‘예술’영정을 든 사내와 그 뒤를 따르는 관의 행렬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18구의 시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누워있는 잔디밭으로 향하고, 이곳에서 예술교육을 받지 못해 생생한 삶을 살지 못하는 시체들이 하나둘씩 관을 따라 일어난다. 무려 20m가 넘는 긴 행렬을 이루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인 기숙사 식당으로 이동, 이곳에는 노란 가면을 쓴 정령들이 이들을 맞이한다. 관을 안치하면 시체들은 관 주변부로 서서히 쓰러지고, 이때 곡소리와 함께 장중한 음악이 맞물려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접 만든 국화꽃 70송이를 관객들에게 나눠주고 헌화하는 것으로 퍼포먼스는 막을 내린다. 이를 총감독한 이선경(미술교육과·22)씨는 “앞으로 이러한 이미지 시위, 의식있는 시위를 계속 벌일 것이다. 친분에 의한 서명이 아닌 깊은 이해와 의식있는 서명촉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학내에서 1, 2차 서명을 받았고, 음악· 미술·체육 교과 전공자들이 모여 공대위를 결성, 성명서 발표와 기타 대학과 연계해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예술체육교육정상화를 위한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예동희(미술교육과·27)씨는 “겉으로는 전인교육, 창의적 교육을 내세우고 있지만, 가장 기본이 돼야할 공교육에서 예체능교과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이것은 단순한 밥그릇 문제가 아니다. 교육부는 문화적 소양의 싹을 없애는 문화말살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5월 10일에는 서울 종각에서 광화문, 인사동, 탑골공원 일원까지 교원대 미술교육과 퍼포먼스팀(약 40여명)과 기성 행위 미술가 2팀이 연계해서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느린 속도로 광화문에서 탑골공원까지 행진하며 일반시민, 인사동 예술인들을 행렬에 동참시키고, 퍼포먼스가 끝난후 인사동 지역에 분산해서 서명운동과, 호소문도 발표할 계획이다.

예체능 과목 내신에 반영 안돼?

이들이 벌이는 시위명은 ‘yellow wave’. 노란색은 경고·보호색·희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오른팔에 노란색 완장을 차고, 대자보의 색도 노란색으로 통일시켰다.

‘yellow wave’의 경고 메시지는 바로 ‘예체능 과목의 평가제도 변경 반대’다. 이는 교육부가 예체능 과목에 대한 평가를 ‘수·우·미·양·갗 등급제에서 개개인에 맞춘 서술형과 과목 이수 여부만을 기록하는 합격·불합격(Pass/Fail)제도로 바꾼다는 것이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00년도 전체 사교육비 약 7조 1000억원 중 초등학생이 지출하는 비중이 52%이고, 또 예체능교육비가 41%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교육부는 사교육비 절감 방안으로 예체능 과목의 평가방식을 변경, 학생들에게 성적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즉, 예체능 교과를 내신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예체능 담당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성도 한국교원대(미술교육과)교수는 “이 통계는 유아·초등 저학년의 특기 적성비, 피아노 레슨비, 태권도 도장비, 아이 보육비 등이 모두 포함됐다. 실질적인 ‘예체능 과외’ 라는 항목은 따로 없다. 또한 중·고등학교에서 예체능 교육을 받는 인구는 일부 부유층 자녀나 대학에서 전공을 하기 위해 배우는 학생들 뿐인데 마치 예체능 과외를 모두 받는 것처럼 몰고 가고 있다. 지금도 예체능 과목은 주변교과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도가 실시되면 내신에 반영되지 않는 과목을 선택할 학생이 몇명이겠는가. 결국 예체능 과목을 학교밖으로 내몰겠다는 결론밖에 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단지 예체능 과목의 평가방식만을 바꾸자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주 1시간으로 미술수업한다

하지만 예체능 교사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크다. 가뜩이나 입시에 밀려 빈번히 국영수 과목으로 수업이 대치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 7차 교육과정이 되면서 예체능 과목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면서 수업 시수 또한 크게 줄었다. 중학교는 음악·미술 2·3학년의 경우 주당 1~2시간에서 1시간으로, 체육시간(1·2학년)은 주당 3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었고, 고등학교는 음악·미술 총 8단위에서 1단위, 체육 14단위에서 2단위로 무려 7~12단위가 줄었다.

도내 ㅊ중 미술교사 김모씨(43)는 “국영수 과목이 5시간에서 1시간 준 것은 20%가 준것이지만, 예체능 시간이 2시간에서 1시간으로 준 것은 50%가 준 것이다. 사실 주당 1시간으로 미술수업을 하다보면 물 떠다놓고, 물감 풀어 놓다가 시간 다간다. 수채화 강의를 한다고 해도 재료 준비하고, 팔레트 씻는 시간도 빠듯하다. 여기에 창의적 수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고 말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의 경우 내년이 되면 예체능 교과를 선택할 수 있다. ㅊ고에 다니는 최모군(고1)은 “예체능이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데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 그동안 예체능 평가때문에 적지않은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예체능 평가, 효과적인 대안없나

예체능 평가 자체만을 두고도 말이 많다. 체육수업은 ‘슛’을 잘 넣고, 달리기를 잘하면 ‘수’. 음악은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느냐, 악기를 잘다루냐의 항목으로 점수를 매긴다. 미술도 마찬가지. 얼마나 잘 만들고, 잘 그리냐는 식이다. 예술평가가 주관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소신을 갖고 정성껏 점수를 매긴다고 해도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원망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일선학교의 예체능 평가는 기본점수를 70점으로 두는 ‘고육책’을 쓰고 있다.

또한 예체능에 대한 학부모, 학생들의 인식도 낮다. 여름방학 숙제로 음악회에 가서 감상문을 쓰라는 숙제를 낸 이모(36)교사는 “아이들은 숙제를 낼때 성적에 들어가냐고 먼저 묻는다. 또 학부모들에게서는 왜 돈 들어가는 숙제를 내냐고 따져 묻는 전화가 수백통 걸려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내놓은 대안 또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교원대 이성도 교수는 “한 교사가 보통 주마다 500~600명의 학생들을 만나는데, 아이들 이름도 기억 못하는데 이들에 대해 일일히 서술식으로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꼬집었다.

반면 예체능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에 대해 심화학습이 이뤄지고, 성적에 연연해 하지 않을 수 있어 창의적인 수업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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