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모시는 시인, 세상 모든 사물에 ‘말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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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모시는 시인, 세상 모든 사물에 ‘말걸기’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7.08.23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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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시인 네 번째 시집 ‘손길’
   
 
   
 
김은숙 시인(46)은 세상 모든 사물에 대해 따뜻한 ‘손’을 내민다. 무가치해보이고, 때로는 너무나 평범하게 느껴지는 사물들까지. 시인은 흐르는 물에 손을 적시며 물의 통곡을 듣기도 하고, 나무의 휜 등을 어루만지며 사랑의 방향을 감지한다. 김은숙 시인은 최근 4번째 시집 ‘손길’(천년의 시작 刊)을 펴냈다.

‘그 사람 / 꽃을 가꾼다 // 무표정의 회색 공간을 / 꽃밭으로 일군다 // 봉숭아 채송화 나팔꽃 별꽃 작고 고운 이름들이 / 옹기종기 다정스레 어깨 결으며 눈 맞추는 작은 터 / 오가는 시선들 어느새 머물러 / 마음 속 꽃나무에도 하나 둘 붉은 잎 핀다 // 여린 생명 쓰다듬는 손길에 자라 / 뿌리와 잎새의 순한 사랑이 / 저 붉은 꽃잎 피우는 아름다운 섭리 / 바라보는 마음도 스스로 둥글어진다 // 꽃을 가꾸는 사람 / 그 사람의 손길‘
-<손길> 전문

이승하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은 거의 모든 작품이 시간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명과 시간에 대한 탐구’로 시집을 읽어냈다”고 말했다.

김은숙 시인은 지난 98년, 38살 나이에 첫 시집을 냈다. 충북대학교와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공부한 김 시인은 “시는 평생 짊어질 업”이라고 짧게 말한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시집이다. “돌이켜보면 두 번째 시집을 낼 때 가장 어려운 시를 썼던 것 같아요. 세 번째 시집을 내면서 마음이 좀 편안해졌고, 지금은 주변 것들을 보살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지난번 세 번째 시집을 낼 때부터 그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이버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 주소는 http://poempost.new21.net 이다.

“사이버상에서는 천천히 오랜 시간 시집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반면 시집을 낼 때마다 앓는 ‘몸살’도 그만큼 오래간다고.

“요즘엔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시안에서 읽혀진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이젠 수평의 마음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돌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의 시 ‘월곶에서 나부끼다’를 보면 우리 삶 자체가 소금창고라고 비유한다. 모든 눈물에는 소금기가 있듯이 우리 삶에도 소금이 배어 있어서 따갑다고. 또 시 ‘맨몸으로 서다’에서는 선운사 대웅전 앞 배롱나무를 보고 시인은 눈물을 흘린다. 선승의 자세로 묵언정진하는 나무들은 수백년의 세월을 견디며, 결국 맨몸으로 당당히 서 있었다는 것.

이처럼 시인은 사물과 자연에 대한 구도자적인 시선을 늦추지 않는다.

‘한 그릇의 밥을 모시듯 / 모시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들이 새삼 많이 보인다 / 한 술 한 술 밥숟가락을 떠 넣으며 / 바닥으로 꺼져 들어가듯 나는 자꾸 작아지고 /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고에, 사람과 세상에 정말 많은 것들에 / 두 손 모으는 기도처럼 수없이 절을 올린다’
―<밥 잘 모시기> 中

‘시인시각’ 편집주간인 배한봉 시인은 “시인이 보여주는 시의 몸은 ‘알몸’이고, 마음의 풍경은 ‘간절함’으로 채색되어 있다. 사랑과 평화에 가 닿고자 하는 그 알몸의 간절함이 고통과 슬픔, 그리고 쓸쓸함과 그리움 등과 융합되어 노래로 태어나고 있는데, 그녀의 고통과 슬픔과 그리움은 뜨거우면서도 외따롭다. ‘맨몸’으로 서서 ‘생애의 간절함’을 노래하는 그녀의 시편들을 읽다보니 어느 새 스스로도 어떤 간절함에 가 닿아 뜨겁게 끓고 있음을 느낀다”고 평했다.

충북 청원군 청원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인 김은숙씨는 2003년 10월 ‘아름다운 소멸’( 천년의 시작 刊) 출간 이후, 2004, 2005, 2006 ‘좋은 시’(도서출판 삶과 꿈 刊)에 작품이 선정 수록되는 등 다른 지역에서도 이미 알려진 사인이다. 그는 현재 충북작가회의부회장, 시천동인회장, 내륙문학회원 등 지역에서도 활발한 문학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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