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넘겨주고 총선이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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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넘겨주고 총선이 받고…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7.12.27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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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008’ 양대 선거 계기로 뜨고 지는 인물 수두룩

한용운은 ‘떠날 때의 님의 얼굴’이라는 시에서 ‘꽃은 떨어지는 향기가 아름답고, 해는 지는 빛이 곱다’고 노래했지만 정치라는 정글 속에는 이 같은 낭만이 없다. 청와대와 여의도라는 국가권력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양대 선거가 맞물려있는 2007년과 2008년은 그래서 잔인하다. 승자의 꽃다발과 환호 뒤에는 패자의 한숨과 눈물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1년 내내 대통령 선거가 화두였던 2007년에는 대통령의 낮은 국정지지도를 빌미로 여권의 ‘헤쳐모여’가 잇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참패한 대통합민주신당이 어떤 진용으로 18대 총선에 임할지가 관심사다.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압승했지만 압도적인 결과를 놓고 더욱 속상한 집단은 정작 내부에 있다. 당내 경선 결과 대의원 투표에서 이기고도 여론조사에서 밀린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예선이 사실상 결승이 되고 말았으니 ‘1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사실만으로 ‘속풀이’가 됐을 리 만무하기 때문. 총선 공천에서도 ‘박(朴) 진영’이 배제된다면 울분이 폭발할 수도 있다.

2007년, 지방의회는 지방에 없었다. 한나라당의 경우 도내 지역구 국회의원이 전무하다보니 지방의원들이 대거 선거판에 동원된 것. 몇몇 수장급은 위상을 한껏 높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초의회에 대한 정당공천과 맞물려 지방의회의 정치 종속을 가속화시켰다는 평가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인은 끊임없이 포장되지만 때로는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낸다. 스타정치인의 참혹한 몰락을 지켜보면 연예계와 비슷하다. 컴백한 인사들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도 그렇다. 양대 선거를 치르고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이른바 외길 정치인들이 소신을 바꾸는 사례가 잇따랐다. 또 원로정치인들이 다시 일선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승리한다면 모르지만 패배에 뒤따르는 것은 손가락질이 될 수밖에 없다.

바람을 향해 모래를 던지다
여권 이합집산 결국 대선 무기력 자초

   
 
  ▲ 충북의 지역구 의원들은 꾸준히 반노 성향을 유지했다. 변재일의원.  
 
2007년 대선 결과를 혹평한 표현 중에 하나가 ‘부패가 무능을 이겼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조 섞인 이 평가는 여권의 처지에서 볼 때 한마디로 말해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벌어졌다는 얘기다. 조직이 움직이지 않았고, 잇따른 폭로에도 민심이 동하지 않았던 것.

1년여 동안 한번도 엎어지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를 고려할 때 승부는 예상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반전의 분위기조차 만들지 못한 무기력은 여권 내부에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 등으로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국정지지도가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서로 책임을 물으려는 실용과 진보논쟁이 이어졌고, 결국 일부 의원들의 선도 탈당과 중도개혁신당 창당, 중도개혁신당과 민주당의 통합, 대통합민주신당 창당과 선도 탈당 세력의 귀환이라는 수순을 밟았기 때문이다. 도내 국회의원 가운데 변재일(청원), 서재관(제천·단양) 의원이 ‘나갔다 돌아온’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나 국면을 전환하려는 이 같은 이합집산이 전혀 소용이 없었음은 대선 결과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여권의 헤쳐모여는 결국

   
 
  ▲ 서재관 의원은 대통령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선도 탈당했으나 결국 대통합민주신당 출범에 합류했다.  
 
인기 없는 대통령과 자신들을 분리하려는 시도였지만 국민들로부터 전혀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참여정부의 자산은 물론 부채도 승계해야 한다’며 발족한 참여정부평가포럼에 관계했던 지역인사 A씨는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이라는 원칙에 충실했던 참여정부가 수도권에서 혹평을 받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방에서조차 평가절하를 당하게 된 것은 오히려 여권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며 “하이닉스 증설공장 유치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충북은 특히 1급 수혜지역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또 “야당이 대통령을 욕하고 여당도 거드는 마당에 선거에서 이긴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니겠냐”며 “오합지졸이 모인 거대 여당이 아니라 소수 정예가 모인 이념정당이었다면 이렇게 무기력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결국 예선이 결승
총선 공천 지분 둘러싼 李-朴 갈등 내재

이명박 당선자의 과반 득표로 끝난 17대 대선 결과를 놓고 볼 때 사실상 한나라당 경선이 결승전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8월19일 실시된 한나라당 경선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2452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밀리고도 여론조사에 힘입어 결과를 역전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충북지역은 박 후보가 청주, 제천, 단양, 음성, 옥천, 보은에서 강세를 보이면서 충주, 괴산, 영동 등 일부 지역에서만 고전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결과는 냉정했다. 18대 총선 공천을 염두에 두고 친박(親朴), 친이(親李)로 나뉘어 줄서기가 이뤄진 상황에서 승자가 표정관리를 하지 못해 반목과 질시가 이어진 것.

   
 
  ▲ 탄핵 후폭풍으로 여당이 다수당을 유지했으나 지방권력은 사실상 한나라당에 집중됐다. 그렇다보니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한나라당에 정치지망생들이 몰렸고, 내년 총선도 같은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공천 갈등.  
 
MB캠프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던 모 인사와 그 지지자들이 술자리에서 도당위원장 출마를 위한 출정식을 벌였다’는 소문이 유포되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지역의 박 대표 지지자들로부터 ‘우리는 충북에서 지지 않았다’는 항변이 흘러나왔을 정도. 한나라당 충북선대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친박 진영의 투톱 가운데 한 사람인 송광호 제천·단양 당원협 운영위원장이 중앙당 제2사무부총장에 임명되고, 역시 친박인 윤경식 흥덕갑 위원장, 허세욱 충주 위원장이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것과 관련해서도 기층 지지자들의 반발이 잇따랐다. 자신들의 진로와 관련해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제 살길을 찾아 움직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경선캠프에서 일했던 한 지지자는 충청리뷰와 인터뷰에서 “저희들만 새 장가를 가려고 애들은 고아원에 보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정치를 안하면 그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선 승리의 함성 속에 묻혔지만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총선 공천결과가 이 당선자 쪽으로 쏠릴 경우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 충북도당 산하 9개 당원협의회 가운데 친박 위원장은 5명, 친이 위원장은 4명으로 박 전 대표 세력이 오히려 우세하다.

빠질수록 깊어지는 종속의 늪
지방의원 선거판 동원, 일부는 총선 눈길

   
 
  ▲ 17대 대선에서는 지방의원들의 줄서기가 유난히 두드러졌다. 일부 지방의원들은 이 같은 상황을 틈타 국회의원으로 신분상승을 꾀하고 있다. 사진 중앙은 대선에 올인했던 오장세 도의회 의장과 남동우 청주시의회 의장.  
 
충북의 지방의회는 17대 대선에 푹 빠졌다. 해가 바뀐다고 헤어 나오기는커녕 총선정국에 더욱 깊이 빠져들 것이 뻔하다. 지방의회의 정치 종속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하나는 기초의회에 대한 정당공천 등을 무기로 지방정치를 줄 세우려는 중앙정치의 속셈이고, 또 하나는 신분상승을 꾀하려는 지방의회 의원들의 야망이다.

지방의원들에 대한 선거판 동원은 일단 지지선언으로 시작됐다. 여당이 지역구 국회의원을 석권했다면 한나라당이 지방의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지방의회 의원들이 지난 6월부터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해 경쟁적으로 지지선언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6월12일 충북도의회 정윤숙 산업경제위원장 등 도의원 18명이 박 전 대표에 대해 지지를 선언하자, 이 전 시장 측에서 시·군의원 지지자를 총망라하는 51명 지지선언으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방의원들은 사실상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원협 운영위원장에게 끌려가다시피 줄을 선 경우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돼 물의를 빚기도 했다. 심지어는 ‘마음속으로 지지하는 후보와 지지를 선언한 후보가 다르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당시 이 전 시장 캠프의 기획본부장으로 발표된 최재옥 도의원은 “개인적으로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모친상 때문에 일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지지선언자 명단에도 포함됐고, 기획본부장에 임명된 사실은 언론을 보고 알았다”고 말했을 정도.

오장세 충북도의회 의장과 남동우 청주시의회 의장 등은 대선을 디딤돌 삼아 총선을 넘보는 경우다. 오 의장과 남의장은 각각 한나라 충북선대위에서 총괄본부장과 특보단장을 맡았다.
오 의장은 자신의 활동에 대해 “언론에 일일이 거론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한마디로 말해 목숨을 걸고 했다”며 그동안 우유부단하게 비쳐온 이미지와 달리 결기어린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외길 정치인의 탈선 그 승률은?
Mr DJ 김기영, 장한량 등 도박 같은 승부수

   
 
  ▲ 야당시절부터 외길을 걸어온 김기영씨가 소신을 접고 각각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 진영에 합류했다. 이들이 겨냥한 것은 18대 총선이지만 도박 같은 승부수의 승률은 예측 불가다.  
 
2007년 지역정가에서 눈여겨볼만한 또 하나의 현상은 이른바 외길 정치인들의 탈선이다. 주류는 아니더라도 꿋꿋하게 소신을 지켜왔던 정치인들이 정치지형의 변화 속에서 도박 같은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공히 민주당 도당위원장을 지내는 등 Mr DJ로 쌍벽을 겨루던 김기영, 장한량씨가 각각 한나라당, 무소속 이회창 후보 진영으로 투항한 것이다. 김기영 전 위원장은 이미 지난 4월 충청리뷰와 인터뷰에서 이미 한나라당으로 가기 위해 보따리는 싸놓았고 택일만 남은 착잡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10월4일 입당이 불허되자 이에 반발하며 이의신청을 냈고 결국 입당이 허용됐다.

장한량 전 위원장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비리로 점철돼 있고, 자격이 없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죄악이라는 생각에 고심 끝에 당을 떠나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게 됐다”며 전격적으로 창 캠프에 합류했다. 그러나 “신념을 지키며 정치를 하다보니 아직 출세를 하지 못했다. 이제는 주민 뜻을 받는 정치를 해보고 싶다”는 말로 비장한 총선 출사표를 던졌다. 두 전 위원장은 과거 민주당 시절 공히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선 적이 있지만 이는 당의 부당한 공천에 항거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복당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실제로 김 전 위원장은 16대 총선 당시 당이 정종택 충청대 학장을 전격 공천하자 이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를 결행했다. 장 전 위원장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자민련과 연합공천 형식으로 충북지사 후보를

   
 
  ▲ 장한량(오른쪽)씨가 소신을 접고 각각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 진영에 합류했다. 이들이 겨냥한 것은 18대 총선이지만 도박 같은 승부수의 승률은 예측 불가다.  
 
내지 않자 무소속으로 도지사에 출마하는 등 나름대로 뚝심을 보였지만 즉시 복당했다.

김 전 위원장으로서는 한나라당 청원선거구 공천을 놓고 오성균 당원협 위원장과 겨뤄야 하지만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장 전 위원장은 이회창 신당이 뜰 경우 공천은 가시권에 있지만 본선 경쟁력이 문제다. 두 정치인 모두 총선에서 당선되면 오뚝이 대접을 받겠지만 낙선은 곧 정치인생의 종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돌아온 올드보이’ 흥행 미지수
신경식 MB, 김진영 昌 업고 정치활동 재개

표에는 연령도 없고 계층도 없다. 입이 닳도록 서민정책을 운운하고 경로당 문턱이 분주하도록 드나드는 것이 선거의 속성이다. 대선후보들이 전직 대통령을 찾아가고, 원로정치인들의 덕담을 고대하는 것도 알곡이든 이삭이든 가리지 않고 주우려는 심산에 따른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일부 원로정치인들이 덕담을 던지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정치일선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충청지역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거리유세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역에서는 2002년 대선에서 선거기획단장을 맡았다가 차떼기 수사로 퇴출됐던 신경식 전 의원이 이명박 후보 30인 고문단의 한 사람으로 재등장했고, 국민당 소속으로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진영씨가 무소속 이회창 후보 충북연락소장으로 컴백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신경식 전 의원이 이 전 총재의 품을 떠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배후로 자리를 옮긴 반면 김진영 전 의원은 ‘이회창 선생 제17대 대통령후보 추대위원회’라는 조직을 결성해 이 전 총재의 출마를 촉구하면서 정치를 재개했다는 것이다.

   
 
  ▲ 올해 대선에서도 노정객들의 정치 재개가 잇따랐다. 신경식 전 의원(왼쪽)은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복심으로 중책으로 맡았으나 이번에는 이명박 당선자를 밀었다. 사진은 청주 거리유세 대신 열린 당원행사.  
 
6선 의원으로 16대 국회부의장을 지낸 김종호 전 의원도 한 번만 더 당선되면 충북에서도 국회의장이 나온다는 논리로 18대 총선 진천·음성·괴산·증평 지역구 예비후보(한나라당)로 일찌감치 등록했다. 이들 세 정객은 모두 내년 총선 출마가 확실시 되고 있다.
신 전 의원은 11월 초 충청리뷰와 전화통화에서 “개인적으로 고민 속에 들어있는데, 꼭 재개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이것저것 보겠지만 아직까지는 담담한 입장”이라고 밝혔지만 측근들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김진영 전 의원은 “昌님의 지시에 따르겠다”며 사실상 출사표를 던졌다.
한나라당 관계자 Q씨는 “선거 과정에서야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여기저기 지지를 호소했지만 당선자 입장에서는 불편한 과거와의 단절을 바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냐”며 원로정치인들이 막상 총선 본선무대에 이름을 올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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