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공부 하다 콜렉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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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부 하다 콜렉터가 됐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8.02.27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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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순 씨, 첫 수집품은 운보 바보산수
한석봉 친필부터 현대회화까지 900여점 수집

   
 
  ▲ 박권순 씨는 운보의 ‘바보산수’를 시작으로 미술품 100개만 모으자고 했던 것이 1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900여개로 늘어났다. 박권순 씨는 본인의 일명 창고 갤러리에서 영친왕비였던 이방자 여사의 작품을 들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 사진=육성준 기자  
 

콜렉터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작품의 양과, 그에 정비례하는 ‘거래 뒷담화’다. 그런데 여기 중년의 두 콜렉터는 “팔려고 모으면 장사꾼이고, 그냥 재미가 났을 뿐”이라며 말을 아낀다. 그리곤 “나중에 밥벌이 못하면, 하나씩 팔면서 생을 마감할 지도 모르지”라며 솔직하게 말을 이어간다.

콜렉터들에게 ‘왜’작품을 모으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그건 ‘성격’이 아니라 수집이 가져다주는 ‘재미’를 맛보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세상에 흔치 않는, 또는 잊혀져가는 물건을 모으는 사람들. 이들은 세월을 낚는 수집가일지 모른다. / 편집자

소용(素用) 박권순 선생(53)의 공식명함은 (주)뉴코아 건설 대표이사이자, 민주통일협의회 고문이다. 명함이 말해주는 ‘다소 권위적일 것 같은 분위기’를 깬 것은 역시 미술품 수집 이야기를 꺼내면서다. “처음에는 역사공부하면서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눈여겨보게 됐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구매로 이어졌는데 첫 작품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바보산수’였어요.”

그는 수집을 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또 공부를 하면서 수집의 깊이와 양도 넓혀갔다고. 이렇게 모은 수집품은 900여점에 다다른다. 보물수첩과도 같은 그의 파란 파일에는 사진과 작품 설명, 작가 이력 등이 깔끔하게 정리돼있다. “수집은 묘한 긴장감을 요합니다. 또한 정리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계속 해나갈 수가 없어요.”
사실 작품들은 그의 사무실 옆 작은 창고에 빼곡히 쌓아져 있다. 작품 연대, 작가명 등 그만의 표기법이 따로 있다고. “사실 이 일 손에 잡으면 재미가 나서 다른 건 아무것도 못해요.”

수집은 발품도 팔아야 하지만, 시간도 맘도 많이 뺏긴다. “처음에는 가족들 반대가 심했어요. 혼나면서(?) 몰래 몰래 구입했으니까요. 그런데 지난해 전시하는 과정을 보고, 이제는 많이 달라졌어요.”

   
 
  ▲ 석봉 한호의 글씨. 36×56×8  
 
그는 지난해 말 대청호 미술관에서 소장품 전을 열어 140여점을 세상에 내놓았다. 전시는 올 2월 초 까지 이어졌다. 소장품 전에서는 한국의 6대 화가로 불리는 김은호, 박승무, 노수현, 허백련을 비롯해 운보 김기창, 박생광 등 한국화단 거목들의 작품과 김정희, 한석봉, 한봉수의 붓글씨, 그리고 유명 서예인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박수근, 박성남(박수근의 장남), 박인숙(장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판화가 오윤과 변종하, 이방자 여사 등 다양한 장르의 서양화 39점도 함께 내걸었다. 지인들은 방대한 수집 양에 한번, 그의 미술품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에 두 번 놀랐다고 한다.

박 씨가 미술품 수집에 나선 것은 지난 10여 년 전 일이다. 그는 “어릴 적 민화를 곧잘 그리셨던 아버지 밑에서 컸고, 막내 동생 (서양화가 박기원)은 지금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어요”라며 범상치 않은 계보를 자랑했다. 박기원 씨는 충북대 출신으로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최근 삼성 리움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박씨는 100점만 모으면 미술관 등록이 난다고 해서, 처음 수집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지금은 10배 가까이 더 모았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일본에 가면 동네마다 작은 미술관이 있어요. 이를 벤치마킹해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엔 지역민과 나눌 수 있는 전문 미술관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아직 공개되지 않은 김홍도의 그림과 의친왕의 친필이 펼쳐진다. 또 중화민국 초대총통이었던 위안스카이의 글씨와 일본 남화 1인자로 불리는 고무르 스이운의 작품까지 나온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모았을까. “서울 화랑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면 먼저 연락이 옵니다. 그동안 쌓은 신뢰를 통해 작품을 보기도 하고, 일일이 작가를 찾아다니며 구매하기도 합니다.”

그는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몇 년 사이 미술시장이 기형적으로 커졌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고 노력하는데 아직 그 문화는 쫓아가지 못해요. 일단 콜렉터들만 해도 많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경제논리상 시간이 지나면 미술품도 당연히 값이 오를꺼예요. 하지만 팔려고 모으면 장사꾼이지 싶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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