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보단 목수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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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보단 목수가 되고 싶어요”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8.03.06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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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기법으로 원목가구 제작하는 서양화가 김경순씨
3~4년 후엔 가구 전시회도 열 계획
   
 
  ▲ 김경순 씨는 7년차 목수다. ‘괜찮은 소목장’이 되고 싶다는 그는 오늘도 캔버스 대신에 나무를 매만지고 있다.  
 
청원군 북이면 내추리 문화마을엔 가구를 만드는 예술가 김경순(38)씨와 그의 아내 안설애(36)씨가 살고 있다. 그는 ‘가구를 만드는 예술’가 보단, ‘목수다운 목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작은 시골집엔 아직 세우지 못한 나무 간판과 손님맞이용 나무 식탁이 다소곳이 놓여있었다. “지난 1월 초에 이사해서 아직 정리중이예요.” 김경순 씨의 느릿한 말투가 정겹다.

이사 오기 전에는 수곡동에서 소목공방(小木工房)을 운영했다. 새해 들어 주인이 세를 올려 김경순 씨 부부는 이곳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김 씨는 “아담한 뜰과 나무 저장창고를 갖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며 웃음을 보였다.

좁은 방안 곳곳 그의 가구들이 놓여있다. 그의 집은 곧 작은 전시장이다. 소박한 나무 나이테에 어울리는 특이한 장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경주 가서 구입한 문인데, 장식장 문으로 덧대봤어요.” 그는 이렇게 오래된 집이나 고택에서 얻은 나무들을 다시 가구에 활용한다. 말하자면 요즘 유행하는 리폼, 즉 재활용이다.
“사실 나무가 많이 귀해요. 숭례문이 무너진 이후 복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나무 구하기라고 하잖아요. 우리나라는 쓸 만한 나무들은 이미 법적으로 벌목할 수 가 없어요. 그래서 목재들은 수입품이 많아요. 때로는 고택에서 전문적으로 나무를 채집해 목수들에게 팔기도 하죠.”

그는 청주대 91학번으로 서양미술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 두 번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줄곧 가구 만드는 일에 매진했다. “한 때 밥벌이를 위해 인테리어 일을 했는데, 계속 나무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나무를 어떻게 다룰지 몰라서 나름대로 공부하다가 그렇게 7년여의 세월이 보냈어요. 지금은 나무를 만지고만 있어도 좋아요. 대패질할 때 드러나는 나무 속살은 여인의 살결 같이 부드럽다니까요.”

사실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다. 그는 “아버님은 대학교 때 돌아가셔서, 기술을 전수받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골동품 가게를 돌면서 수집을 하고, 독학으로 도면을 짜면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졸업 후 7년 동안 가구에 매달려
그의 가구 만들기는 ‘느리게’ 진행됐고, 또 전통을 고집했다. “문이나 가구를 만드는 사람들을 소목장이라고 하죠. 못 대신에 홈을 파서 연결하고, 본드 같은 접착제는 사용하지 않고요.” 그는 한마디로 “경순 만의 색깔이 있는 가구”라고 정의했다.

김 씨는 나무도 우리나라 소나무만을 고집한다. 나무 구하기가 쉽지 않은 초보 목수는 제일 부러운 것이 ‘나무가 한가득 쌓여있는 창고’라고 했다. “목수 일은 20~30년을 해야 비로소 나무를 다룰 수 있다고 말해요. 아직 다룰 수 있는 나무가 많지 않아서, 기회만 닿으면 온갖 나무를 접해보고 싶어요.”

그 만의 색깔이 녹아 있는 가구들은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 아우라를 드러냈다. 장식장의 문을 마치 옛날 대문의 형식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여인이 비녀를 꽂은 듯한 장식장 등 투박한 손맛과 더불어 세련된 감각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러한 가구들은 어떻게 판매되고 있을까.

   
 
  ▲ 김경순 씨의 가구는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인 아우라를 드러낸다. 나무 문짝을 덧댄 장식장이나 거북모양으로 장식한 거북장 등 세련된 감각이 돋보인다.  
 
“중국에서 원자재뿐만 아니라 완제품까지 수입되고 있어요. 따라서 일단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밖에 없죠.” 중국 수입가구 중 엔틱 장식장이 20~30만원이라면, 김 씨의 가구는 70~80만원 선이다. 그래도 장인의 가구치고는 꽤 저렴한 편이다. 청주에선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마니아들이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고 했다.
그러면 하루 빨리 홈페이지라도 오픈해홍보하라고 물었더니 “아직은 때가 안됐다”는 답이 들려온다. “제 성격인지도 모르겠는데, 천천히 가고 싶어요. 주변에서 고집스럽다고 할지 몰라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은 3~4년 후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땐 전시회도 열어야죠. 또 한계가 있으니까 주문이 밀리면 감당 못하고요.”

오랜 침묵을 깨고 한마디 말을 던지는 아내 안설해 씨. 그는 결혼하기 전 디자인 회사를 운영했고, 사진에 취미가 있어 가구를 만들 때마다 사진으로 기록한다고. “홍보가 제 전공인데, 신랑 말 따르려니까 좀 갑갑할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느리지만 단단히 가자는 데는 동감해요.”

가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최근 DIY나 리폼 등 소비자가 직접 만드는 가구가 유행하고 있다. 비교적 가볍고 편안하게 나무를 조립할 수 있어 인기가 좋다. 그에 반해 김 씨의 가구는 무게도 무겁고, 둔탁하다. 이번에는 안 씨가 설명에 나섰다. “요즘 가구는 99%가 필름지를 부칩니다. 우리나라는 각양각색의 필름지가 너무 발달해서, 합판 위에 붙여도 감쪽같죠. 원목이 주는 참 맛을 알지 못하고 가격만 따질 때는 안타까워요. ”

원목은 대물림을 할 수 있는 가구다. 이러한 원목가구는 기후와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형된다. “평면작업을 하다 입체 가구를 만들 때, 마치 덩어리 덩어리를 놓는 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원목가구는 시간을 머금고 주인과 함께 늙어가는 것 같아요. 물이 배어도 자연스럽게 얼룩을 만들어내죠.”

숨을 쉬면서 시간의 흔적을 담아내고 있는 가구는 또 하나의 생물일지도 모른다. 김 씨는 “가구는 결국 타자에 의해 정의되고 평가받는다”고 말한다.(문의 019-607-3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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