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농민 벼를 무단으로 쌓아놓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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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이 농민 벼를 무단으로 쌓아놓은 이유
  • 임철의 기자
  • 승인 2003.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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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정미소 “재고부족 보충한다며 빌려달라 했다”
농협 “우리 소유 벼로 알고 옮겼다” 주장 엇갈려

도내ㅂ농협이 지난 3월 농협중앙회의 특별감사를 앞두고 벼의 재고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평소 거래하던 정미소로부터 농민 소유 벼를 빌려간 뒤 감사가 끝나고도 한달 이상 되돌려 주지 않다가 농민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뒤늦게 반환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말썽을 빚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따라 최근 감사에 나선 농협중앙회 충북본부는 “사실관계를 조사한 결과 ㅂ농협과 농협직원들의 비위사실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며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오히려 ㅂ농협”이라고 밝혀 주장의 진위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 12일쯤 충주시 신니면에 사는 농민 허 모씨(45)는 평소 거래해 온 충주 주덕의 J정미소(대표 김 모씨)에 600kg들이 더플백 20개 분량(1200kg)의 벼를 도정해 달라며 맡겼다. 그런데 며칠 뒤 찾아간 J정미소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자신이 맡긴 벼가 보이지 않았다. J정미소 김 대표에게 허씨가 들은 설명은 “ㅂ농협 관계자,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ㅂ농협의 위탁을 받아 잡곡을 대리 판매하는 사람이 찾아와 ‘ㅂ농협이 감사를 받아야 하는 데 재고부족이 발생해 벼가 필요하다’고 부탁해 당신을 포함해 다른 농민이 맡겨놓은 벼 중에서 600kg들이 110여 부대(6만 6000여 kg)를 잠시 빌려줬다”는 것이다.

6만 6000kg 벼 농협창고로 옮겨
어이가 없어진 허씨는 곧바로 ㅂ농협을 찾아가 벼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으나 농협측은 “J정미소에 농협이 맡겨놓은 벼가 많은데 이중 일부를 되가져온 것뿐”이라며 반환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농협에선 허씨를 포함한 다른 농민 소유의 벼를 가져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ㅂ농협 측은 이에대해 “우리는 판매 대리업자에게 농협 소유 벼를 위탁, 가공 판매하는 만큼 대리업자에게 감사에 대비, 재고를 맞추라고 지시했을 뿐”이라며 “이 과정에서 농협 벼가 창고로 들어온 것으로 알았지 농민 벼가 옮겨졌으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농민들의 주장은 사뭇 다르다.
“ㅂ농협에 서너 번은 찾아갔을 겁니다. 농협에서 가져간 벼는 분명 농민 소유 벼인 만큼 되돌려 주는 게 당연한 것인데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우리가 계속 항의하고 정미소에서도 농협중앙회에 진정을 하자 뒤늦게 지난 5월 14일에야 반환 받을 수 있었습니다.” 농민 허 씨는 “나처럼 J정미소에 벼를 맡겨 놓았다가 ㅂ농협에 벼를 볼모 잡혔던 농민이 많았다”며 “지금도 당시 농협이 취한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항의 잇따르자 한달 넘어서야 반환”
이에 대해 ㅂ농협 관계자는 “문제가 있다면 농민 소유의 벼를 우리에게 내 준 정미소와 그 벼를 가져온 판매 대리업자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J정미소 김 대표의 진술은 농협의 설명과 정면 배치해 누구의 주장이 옳은 지 혼선을 일으킨다.

김씨는 “지난 3월 평소 도정 일과 관련해 거래를 해 오던 ㅂ농협 대리 판매업자가 찾아와 ‘감사를 받기 위해 재고 부족분을 채워야 하니 벼를 빌려달라’고 해서 감사기간에만 잠깐 빌려주기로 했던 것”이라며 “분명한 건 당시 농협이 재고 부족분을 채워야 한다며 600kg들이 더플백 110 여 개 분량의 벼를 무게도 재지 않고 황급히 가져갔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ㅂ농협의 위탁을 받아 잡곡류를 대리 판매하고 있는 관계자가 찾아와 600kg짜리 더플백 100 여 개만 있으면 감사를 통과할 수 있다는 말을 분명히 했으며, 아울러 그가 가져간 벼는 농협 보유분 벼가 아니었다”며 “더군다나 농협이 우리 정미소에 보관하고 있다는 벼는 지난 3월초 나를 찾아온 농협의 대리판매업자가 ‘ㅂ농협이 받게될 농협중앙회의 특별감사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하니 J정미소가 농협 소유의 벼를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관증을 써달라’고 사정해 ‘찰벼 52만 3232kg을 비롯해 찹쌀 1785kg, 일반벼 13만 3697kg을 보관 위탁받았다’는 허위내용의 보관증을 작성해 건네준 사실이 있다”고 주장해 역시 진술의 진위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판매대리업자와 J정미소가 한 일”
이에대해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해당 농민과 정미소측의 진정이 있어서 3월말 특별감사에 이어 지난주 해당 농협에 대해 재감사에 나섰다”며 “하지만 감사결과 ㅂ농협의 잡곡류 판매대리업체와 J정미소간에 채권채무관계에서 이번 일이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을 뿐 ㅂ농협과는 무관한 사건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J정미소와 ㅂ농협(또는 농협중앙회)간 둘 중에서 한쪽은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이번에 본의 아니게 한달여 동안이나 벼를 잃어버린 셈이 된 농민들은 “백보를 양보해 농협의 주장이 일리가 있더라도 해당농협이 가져간 벼는 분명 그들의 소유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정미소와 농협(또는 판매 대리업자)간 어떤 채무채권관계가 있는 지 모르지만 농협이 농민 소유의 벼를 버젓이 농협 창고로 옮겨 한 달이 넘게 보관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이런 점에서 J정미소 역시 농민들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우리 소유의 벼를 농협 측에 건네준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ㅂ농협은 “J정미소는 찹쌀까지 도정할 수 있는 정미소로 ㅂ농협의 잡곡 판매 대리점에서 맡겨 놓은 우리 벼가 J정미소에 상당량이 보관돼 있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다만 판매 대리점측에서 J정미소로부터 받을 돈을 현물인 벼로 받아 이를 농협으로 가져온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ㅂ농협측은 “그러나 이런 사실조차 우리로서는 한동안 모르고 있다가 해당농민 등이 진정을 하는 바람에 사실 관계를 파악, 민원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되돌려 주었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J정미소측은 “판매 대리업자 K씨와 채권채무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채무상환 차원에서 K씨에게 벼를 내준 것은 결코 아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내가 농민 소유의 벼를 내주었겠느냐. K씨가 나에게 ‘감사를 받을 때까지 벼를 잠깐 빌려달라’는 요청을 해와 벼를 잠시 빌려줬던 것”이라고 항변, 여전히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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