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검찰의 ‘작품 구매’가 남긴 파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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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검찰의 ‘작품 구매’가 남긴 파장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8.07.2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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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합격' 윤리적으론 '불합격'
지역 미술계 미술품 구매대행이 빚은 관행 논란
작품비에서 제반 비용 및 후원기금으로 적립해

미술품이 공공기관에 걸릴 때는 어떠한 절차를 밟아야 할까. 구매자인 공공기관이 ‘취향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구매한다고 치자. 그 다음 청주시 미술품심의장식위원회를 통과하면 이 모든 절차가 끝나는 것일까. 이러한 구입과정은 현재 법적인 테두리에는 ‘합격’일지 몰라도, 그 윤리적 절차를 놓고는 ‘불합격’도장을 면키 어렵게 됐다.

   
▲ 청주지법과 청주지검의 미술장식품 구매는 특정예술단체에게 일임하면서 이뤄졌다. 이로인해 예술단체는 구매관련 일처리를 대신했다. 사진은 청주지법이 이번에 새롭게 만든 갤러리 모습.
최근 청주지방법원과 지방검찰청의 신청사 이전과 관련해 미술장식품 구매를 놓고 지역미술계가 들썩였다. 두 공공기관이 공모를 거치지 않고 청주미술협회, 청주예총, 충북예총에 각각 일부 미술품 구매를 일임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공정성 시비로 이어졌다.

“기증인줄 알고 작품 냈더니…”
본사에 팩스 한 장이 도착했다. “이번에 서예작품을 낸 작가다. 법원 기증인 줄 알고 흔쾌히 낸 작품인데 매입되었다는 보도를 보니 황당하다. 가난한 작가들이 재료비를 받지 못한 상태인데 마치 모두 작품비를 받은 것처럼 보도된 것은 작가에게는 인권적인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청주지법은 지난 4월 초 청주예총 김동연 회장과 청주미술협회(이하 청주미협)에 각각 서예와 문인화 및 미술품 구매를 의뢰했다. 청주예총 김동연 회장은 본인을 비롯한 서예인 15명의 작품가격으로 50만원에서 400만원까지 매겼다. 총 금액은 1500만원이다. 15명은 청주미협과 한국미협소속이지만, 대부분 ‘(사)해동연서회’출신이다.

서예인 A씨는 “4월 초 전화를 받았을 때는 ‘법원에 작품을 기증’한다는 얘기만 듣고 작품을 냈다. 작품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들은 적이 없으며, 계약서를 쓴 적도 없다. 작품은 5월 초 해동연서회 사무실로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원에 작품이 걸린다는 것은 개인적인 면에서는 홍보도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작품을 기꺼이 냈다”며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서예인 B씨는 “60호 크기 작품을 주문했고, 작품비가 따로 있다고만 들었다”고 했다. 반면 서예인 C씨는 “기증, 매입인지는 들은 바 없고, 전화 한통으로 작품을 내달라는 얘기만 들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서도 차후 답변을 들은 적이 없다. 공모를 거치지 않고 진행된 게 문제다. 법원이 이번 구매 작품의 전면무효화 및 공모를 통해 작가들과 개별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동연 해동연서회 회장은 “청주지법으로부터 구체적인 예산이 한정적인데 어느 규격에 몇 개 정도가 필요하다고 의뢰를 받았다. 전지 크기 이상으로 작품을 내라고 했고, 시간이 없다보니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또 국전초대작가 레벨에서 작품을 골라 안배했다. 개별 작품비를 따로 알려주지는 못했는데, 가격이 확정적이지 않았을 뿐이다”고 답했다.

구매대행비가 아닌 제반비용이다
그렇다면, 예술단체가 미술품 구매 절차를 대행한 것은 하나의 관행일까. 청주미협은 “지난 청주예술제 기간에 예총발전기금 마련 전시회를 열었을 때 법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작품을 관람했고, 이들이 일부 전시 작품을 선택해 거래가 이뤄졌다”고 답변했다. 또 충북예총은 “청주지검으로부터 작품구매 문의를 받아 지난해 말 지역향토작가들로 구성된 30여명의 리스트를 작성해 넘겼다”고 설명했다.

실제 청주지법의 경우 청주미협 작가는 24명, 작품은 총 27점이다. 그 가운데 홍병학(1점), 박영대(2점), 민효기(1점)씨의 작품은 별도의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다. 청주지검은 자체 청사건립추진위원회를 통해 향토작가 8명의 작품을 6000만원에 구매했다.

그리고 청주미협과 충북예총, 김동연 회장은 이러한 구매절차에 필요한 일들을 대행했다. 이들은 “법원 관계자들이 일일이 개별 작가와 계약을 맺는 게 어렵다고 말해 기본적인 일처리를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청주미협은 ‘미협발전기금 마련전’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만큼 작품비에서 10만원을 후원금으로 잡았다. 이번에 작품을 낸 D씨의 경우 “작품비 80만원에서 10만원을 빼고, 또 액자 값 20만원을 제외하면 50만원이 남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솔직히 작품이 안 팔리는 것보단 팔리는 게 낫고, 또 법원에 걸린다는 자부심이 있어 냈다”고 말했다. 청주미협은 작가들과 일일이 계약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다.

또 지난해 말부터 충북예총과 청주지검의 구매논의가 오갔다. 충북예총 측은 “도록 및 향토재경작가 명단을 뽑고 몇 차례 회의를 거쳤을 뿐만 아니라 심의자료(500만원 상당), 작품 운반비 등등 그동안 1300만원 상당이 ‘제반비용’으로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충북예총도 작가들의 작품비에서 일정부분을 ‘대행 비용’으로 공제할 수밖에 없고, 이미 작가들과 합의된 사항이라고. 계약서는 청주지검이 작가들과 일대일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 충북예총이 총괄했다. 한편, 작품비용은 청주시 미술 장식품 심의가 통과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체 지급이 안됐다.

“미술인으로서 솔직히 회의감 든다”
이미 미술품 작품 구매와 관련해 청주민예총과 청주미협이 한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상반된 입장표명을 한 데 이어 미술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지역미술인들은 “양 단체의 이권싸움이라는 지적부터 방관자적인 입장, 지역미술계에 대한 회의감” 등등을 토로한다.

미술인 E씨는 “청주미협을 통해 구매문의가 들어왔지만, 후배들을 위해서 양보했다. 결국 작가 자신의 선택의 문제일 뿐 이렇게 논란이 커지는 건 지역미술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미술인 F씨는 “젊은 미술인으로서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한마디로 절망적이다. 모든 미술관련 위원회를 주름잡고 있는 사람들이 또한 이번 문제와 관련돼 있다. 공모를 통한다하더라고 공정하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희망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청주민예총은 “공모를 거치지 않는 작품 전부를 전면 무효화하고 재공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지난주 청주지법에 낸 질의답변서가 도착하는 대로 예술적 방식으로 저항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다.

일단 지난 6월 19일 청주시 미술장식품 심의위원회에서 청주지법은 ‘환희’외 60점, 청주지검은 ‘남도하정’외 7점이 ‘재심의’ 판명이 내려졌기 때문에 앞으로 열릴 재심의에서 어떠한 결정이 내려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재심의는 외부조형물과 외부 작가 도성욱 씨의 작품을 제외한 문제가 된 모든 미술품이 해당된다. 또한 청주시는 재심의에 이번 위원들이 다시 심의를 할지, 아니면 이 문제와 관련 없는 위원들이 심의를 할지 결정 내리지 못했다. 한편, 젊은예술인연대는 재심의가 이뤄질 때 부당성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계획중이라서 이번 논란이 쉽게 잠잠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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