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가 안 통하는 ‘충청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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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가 안 통하는 ‘충청도 정치'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3.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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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전문가 그룹 독식으로 영향력은 상대적 반감
내년 총선, 정치적 편식현상 극복 과제

국회의원은 누가 해야 더 효율적인가. 이런 원시적(?) 물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자체가 생경할 것이다. 그러나 그냥 넘길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충청권의 정치적 편식현상 때문이다. 노무현정권의 정체성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주창한 소위 민주화 세력의 주류화다. 민주화 그룹의 정치세력화는 국가 변혁의 가장 확실한 동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충청권의 사정은 다르다. 민주화 그룹의 정치적 부상이 여전히 억제되고 있는 것이다.

충청권에서 민주화운동의 적자가 국회에 진출한 경우는 전무하다. 영남이나 호남 등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아주 두드러진 현상이다. 이로 인한 지방 정치권의 불균형이 중앙무대에서의 발언권을 위축시킨다는 위기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충북의 경우는 특히 심하다.

도내 국회의원들의 성분은 대부분 전문가 출신이다. 고위 관료를 지낸 행정가이거나 변호사로 상징되는 법조계 인사들이다. 김종호(비례) 홍재형(청주 상당) 정우택의원(괴산 진천 음성)이 전자에 속한다면 윤경식(청주 흥덕) 이원성(충주) 심규철의원(보은 옥천 영동)은 후자에 해당된다. 중앙 정치의 큰 축을 이루는 민주화 그룹에 속하는 국회의원은 한명도 없는 것이다. 충북 출신으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인사들은 예외없이 타지에 둥지를 틀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인영 김영환(전 과학기술부장관) 유인태(청와대 정무수석) 김성호(민주당 의원) 이재정씨(민주당 전국구) 등이다. 87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인영씨(전대협 11기 의장)는 충주 출신으로 충주고(39회)를 졸업했지만 서울 구로 갑지구를 지역구로 갖고 있다. 연세대에서 학생운동을 주도한 김영환의원은 괴산이 고향이지만 그의 지역구는 경기도 안산이다.

제천 출신 유인태 정무수석과 영동출신 김성호의원 역시 서울 종로와 강서 을이 지역구이고, 진천이 고향인 전국구 이재정의원은 현재 내년 총선과 관련 낙향여부로 고민하고 있지만 그의 정치배경은 역시 수도권이다.

반쪽 국회의원, 반쪽 영향력
이에 대해 학생운동 출신인 연철흠 청주시의회 의원(청주대 민주동문회장)은 이렇게 진단한다. “주로 서울 등 수도권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그 곳에 눌러 앉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들도 여건만 되면 고향을 지역구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그룹에 대한 충북지방의 인식은 이들한테 당선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한다. 아직도 학생, 사회운동에 대한 보수적 시각이 여전한데다 보편적 인지도에서도 상대적 열세이기 때문이다. 만약 영호남에서 민주화 세력들의 국회진출이 많았다면 YS와 DJ의 후광에 힘입은 바가 크겠지만 충청권 특히 충북에선 이런 상징적인 인물이 없었던 것도 민주 세력들의 정치진출을 어렵게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충청권의 국회의원들이 지나치게 전문가 그룹으로 치우치고 있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중앙 정치무대에서 반쪽의 영향력 밖에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세대에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낙향, 충북연대를 이끌며 충북 민주화운동의 맥을 이어 온 노영민씨(민주당 흥덕지구당위원장)의 진단은 더 구체적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한국정치는 두 종류의 세력이 이끌어 간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행정 법조계로 대표되는 전문가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화와 인권 평화운동을 주창한 민주주의 그룹이다. 하지만 충청도에는 후자가 없다. 정치적 편식현상이 아예 굳어버린 느낌이다. 민주화 그룹들의 자체 노력도 미흡했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여의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충북 정치인들이 잘 나가다가도 한계에 부딪치는 이유를 이런데서도 찾을 수 있다. 정권 과도기 혹은 유사시에 중책을 맡는듯하다가도 중도에 팽당하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경험했다. 중앙정치권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흡인력을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세력의 부재로 빚어지는 대표적인 현상인 것이다. 한쪽 편식은 도내 국회의원들의 세력화에도 결정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전문가 그룹과 민주화 그룹이 균형을 이룰 때 이념을 중심으로 하는 응집력은 그만큼 커질 수 있다.”

“사회는 변하고 있다”
충북에서 민주 세력들의 정계진출 노력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충북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상징인 김재수씨(민노총충북본부 사무처장)는 20대의 나이로 지난 14대 총선에 출마,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소기의 목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지난 98년 지방선거에선 6명이 민주세력의 간판을 달고 출마했다가 전원 낙방함으로써 한계를 드러냈지만 이런 노력의 결실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이끌어 온 연철흠씨와 고명종씨가 각각 청주시의회의원과 충주시의회의원에 당선됨으로써 민주화 그룹의 정계진출에 한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도 민주화 세력의 정계 도전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청주 지역에선 당장 노영민(민주당 흥덕지구당위원장) 박영호(민주 중앙당 당직자협의회장, 87년 충북대 총학생회장) 유행렬(들꽃세상 대표. 89년 충북대총학생회장) 박만순씨(민주노동당 충북도지부 부위원장) 등이 꼽힌다. 이들은 지난해 대선을 기점으로 두드러지고 있는 유권자의식의 변화에 크게 기대하는 눈치다. 실제로 그동안 ‘보수’로 상징됐던 충북지역의 정치성향이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시 예상을 깨고 노무현후보가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이나, 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이 타 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이 좋은 사례다. 또한 최근 지역사회에서 역할이 커지고 있는 시민운동과 조만간 구체적 활동이 드러날 유권자운동도 민주 세력의 부상을 예고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아직 민주화 세력, 그룹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물 경쟁력만 충분하다면 민주세력의 정계진출에 원초적인 걸림돌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사회가 그만큼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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