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홍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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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홍교
  • 충청리뷰
  • 승인 2003.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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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건설박물관 손광섭 관장의 탐사연재 ‘세상의 통로 ‘橋梁’을 찾아서’22

북수문은 수원 8경의 하나로써 화홍관창으로 불려
성곽 전체를 하나의 예술적 작품으로 만들어

수원을 흐르는 하천으로는 두 개가 있는데,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연무동을 거쳐 수원 시내를 관통하는 수원천이 있고, 다른 하나는 역시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괴목정교(槐木亭橋)아래로 흘러나온 물줄기와 진목천(眞木川)의 물줄기가 정자동에서 만나 이루어진 영화천(迎華川)이 있다. 한편 성곽 안팎으로는 팔달산과 광교산 줄기로부터의 지천(支川)의 물줄기를 이용, 몇 개의 아름다운 연못을 조성해 놓았다.

방화수류정 옆의 용연(龍淵)을 비롯하여 상.하의 두남지(南池)와 북지(北池), 상.하 동지(東池)의 여러 연못들이 그것이다. ‘북지상련(北池賞蓮)’은 수원 8경의 하나로 꼽힌 명승이거니와, 북쪽에서 남쪽으로 성내를 관통하고 있는 수원천 상.하류에 설치된 두 개의 수문이 북수문(北水門)과 남수문(南水門)이다. 이 수문들은 물 흐름을 관리할 뿐 아니라 돌다리의 기능도 아울러 겸했던 선진적인 시설물이었다.

북수문에는 화홍문(선비 兪漢芝 씀)이라는 편액이 쓰이어 있다. 방화수류저의 서쪽 44보쯤 되는 거리에 있다. 광교(光敎)의 대천(大川)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어, 여름의 장마가 질 때마다 넘쳐 흐르는 물난리를 겪었는데, 성 쌓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물길을 파고 넓히고 일곱간 홍예석교(石橋)를 내 위에 걸쳐 놓았다. 그 동서가 각각 3간이고. 아래 넓이 8척, 높이 7척 8촌, 가운데 한간은 넓이 9척, 높이 8척3촌이다. 일곱문의 안팎 홍예와 서로 이어지는 부분에는 잠자리 무사를 붙였다.

그리고 한가운데에는 장구무사를 덧붙였다. 이어서 다리돌을 깔고, 다리 위의 안팎쪽에 장대석(長臺石)을 놓았다. 아래의 전석에서 다리 밑까지의 높이 8척 7촌이고 다리 두께 1척 9촌이고 장대의 높이 1척이다. 다리 넓이 31척, 길이 95척이다. 바깥쪽 장대 위에는 누조(漏槽) 일곱 개(각각 넓이 1천, 깊이 5촌)를 설치하였다. 그 위에는 벽돌을 쌓아 첩(堞)을 설치하였을 뿐 타구는 설치하지 않았다. 높이 5척 4촌, 두께 4척 8촌이고. 아래에 방안 대포 구멍 여덟(한모의 길이 각각 1척)을 뚫어 놓았다.

그리고 위에는 소포 구멍 열넷(한 모의 길이 각 7촌)을 뚫어 놓았고, 안쪽에는 다만 장대를 두고 누혈(漏穴)여섯을 뚫어 놓았다. 동쪽과 서쪽의 두 끄트머리에는 여덟 모 돌기둥을 세웠는데, 그 위에는 이무기 모양을 세겼다. 서쪽 기둥의 북쪽과 동쪽 기둥의 동쪽에는 나지막한 담을 치고 널살문을 내어 동성의 길과 통하게 하였다. 다리 위 북쪽 가까이에 누각 여섯 간을 지었는데 동서의 옆넓이 3간이고, 남북의 세로 길이는 2간, 모두 널빤지를 깔았는데, 첩의 위로 쑥 올라오게 하였다. 사면에 분합을 달고 동.서.남 삼면에는 연꽃새김이 난간을 붙였고, 난간 아래는 벽돌로 담을 둘러치고 남쪽 한가운데 한간만 터놓아서 출입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방사(放射)하는 제도는 포루와 같다. 다리 위에서 널빤지 깐 데까지의 높이 6척 2촌이다. 북쪽 분합 밖으로 물려 깐 널 위에는 전붕(戰棚)을 설치하였고 판문아래는 벽첩(?堞)과 이어지게 만들었는데 바깥쪽에 짐승 얼굴을 그리고 전총안(箭銃眼)을 뚫어 놓았다. 단확은 푸른 바탕에 진채(眞彩)는 사용하지 않았고 대들보 위는 회로 발랐다. 누의 남쪽 다리 위의 길이 넓이 5척이고, 다리 아래의 일곱 홍예에는 각각 쇠로 만든 전문(箭門)을 달아서 갈구리 달린 줄로 양선(兩扇)을 끌어 교면(橋面)까지 꿰뚫고 나갔다.

석안(石眼)에 고리를 달고 자물쇠를 달았다. 문안두 언덕의 석축은 각각 길이 6보, 높이 4척 5촌이고, 문밖의 석축의 길이는 각각 5모, 높이 5척 5촌이며, 위는 성신(城身)과 이어졌다. 전체 길이 16척이니, 이것이 실지로 내의 동쪽과 내의 서쪽이 서로 마주 서서 휘어꺾여 원성(元城)이 되었다. 두 끄트머리는 전붕과 좌우의 상거가 각각 19척이다. 여기에 또 세타구(?口)를 가진 성가퀴를 좌우에 설치하였다. 벽첩의 위는 담과 이어졌는데. 높이 각각 4척 4촌이고, 두께 2척 2촌이다.

흔히 화홍문이라고 불리는 북수문(北水門)은 장안문의 동쪽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북수문은 그 위치가 용연(龍淵)이라는 연못이 있는 곳이고, 동북각루가 놓여있는 등 비교적 경관이 아름다운 곳인 까닭에 남수문에 비하여 장대하게 꾸며져 있다. 정조 18년 2월 28일 터닦기 공사에 착수하여 8월 3일에 상량이 이루어지고, 이듬해 정조 19년 1월 13일 문루가 준공되었다. 편핵은 유한지가 썼다.

광교천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어 성내 민인들은 여름철 장마 때마다 심한 물난리를 겪고 있었으므로 성역 때 먼저 물길을 파서 넓히는 한편, 7칸의 홍예석교를 마련하였다. 북수문에는 물이 흐를 수 있는 7개의 홍예문이 설치되어있고, 그 위에는 ‘화홍문’이라는 누각이 세워져 있다. 누각은 3칸 측면 2칸의 누마루형식으로하고 초익공(初翼工)의 겹처마이며, 지붕은 5량 팔작지붕이다.

누각을 갖춘 북수문은 홍예에서 쏟아지는 장쾌한 물보라와 주위 환경이 잘 어우러져 수원 8경의 하나로 ‘화홍관창(華虹觀漲)’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해 놓았다. 홍예문 위로는 사람이 왕래할 수 있는 성가퀴를 쌓고 여러개의 총안을 뚫어 놓았다. 이곳은 성내에서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방화수류정.용지의 아름다움과 잘 어우러져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곳이다.

북수문의 누각은 평상시에는 수문.교량으로서, 비상시에는 군사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총안과 포혈을 갖추어 설계된 실용성과 아름다운 외관이 조화된 화성 성곽의 대표적인 시설물의 하나이며, 약 50개의 시설물이 저마다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성곽 전체를 하나의 예술적 작품으로 보이게 하며, 화홍문은 수문의 기능과 7칸의 수문위에 축조된 문루가 하나의 예술품으로 조화를 이루어 방화수류정과 함께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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