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록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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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록 24시"
  • 육성준 기자
  • 승인 2003.08.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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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서 밤을 지새우며

여자친구와 즐거운 데이트를 보내고 있던 지난 8월3일 일요일 오후, 후배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양길승 향응 몰카 사건으로 키스 나이트 클럽 사장이 청주 지검에 소환됐다는 내용이었다. 아쉬운 작별을 한 후 급히 장비를 챙겨 오후 4시쯤 도착한 청주지검의 현관 앞에는 중앙과 지방에서 기자 수십 여명이 몰려 와 있었고 긴장된 분위기였다. 그들은 벌써 오전부터 검찰 앞에서 기다리던 중이라서인지 조금은 지친 표정이었다.

기자도 소환된 이원호 사장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일명: 버티기) 그러나 찌는 듯한 더위와 높은 습도, 간간이 내리는 비는 낮에 내리쬐었던 열기를 식히기는커녕 팔팔 끓는 가마솥에 물을 부은 듯 불쾌지수 100이상을 체감하게 했다. 그것만도 부족해서인지 잠시라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모기떼의 공격이 지속되는 '버티기'의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밤 8시 술자리 참석자인 오원배 민주당 충북도 부지 장이 검찰로 들어서려는 것이 목격됐다.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본능적으로 카메라에 손이 가면서 준비 동작을 취했다. 그러나 오씨는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 한 채 검찰 청사 주변을 마치 홍길동처럼 뛰어 다니며 따돌려 쫓고 쫓기는 격전이 벌어졌다. 십여명의 신문 방송 보도진들도 오씨의 그림을 담으려 마치 궁지에 몰린 토끼를 쫓듯이 추격전은 계속됐고 전쟁은 5분 여만에 끝났다.
 
사진기자들은 디지털 카메라 액정화면으로 잘 찍었나를 확인하며 기자들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되고 있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라 경험이 부족한 사진 기자들은 적절한 타임을 놓친 경우도 있었고 기자의 그림도 초점이 맞고 액션이 있는 사진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 이번에는 실수 없이 짤 찍겠다는 각오로 언제 나올지 모를 소환자 들을 기다렸다.

옷은 땀으로 절어 쉰내가 나고 몸은 끈적끈적 쉴새 없이 찔러 대는 모기떼와 쏟아지는 졸음, 대기중의 상황은 어쩌면 안에서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사건의 당사자들보다 오히려 그들을 취재하려는 경쟁 속에서 살아 남으려는 사진 기자들의 치열한 모습이 더 부각되는 듯 했다.

새벽4시, 기다리던 키스나이트 이 모씨가 나왔고 30분 뒤 오원배씨도 나와 치열했던 버티기는 끝났다. 신문에는 한 컷만으로 나올 사진을 위해, 또는 방송뉴스에는 몇 초의 그림을 담기 위해 우리는 항상 현장을 지킨다. 그러나 이러한 힘든 와중에서도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런 일들은 빈번하게 겪는 어려움이지만, 역시 사진 기자로서의 사명에 대한 매력을 느끼는 순간 또한,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현장 속에서 숨쉬고 살아 뛰어다니는 모습 속에서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느낀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렇지 않다. 이것이 기자가 살아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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