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공예인의 지원책 미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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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인의 지원책 미비하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3.08.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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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11명 도지정 문화재 및 전수자
한국공예관, 전통공예품 ‘태모필’ 사업 전개

어느때부터인가 ‘공예’는 청주와 익숙한 단어가 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공예’에 대해 명확히 구분짓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공예는 순수미술과 산업디자인의 경계에 서있다. 또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옛 물건들은 ‘공예품’이고, 대학에서 근대교육을 받은 공예인구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공예작품’으로 명명된다.

그래서 대학과정을 통해 공예를 전공한 사람들은 ‘서양식 공예갗로,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통공예인’이라는 식으로 어색하게 구분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미술대학의 공예커리큘럼에서 전통공예를 학문적으로 흡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어쨌든 공예의 소량생산, 주문생산이라는 고유 특질은 21세기 문화의 다양성 흐름에 잘 부합돼 보인다. 그리고 공예가들은 산업적인 기술을 차용하기도 하고, 또한 공예품적인 요소를 가진 물품들도 날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통적인 기법을 착안한 새로운 형태의 공예품들이 오늘도 쏟아지고 있다.

전통공예인 생계유지 어려워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바로 ‘잘팔리지도 않는 작품’을 대를 이어 어렵게 만들어오고 있는 전통공예인들이다. 이들은 “대량생산체제에 경쟁력을 잃었고, 또한 92년 한중수교로 값싼 중국공예품들이 국산으로 둔갑해 버렸기 때문에 더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즉, 전통공예품은 경제논리로 따져보면 가치는 인정되나 판매는 되지 않은 가내수공업품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일찌기 자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전통공예인들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전통공예 진흥법’을 제정, 전통문화의 각 분야에서 뛰어난 기·예능을 보유자를 ‘문화재’로 지정하고 한달에 일정액을 주고 있다.

국가 중요무형문화재의 경우는 약 80만원, 도지정무형문화재는 기능보유단체 및 보유자는 50만원, 전수자는 20만원을 각각 지급한다. 이외에 산업관리인력공단에서 3년, 5년단위로 전통공예인 진흥정책이 있다. 그러나 몇해전 국가중요문화재의 경우 ‘한분야에 1명’이라는 지원원칙은 깨졌으나, 여전히 국가의 녹을 받기란 쉬운문제가 아니다. 또한 이외에 다른 지원통로는 전혀없어 문화재가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또한 이러한 지원금은 전수자 양성이 명목으로 주어지지만, 전통공예분야는 점점 사양화되고 있고, 기능보유자들은 고령화되어 다음세대에 전승여부를 계산할 수 없다. 이수자 및 전수자들 양성도 보유자에게 일임하고 있어 체계적인 활동을 확인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통공예를 배우려는 인구가 없다.

태모필은 배냇머리로 만든 붓
이같은 상황이다 보니 전통을 보전하는 데 급급할뿐, 현대적인 감각에 맞는 재창조란 허울좋은 꿈에 불과하다. 또한 이러한 전통공예품들이 정책적인 지원을 받아 소비자에게 연결되는 통로도 전무하다.

한국공예관 안승현 큐레이터는 “전통공예인 발굴과 계승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다. 한국공예관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분야의 전문인력이 부재한 상황이라서 어려운 여건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공예관은 ‘태모필’ 제작사업을 올 8월부터 연말까지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태모필’이란 생후 6개월 된 아이의 머리카락(배냇머리)을 잘라 만든 붓으로 문헌상 기록이 남아있을뿐 사라져간 전통 공예품중의 하나다. 태모필은 일생에 단 한번 만들수 있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한 붓으로 필관에는 생년월일과 덕담을 적어 놓기도 한다. 또 모필의 특성상 유전자 감식 등에도 활용될 수  기능성 붓이다. 가격은 10만원이고, 문의는 한국공예관으로 하면 된다. 268-0255

이번 태모필 제작은 모필장 유필무씨가 맡았다. 그는 “모필작업은 대략 12번의 공정을 걸치며 어린아이의 모는 지방질이 많아 이를 제거하는 데 시일이 더 걸린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 가닥의 모도 버리는 것이 아까워 원형그대로를 살려 붓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7년동안 갈필을 연구하고 복원해 매스컴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갈필은 ‘칡’을 삶아 섬유질을 추출해 만든 것으로, 그의 갈필은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하여 수상한 바 있다.“15살 무렵부터 붓을 매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붓이 참 귀해보였던 시절이었다. 모필의 역사는 2000년을 족히 넘었다. 문방사우의 하나였던 붓은 오늘날 볼펜, 연필처럼 흔한 물품이었다. 또 필관의 장식으로 신분차이를 드러내기도 했고, 풀로 만든 초필, 갈필, 죽필, 고필 등 재료에 따라 다른 질감과 느낌의 붓들이 존재했다.”

유씨는 충북도에 있는 유일한 모필장이다. 그는 “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지면서, 우리나라에서 붓을 생산해서 판매한다는 것은 이미 경쟁력을 잃었다. 그때부터 관심을 둔 것은 많이 만들어 잘 파는 것이 아닌 ‘유필무 류’의 계보를 만들 수 있는 ‘전통붓’ 재현과  재료에 대한 도전이었다. 전통공예인은 철저한 소외계층이다.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전문가도 부재할 뿐더러 이에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적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붓도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며 개인전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그것이 또한 현재 전통공예인이 취할 유일한 대안처럼 보인다는 씁쓸한 말을 덧붙였다.

충북도의 무형문화재는 11명, 공예분야는 단 3명이다

충청북도의 무형문화재는 얼마나 될까. 이국흠 충북도 문화재 연구관은 “타도에 비해 적은편이다. 몇년전 무형문화재 발굴 사업을 시행했으나, 도내에서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분야에서 30년이상 경력과 수상경력, 또 동일분야 기능보유자 중에서 단 한명을 선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재 국가중요무형문화재는 83년도 선정된 택견, 96년도 선정된 금속활자장 오국진씨 가 있다. 또 무형문화재는 92년도 ‘청주농악’을 시작으로 ‘중원청명주’, ‘보은 송로주’, ‘청원신선주’,  ‘중원 마수리농요’, ‘영동 설계리 농요’, ‘배첩장’, ‘제천 오티별신제’, ‘단청장’, ‘사기장’, ‘진천 용몽리 농요’가 순서대로 지정됐다. 그 가운데 전통공예 분야는 현재까지 배첩장, 단청장, 사기장 등 단 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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