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경찰 내무반은 총성없는 전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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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경찰 내무반은 총성없는 전쟁터
  • 이승동 기자
  • 승인 2009.02.04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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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사병에 비해 자살률 1.7배나
제대자 “잠깨스,땡겨 등 고문수준”

지난달 22일 청주에서 자대에 전입한지 일주일 된 의경이 석연치 않은 주검으로 발견되는 등 나라의 부름에 자원입대한 ‘20살 의무경찰’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와 격리돼 있는 일반군대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로운 군 생활을 하는데도 이 처럼 자살률이 높은 것은 왜일까?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의경자살률은 육군 사병에 비해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만명당 평균 자살자 수를 3년동안 조사한 결과, 육군은 1.17명이었으나 전·의경은 1.94명으로 훨씬 많았다. 물론 경찰측에서도 여러 가지 교양교육과 관리 감독에 노력하고 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속수무책이다.   

   
▲ 지난 28일 거행된 임이경의 영결식에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청주흥덕경찰서 방범순찰대에 복무중인 의경 임모(20)이경이 지난달 22일 내무반 건물 3층 보조계단에서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방순대에 전입한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구타 아니면 진상파악 어려워
임이경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시간은 새벽 5시쯤. 새벽근무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복귀하던 동료의경에 의해 발견돼 충북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6시간이 지난 이날 밤 10시40분께 숨졌다.

확증이 제시되지 못한 사건들이 대부분 그렇듯, 유족들의 주장은 구타 가혹행위에 의한 타살이나 자살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방순대 관계자는“내무반 내에 ‘구타·가혹행위’는 절대 없었다”는 엇갈리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 임이경이 추락사한 청주 흥덕서 방순대 현장

부검결과에서도, 특별한 외상이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구타·가혹 행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또 동료 방순대원들에 대한 탐문수사 결과에서도 뚜렷한 추락사의 원인은 사건발생 보름가까이 지난 상황에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 추락사 했는지 의문점은 깊어져만 가고 있다. 이 같은 의경들의 죽음은 자살이든 타살이든 괴롭힘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제로 그 원인이 정확히 밝혀진 사례는 거의 없다.

이는 괴롭힘이 내무반이라는 은폐된 공간에서 일어나고 상급자에서 하급자로 계속해서 전파돼 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임이경 뿐 아니라, 대구 수성경찰서 방범순찰대 소속 정모(20)이경도 지난해 10월 경찰서 3층에서 추락해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2시간여만에 숨졌다. 입대한지 3개월만에 추락사 한 것이다. 정이경은 아침 식사를 위해 본관 지하로 가던 중 혼자 3층으로 올라가 순식간에 뛰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부산경찰청 경찰악대 소속 김모(19)이경이 악대장과 선임자들한테 기동대 내무반과 화장실에서 집단구타를 당한 뒤 낮 12시 15분께 기동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숨지기도 했다. 경찰은 숨진 김 이경을 부검한 결과, 추락에 따른 상처 외에 외부 충격으로 의심되는 상처가 발견되자 경찰악대원 등을 상대로 당일 행적 등을 조사해 폭행 사실을 확인했다.

위와 같은 의경 자살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왜 의경들의 자살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제대한 의경들은 공포스러운 내무반생활을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전화 늦게 받는다고 구타도
제대한 의경들에 따르면, “ ‘벨이 한 번 울릴 때 전화를 못 받는다’, ‘재떨이에 까는 휴지가 정해놓은 정확한 치수가 아니다’ ‘정자세의 똑바로 누워 자지 않는다’는 사소한 것들이 구타 사유가 되는 곳이 의경 내무반이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이곳에서는 고참·후임 상호간 나름대로의 특별한 규율들을 만들어 군기를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기동버스에서 대기하는 동안 후임들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좌석 등받이에 허리를 붙이지 못하게 하는 일명 ‘잠깨스’, 내무실 바닥에 치약을 짜서 한 방향으로 30분동안 닦게하는 일명 ‘바닥돌리기’, 침상에 양반다리로 앉아 목을 뒤로 젖히고 팔을 앞으로 뻗는 일명 ‘땡겨’, 상경이 되기 전까지는 내무반에서 누워있지 못하는 등이 그 사례다.

물론 경찰서나 부대별로 다르겠지만,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일반적인 가혹행위라는 설명이다. 3년전 제대한 박모(25)씨는 “이렇게 각종 규율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후임병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상습적으로 구타나 가혹행위가 일어난다”며 “구타시에는 외상이 안보이도록 가슴을 집중적으로 때리는 것도 의경들만의 기율잡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대 내에서 나름대로 구타·가혹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마련된 소원수리 작성 시에도 후임들은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경 내무반에서는 별의별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야하거나, 간다고 해도 ‘왕따’가 될 수 있을 수 뿐더러, ‘일정
기간만 참으면 괜찮겠지’라는 아닐 한 생각 때문에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내 아들은 이유 없이 죽을 아이가 아니다”
임모이경 어머니 P모씨

지난달 23일 충북대학교 장례식장에서 만난 임이경의 어머니는 눈물마저 말라 있었다.
아들의 죽음을 믿지 않고 있는 임이경의 어머니는 “죽기전날 통화에서 설명절이면 입대 후 처음으로 만날 수 있어 좋아했다며, 내일이 첫 근무라 설레인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또“훈련소에서 ‘열심히 해보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집근처 방순대에 배치돼 아주 좋아했다”며 “구타·가혹행위가 아니면 이유 없이 죽을 이유가 없다”주장 하고 있다.

청주 흥덕경찰서 방범순찰대 K중대장
“저희 부대에는 구타·가혹행위는 절대 없습니다”

청주 방순대 지휘를 맡은 지 1년여 가량 된 중대장은 전입한지 일주일만의 일어난 의경 추락사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그는 “철저한 관리 및 감독으로 구타·가혹행위는 절대 있지 않다”며 “임이경이 처음 배치 됐을 때 개인면담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평소 생활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모멸감을 느끼는 정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뿐, 의심의 시각으로 경찰을 보지 말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함께 방순대로 배치됐던 동기의경은 “함께 자고, 청소도하며 적응기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지만, 구타도 없었고 임이경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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