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한 담배연기 속 깊은 '탄식', 짧은 '환호'
상태바
자욱한 담배연기 속 깊은 '탄식', 짧은 '환호'
  • 안태희 기자
  • 승인 2009.02.25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마인구 갈수록 증가... 가족단위 적고 싸움판도 벌어져

지난 22일 서울경마공원에 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경마장 입구부터 정체가 심각했다. 낮 12시인데도 3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에 들어서지 못한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걸 보니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경마장 인근에는 사설주차장들이 이어져 있고, 호객하는 사람까지 두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지난 해 경마장 입장객은 모두 956만 5,000명이다.

   
▲ 서울경마공원 내부 모습. 경마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기자는 다행히 카풀주차장(3인이상 승차차량만 따로 주차하는 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일요일에 취재를 한다고 하니 놓아주기는 커녕 온 가족이 따라 나섰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족들은 난생 처음 경마를 구경할 수 있었고, 나도 14년만에 경마장을 다시 찾았다.

입구에서 어른 800원짜리 입장권을 사야 한다. 입장권 구입금액중 500원은 특별소비세이며, 각종 세금이 따라 붙어 있다. 경마공원 안에 들어서니 어느새 관람건물이 하나 늘었다. 5층 정도되는 초대형 건물이 하나 더 늘었는데도, 이미 인산인해다. 경마객 가운데는 40대 이후 중년남성이 많아 보였고, 가족단위 손님들도 있었다.

14년만의 베팅을 하려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다행히 신관에 초보경마교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초보들을 위해 베팅하는 방법등을 가르쳐 주는데, 매회당 30명 정도 입장했다. 하루에 300명 이상 초보 경마객들이 이곳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나는 세 경주에 돈을 걸었다. 오후 1시와 오후 1시 55분 서울경마와 오후 1시 25분에 열리는 부산경마다. 부산경마는 경마장안에 있는 대형 LED전광판으로 중계된다.

경마는 한 경주에 한 게임만 하는게 아니다. 단승식, 연승식, 쌍승식, 복승식, 복연승식등 5가지 정도된다. 100원부터 10만원까지 걸 수 있는데, 걸 수 있는 방법이 많다보니 초보자들은 비교적 간단한 단승식(1등을 맞추는 것)과 연승식(어떤 말이든 3등안에 들어오면 배당을 받는 것)에 주로 건다.

   
▲ 999배 베팅의 유혹. 서울경마공원의 한 경주에 걸린 베팅액과 배당률

지난해 한국마사회에 대한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나온 A씨는 "한번에 10만원까지 건다고 하지만 나는 1000만원까지 건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 창구 저 창구를 돌면 더 많은 금액을 걸수 있는게 현실이다.
이날 모두 1만 2000원을 걸었는데, 5700원을 받았다. 환급률로 따지니 47.5%다. 올해부터 경마 환급률이 73%라고 하니 평균에도 한참 못미친다.

한국마사회 직원과 인터뷰를 하고 나오자 내가 건 마지막 경주가 막 시작됐다. 말들이 결승선을 통과하자 곳곳에서 한탄과 환호가 겹쳤다. 뒤에 있던 한 사람은 경주 막바지에 마번을 크게 외쳐댔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고 배당금을 받으러 갔다. 그 사람은 1등과 2등을 순서대로 맞춘게 분명하다. 그러나 상당수의 경마객들은 물끄러미 전광판을 보면서 '복기'를 하든지, 마권을 찢어버린다.

그리고 경마객들은 30분 후에 열릴 경주를 대비해 건물 안팎에서 쭈그리고 앉거나, 서서 스크린이나 경마예상지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그새 건물 한쪽에서는 한 사람이 누구와 싸우는지, 소리를 질러대 안전요원이 출동했다. 대화를 나누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를 부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연구’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한국마사회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습관성 도박자 치료센터인 ‘유캔센터’의 방문상담 내담자의 도박참여 유형을 분석한 결과 ‘현재하고 있는 주도박’에서 경마가 276명(29.1%)으로 가장 많고, 포커 155명(16.3%), 성인오락 152명(16.0%), 화투 88명(9.3%), 카지노 65명(6.8%) 순으로 나타났다. 

999배 베팅성공의 신화를 꿈꾸는 '승부사'들이 늦은 입장을 서두르는 오후 2시 10분쯤 담배연기 때문에 코를 막은 아이들과 함께 도망치듯 경마장을 나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