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이에게 빵을, 외로운 이에게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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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이에게 빵을, 외로운 이에게 사랑을…”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3.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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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 한국분원, 수곡2동에 보금자리
평상복 입고 현실에 뛰어들어, 아이들을 위한 쉼터 중단 ‘발 동동’

“우리는 아이들이 이 정도로 방치돼 있는지 몰랐다. 아이들을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이해하기 위해 가정방문을 가보니 거의 대부분 부모들에게 버림받은 상태였다. 복지관이 아니면 밥을 굶어야 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부모중 한 쪽이 도망을 갔거나 이혼을 했으며, 할머니와 살거나 혹은 소년소녀 가장세대로 저희들끼리 살고 있었다. 도망간 사람들은 십중팔구 카드빚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 PC방인데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성에 노출, 어른 흉내를 내 경악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송영란 안젤라(46)·이선재 안느마리(32)·옥희정 엘리사벳(29) 수녀가 털어놓는 우리 이웃들의 현주소다. 이들 수녀들은 ‘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 한국분원 소속으로 현재 살고 있는 수곡2동 두진백로아파트가 한국분원 사무실이다. 분원장은 영국인인 마가렛 수녀(59). 이들은 날마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10∼20명의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 집으로 가서 설거지며 빨래, 청소, 목욕 등을 닥치는대로 해준다. 지난 22일 저녁 5시, 이들은 산남복지관으로 모여든 아이들에게 일일이 저녁밥을 나눠준 뒤 껴안아주며 사랑을 확인시켰다. “수녀님“ “수녀님“ 하며 매달리는 아이들과 마치 모자·모녀관계처럼 다정하고 자연스런 것이 인상적이었다.

현실참여 성격 강한 수녀회
성당이 아닌 거리에서, 복지관과 각 가정에서 가난하고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을 거두는 모습은 ‘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 정체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 수녀회는 수도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현실에 뛰어들어 배고픔과 외로움을 치유해준다. ‘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는 지난 1840년 프랑스 동북쪽 상파뉴지방에서 밀레신부에 의해 창설됐다. 그는 버려진 환자와 고아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부치고 일을 했으며, 소속 수녀들은 가정에 들어가 환자들을 치료하고 임종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안젤라수녀는 “‘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는 유럽쪽에서만 활동하다 이태리분원에 머무르던 한 한국인 수녀가 우리나라에 소개해 알려졌다. 우리는 가정화목을 목표로 삼고, 가정에 투입돼 평화를 찾아주는 것이 임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정을 돌보기 전에 거리에 방치돼 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현재는 미처 가정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런 아이들을 보살펴주고 있다”며 한국의 노인복지는 웬만큼 이뤄졌으나 아동복지는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한국분원을 만들기 전까지 이들은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수곡2동에 정착하게 된 것은 한국인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먹고 귀국하면서 우연히 청주로 왔다가 영세민들이 많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러다보니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이 자연 비교되기 마련. 안느마리 수녀의 말이다. “유럽은 가정센터가 지역마다 설치돼 있어 문제있는 집에는 가정봉사원이 파견된다. 만일 아동학대하는 것이 발견되면 바로 아이를 데리고 간다. 장애인을 시설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키우면 부모가 직장 일을 한 것으로 인정돼 연금을 받을 정도다. 그리고 그 장애인은 집에서 언어치료사, 물리치료사 기타 필요한 사람들로부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프랑스와 한국의 복지수준 차이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장애인을 둔 가족들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오고, 아버지가 카드빚에 쫓겨다니면 아이들이 거리를 방황하는 게 ‘자연스런’ 현실이다. 안젤라 수녀는 “가정이 해체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 부분”이라며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 한국분원이 운영해온 쉼터는 많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수녀들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가정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간식과 밥을 챙겨주며 놀이를 함께 했다. 그러다보니 PC방에서 시간을 때우던 아이들이 쉼터에서 안정을 찾고 서로 정을 나눌 정도가 됐다는 것.

하지만 올 여름방학때부터 운영하던 쉼터도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로부터 민원이 들어와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 어려운 사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쉼터를 운영할 당시의 전세 4000만원을 천주교청주교구에서 무이자로 빌려왔는데 갚아야 한다. 아이들이 10여명 되다보니 아파트는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이웃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해 단독주택을 얻었으면 하는 데 막막하다. 빈 터라도 빌려준다면 조립식 건물을 올려 살 수 있을텐데…”라는 게 안젤라 수녀의 말이다.

쉼터 운영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현재 이들은 후원회(계좌번호: 조흥은행 619-04-295543, 예금주: 송영란)를 구성키로 했다. 아는 사람들이 좋은 일 한다며 알음알음 전해 준 1백여만원이 전부라서 후원회를 조직할 계획을 세웠다는 안느마리 수녀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가 처한 현실을 불평할 수 없다. 어떤 집은 학교 갔다 와서 가방 내려놓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곳에서 여러 식구가 살고, 차마 집이라고 볼 수 없는 곳들도 있다. 마음 아프고 속상한 것은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정책이지 아이들은 밝고 예쁘다. ‘저 가정은 왜 저런 문제가 생겼을까’ 하고 바라본다면 아무 일도 못한다. 그래서 오로지 아이들만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던 엘리사벳 수녀는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를 데리러 황급히 나선다. 말뿐이 아닌 실천으로 이웃사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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