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머리채를 잡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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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의 머리채를 잡은 여인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9.07.2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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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형 충북지방경찰청 차장

청주시 주성동 오리사냥
‘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누구든지 나를 보고 덥석 잡게 하기 위해서다. 내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갔을 때 다시는 나를 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의 이름은 기회다’ 의미심장한 이 문구는 이탈리아 토리노박물관에 있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조각 아래에 새겨져 있다. 기회는 예의주시하며 기다리는 사람만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사진 = 육성준 기자
지난 3월 단행된 경무관 인사에서 여성 경찰 가운데 두 번째로 ‘태극무궁화’ 계급장을 달고 승진, 전보된 이금형(52) 충북지방경찰청 차장은 카이로스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살아온 여성이었다. 이금형 차장을 17일 충북지방경찰청 인근에 있는 생오리 회전구이 전문점 ‘오리사냥(241-5292)에서 만났다.

이 차장은 “오리고기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건강에 좋은데다, 이 집은 특히 특허를 받은 3면 회전구이로 기름이 빠져 담백하다”고 귀띔했다. 이 차장은 또 “한 사람에 1만원 꼴이면 저녁에 소주 한 잔까지 해결할 수 있어 주머니가 얇은 경찰공무원에게 제격”이라며 오리 예찬으로 말문을 열었다.  

청주에서 태어나 대성여상을 졸업한 뒤 1977년 순경공채로 경찰에 입문한 이 차장이 30년 만에 경무관에 오르게 된 신화는 뜻밖에도 순애보에서 비롯됐다. 1981년 전투경찰로 군복무 중이던 남편 이인균(54·이마트 상무)씨를 만났고, 제대 후 서울로 취업한 당시의 애인을 좇아 ‘서울로 갈 기회’를 넘보던 중 본청에서 몽타주 요원 5명을 선발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에 응시해 합격한 것이다.

이 차장은 “중고교 시절 미술부였다. 탤런트 최불암씨를 그려 합격했다. 본청에 가니 여자 경사도 있었고, 진급시험을 준비하는 동료들로부터 ‘너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승진의 기회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경찰대 1,2기들과 겨룬 경감시험에서는 전국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차장은 몽타주 요원에서 시작해 경정이 될 때까지 과학수사 부서에서 관록을 쌓았고,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되면서 경찰청 초대 여성실장에 부임해 ‘성폭력 피해자 보호 치안정책’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는 피해여성이 경찰에 출두하지 않고 병원에서 검사와 조서작성까지 원스톱으로 끝냄으로써 사각지대에 있던 피해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2006년 마포경찰서장으로 재직 시에는 유치장에 수감된 유치인이 자살하는 위기도 있었다. 이때 유치장 벽에 벽화를 그리는 등 각종 심리안정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충북에 부임하자마자 도내 5개 유치장에서 이를 실현했다. “총경 때에는 1개 경찰서에서 가능했는데, 경무관이 되니 도내 전역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자부심이다.

이쯤 되면 경찰 이후의 ‘꿈 너머 꿈’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방송대에서 학사, 동국대에서 석·박사를 마친 이 차장은 주저 없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강단에 서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차장은 딸 셋을 뒀는데 일하는 엄마, 공부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온 큰딸 소라(27)씨는 행정고시에 최연소 합격했고, 월반 등을 통해 카이스트 박사 과정에 있는 둘째 진아(25)씨는 최연소 박사학위 취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차장은 “육아의 6할은 시어머니가 담당했고 나머지 4할만 내 몫이었다. 그 4할도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는 엄마로서 역할모델을 보여준 것이 전부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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