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줏돈은 양잿물보다 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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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줏돈은 양잿물보다 독하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9.09.0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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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원 장학금 회향한 보현사 원봉스님

우암산 보현사의 소박한 사찰음식
사찰음식이 맛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혀끝에 감기는 얕은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얼큰하거나 매콤한 자극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음식에서 빠지면 안 되는 파, 마늘, 부추 등 이른바 ‘오신채(五辛菜)’도 들어가지 않으니 그저 밍밍한 맛이다.

사실 사찰음식은 맛으로 먹는 것도 아니다. 발우공양을 하기 전에 ‘바른 생각으로 육신을 지탱하는 약을 삼아 도를 이루고자 먹노라’며 ‘오관게(五觀偈)’를 외우는 것은 수행을 위해서 먹는다는 의미다.

그래도 솔직히 사찰음식은 맛깔스럽다. 속가에서는 보름에나 먹는 각종 나물이며 튀각 같은 특식을 맛볼 수 있어서도 그렇지만 일단 된장 맛부터 다르다.

청주대 뒤 우암산 초입에 있는 한국불교태고종 보현사 주지 원봉스님과 겸상을 했다. 특별히 주문한 밥상이 아니라 재를 마치고 신도들과 함께 먹는 자리였기에 수수한 점심상이려니 예상은 했지만 유난히 소박한 점심이었다.

그래도 스님 밥상에는 진귀한 버섯류라도 한 접시 오르기 마련인데, 오히려 옆 상에는 있는 고사리, 콩나물 무침도 없었다. 식사 뒤 마신 차 한 잔도 종이컵에 플라스틱 반찬그릇이 잔 받침이었다.

다른 것이라고는 스님의 밥그릇이 오래된 놋그릇이라는 것과 스님 밥만 잡곡밥이라는 것이었다. 원봉스님은 “나는 된장이 없으면 밥을 못 먹어. 그 중에도 시래깃국이 최고야”라며 밥 한 그릇을 국에 말아 뚝딱 비웠다. “콩 한가마 반으로 된장을 담그는데 모자라서 사먹을 때도 있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그래도 매일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스님이 좋아하는 특식은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밀어서 만든 칼국수였다. 스님은 “예전에는 쌀이 귀해서 하루 한 끼는 꼭 칼국수로 먹었다. 60년대에는 칠석불공 때도 신도들이 칼국수를 삶아서 불전에 올렸다”고 회상했다.

원봉스님과 점심상을 마주하고 앉은 것은 스님이 지난 달 자신의 법명을 딴 ‘원봉장학회’를 설립하고 3억원을 현찰로 쾌척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보현사가 꽤 부자절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스님 얘기로 “뭐 ‘아는 소리’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유식하게 법문을 잘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신도가 많은 것도 아니다. 초파일에도 연등을 1500개 이상 달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억원이라는 거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왕소금’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알뜰살뜰 절 살림을 챙겨왔기 때문이다. 원봉스님은 “어른 스님들로부터 ‘시줏돈은 양잿물보다 독하다’는 말을 들었다. 기도도 재산도 모두 다 남을 위해 돌려주고 가는 사람이 큰 사람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사실 3억원을 모은 것도 대단하지만 그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스님은 이에 대해 “11살에 조실부모하고 산문에 들어가면서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돕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고 밝혔다. 

10월8일 속세 나이로 칠순을 맞는 스님은 이날 기금 가운데 일부로 20명에게 50만원씩 모두 1000만원을 지급하고 ‘회향’이라는 이름의 법문집도 발간할 예정이다. 스님은 기금 10억원을 채우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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