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원 교수 |
그런데 새로 만들어진 신채호의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선생과 부친 신광식 모친 밀양박씨만 기재되어 있어 단재선생은 가족도 없이 혈혈단신 홀로 일생을 산 사람으로 되어 있다. 최근 단재선생의 손자가 자신의 부친이자 선생의 장남인 신수범씨와 선생의 친자확인소송을 통해 장남의 가족 관계등재가 가능해졌으나 법적으로는 그도 모친을 알 수 없는 사생아에 불과하다.
가족을 부양할 여유마저 없던 힘든 베이징시절에도 단재선생은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고대 우리 민족의 계보와 영역을 추적하는 일에 매달렸다. 고대 동아시아의 강대한 문명국으로서 중국민족을 비롯한 주변민족과의 투쟁에서 여러 차례 승리한 부여-고구려계통의 종족을 주족(主族)으로 설정하고 그들이 토착종족들은 정복하면서 고대국가를 수립하고 발전시켜 나간 과정과 객족(客族)인 지나족, 선비족, 말갈족, 여진족과의 투쟁과정에서 진화해간 모습을 규명하였다.
우리가 드넓은 만주지역을 우리 고대사의 주무대로 인식하는 역사의식은 단재선생이 만주를 거점으로 활약한 부여족과 고구려족을 고대 우리 민족의 주족으로 내세운 것과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단절되고 잊혀진 고대 우리 민족의 기원과 맥락을 찾아내 그 흐름을 복원시킨 단재였지만 후세는 그의 이산가족 하나 합쳐주는 일도 반쪽 복원에 그치고 말았다.
위대한 역사의 실패자들과 단재
단재선생은 기존의 사대주의나 식민주의 역사서술은 우리역사에서 비범한 인물들의 실패의 역사를 비웃거나 지워버리고 소인배들의 성공의 역사만 찬미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단재선생이 생각키에 역사상 성공자는 약아서 쉽고 만만한 일만 붙들어 성공했지만 실패자는 담력과 관찰력과 의기가 남보다 백배나 강해 남이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일을 하다가 실패하기 마련이었다고 하였다. 그들은 불에 맞닥뜨리면 불과 싸우고 물에 맞닥뜨리면 물과 싸우며 맨손으로 범을 잡고 맨몸으로 총알과 겨루는 인물들로 10분의 9가 실패한다고 하였다.
우리역사에서 남의 눈치를 보며 위험한 대목은 피해가면서 작은 성공을 거둔 자들을 단재선생은 ‘쥐새끼’라고 폄하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의 행적만 기록한 대표적 역사서술로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꼽고 그 폐해를 심각하게 지적하였다.
나라가 망하게 된 것도 진정한 애국자들이 나오지 못하고 매국노들이 득실거리게 된 것도 사대주의자들이 쓴 그 같은 역사의 악영향 때문이고 이러한 영향아래서 머릿속에 나라라는 글자는 그림자도 없는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심어 줄 수 있는 길은 오직 올바른 역사를 읽히는 방법 밖에 없다고 강조하였다.
▲ 단재 신채호 선생 |
희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암울한 식민지 시대, 반도땅과 2000만 동포를 고스란히 일제의 손에 잃는 식민지 조선의 선비인 단재선생이 한반도는 물론이고 이미 오래전에 남의 나라 땅이 되어버린 만주까지 시야에 넣고 새로운 역사체계를 위해 쏟아 부은 피와 땀은 역사상 또 한사람의 위대한 실패자의 등장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위대한 역사의 실패자들. 그러나 그들의 빛나는 영혼은 오늘도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남아 꺼지지 않는 민족혼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누가 진정한 역사의 승리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