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여가, 커지는 일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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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여가, 커지는 일중독
  • 충북인뉴스
  • 승인 2009.09.0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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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고려대 교수, 조치원 마을 이장

   
정부는 8월 18일,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개발 계획을 밝힌 ‘5대 민생 지표’를 분야별로 선정해 발표했다. 그 5대 민생 분야란 소득, 고용, 교육, 주거, 안전 등이다. 이 지표들은 “국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측정”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국민행복지수’의 바탕도 된다.

그 배경엔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가 있었다.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이 겉으로 나타난 경제 지표와 달리 악화되는 점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강부자’ 정권이라 비판받는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일견 고마운 일이다. 혹시라도 9월 3일, 정부를 비판하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새로운 총리로 내정한 것도 이런 맥락과 상통할까?

실제로 한국인의 1인당 소득은 1960년대에 비해 250배 이상 늘었지만, 실생활에서 삶의 질에 대한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0.69보다 크게 낮은 0.45로, 최 하위권이다. 소득 증가가 삶의 질이나 행복도를 바로 높이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취지로 설정한 5대 지표를 잘 살펴보니, 막상 실질적으로 삶의 질을 느끼게 하는 지표는 빠져 있다. 그것은 ‘삶의 시간’과 관계된 것이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행복’하게 살고 싶다. 행복한 삶을 위해선 기본적으로, ‘식·의·주’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지만 다음으론 ‘삶의 질’이 올라가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삶의 여유’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나중엔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여유롭게 음미하며 사는 것, 즉 ‘삶의 여유시간’이 중요하다. 이것은 곧 공부시간이나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하는 것이며, 노동 외 다양한 활동을 알차고 즐겁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인의 여가시간은 아주 보잘 것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리뷰’에 따르면, OECD 18개국의 여가시간 당 유급근로시간 비율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1.0으로 멕시코(1.3), 일본(1.2)에 이어 3위였다. 꼴찌에서 3등이란 뜻이다. 실 근로시간 비교에서도 한국은 세계 최장의 근로시간 그룹에 든다.

심지어 대통령조차 ‘워커홀릭(일중독)’을 좋아한다 하니, 할 말 다했다. 그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최근 8·31 청와대 개편의 하이라이트라 하는 윤진식 정책실장은 공인된 워커홀릭이라 한다. 그는 재경부 과장과 실장 시절,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놓고 일할 정도였다.

지난 1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임명된 이후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매일 출근했다. 휴가도 하루만 다녀왔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은 과로로 인해 치아 상태도 좋지 않다고 한다. 또, 청와대에서 일하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과 원세훈 국정원장도 비슷한 스타일이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일중독자는 나날이 늘고 있다. 직장만이 아니다. 가정이나 학교도 마찬가지다. 어른만 아니라 아이들, 노인들도 일에 중독된다. 직장의 일중독자는 설사 휴가를 가더라도 일중독 패턴을 반복하기 쉽다.

두 가지 그림이 있다. 하나는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기는 갔는데, 노트북이나 서류 뭉치,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계속 직장 일만 생각하고 처리한다. 배우자가 하도 화가 나 “차라리, 회사 가라, 나 혼자 쉬고 갈래.”한다. 다른 하나는, 휴가를 가서 일정을 짜는데도 새벽부터 밤까지 ‘빡세게’ 짜 ‘허겁지겁’ 다녀야 겨우 일정을 소화해내는 경우다. 휴가조차 높은 성과를 내려 한다. 휴가 ‘때문에’ 더 지치고 만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노동시간과 일중독은 늘어가고, 반면에 삶을 음미하거나 충분히 쉬는 시간은 줄어간다. 이런 현실을 방치한 채, 삶의 질을 논하거나 국민행복지수를 논하는 것은 또 다른 쇼나 이벤트로 그치지 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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