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함께 버무린 시인의 ‘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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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함께 버무린 시인의 ‘자장면’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9.12.30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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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중국음식점 ‘천리향’

몇 차례의 전화끝에 도종환 시인(56)을 만났다. 2009년 12월 26일 세밑, 뭔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은 분주한 토요일 이었다. 한 1년 정도 만나지 못했으나 시인은 마치 어제 본 듯 그대로였다. 지난 2008년 2월부터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아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관계로 도 시인을 만나기가 무척 어려웠다.

“중학교 때 미술대회에 나가면 미술선생님이 자장면을 사주셨다. 그런데 그 게 그렇게 맛있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중국음식점 ‘천리향’(043-288-9600)에서 약속을 했다. 용암동 김수녕양궁장 들어가는 길 입구에 있는 이 식당은 이름이 참 아름답다. 향이 천리를 간다니 생각만 해도 향기가 나는 것 같지 않은가.

먹을 게 귀하던 시절 먹던 자장면 맛이 날리 만무지만, 도 시인은 맛있게 먹었다. 그는 “자장면은 옛날 생각이 나서 좋다”며 “오늘 먹는 자장면도 맛있다”고 말했다. 사실 자장면처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음식은 드물다. 중국집에서 아무리 훌륭한 요리를 먹어도 마무리는 자장면으로 해야 제대로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약방의 감초’처럼 빠져서는 안되는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 시인은 미술에 소질이 있어 미술대학에 가고 싶었으나 돈이 많이 들어 포기한 ‘아픈 기억’이 있다. 그 대신 돈이 가장 적게 드는 충북대 국어교육과를 택해 그는 국어교사가 됐고, 또 시인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선택이 오히려 훌륭했으나 어린 마음에는 그림공부 포기하는 게 아쉬웠을 것이다.

전교조 교사로 교직을 그만둬야 했던 그는 복직했다가 다시 아이들 곁을 떠났다. 무리한 활동으로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의사는 2003년 그에게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시인은 교직과 문학에 관련된 각종 대외적인 직책을 정리하고 피반령고개를 넘어 보은군 법주리에 정착했다. 현재 그 곳에서 7년째 요양 중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 2008년부터 대외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인은 시골집으로 들어가 시인 본연의 모습으로 살기를 원했다.

“작가회의 사무총장 일이 내년 2월에 끝나면 다시 시골집에 들어가 공부하고 글 쓰고 싶다. 몇 가지 변수가 있지만, 조용히 내면이 깊어지는 시간을 갖고 싶다. 내년 1월에 산문집 한 권 내려고 교정을 보고 있고 시집도 펴낼 계획이다.” 시골집은 그에게 있어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건강을 회복했고, 그 곳에 있는 동안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과 산문집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동시집 ‘누가 더 놀랐을까’ 등을 발간했다. 모두 찬사를 받은 작품집들이다.

요즘 도 시인의 주변에서는 그를 내년 충북도교육감 선거 후보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곧바로 “전혀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문학을 통해 현실사회를 변혁하는 활동은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정치에 나서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고 소신을 밝혔다. 교육감 출마를 권하는 주변사람들 때문에 여간 피곤한 게 아니라는 그는 “시인으로 살 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고 재차 말했다.

도 시인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한 시간씩 명상을 한다. 하루종일 피곤에 절어 지내다가 명상을 하면 상쾌해진다는 것이다. 도 시인의 2010년 새 해 계획은 무엇일까. “시골 집에 들어가 시 쓰는 것”이다. 이처럼 간단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한 구절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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