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역사문화교육 어때요?
“각 지폐와 동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역사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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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사문화교육 어때요?
“각 지폐와 동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역사 공부하자”
  • 충청리뷰
  • 승인 2003.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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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하는 역사기행 (23)

먼저 책부터 한 권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행복한 청소부’라는 외국 그림책인데요. 혹시라도 ‘에게! 웬 그림책. 우리 아이들은 이미 다 컸는 걸!’하질랑은 마십시오. 고학년이나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니까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독일에 거리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가 있었다. 그 거리는 작가와 음악가들의 이름을 따서 이름 붙인 길이다. 바흐에서부터 하이든, 모차르트 또는 괴테, 실러를 비롯한 수 많은 예술가들의 표지판이 나열돼 있거나 그들의 이름을 딴 광장이다. 주인공 청소부는 늘 한결같이 광장을 쓸고 표지판을 닦고있다. 그런데 어느 날, 청소부가 열심히 표지판을 닦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엄마 저 아저씨가 글자의 선을 지워버렸어요’라고 말한다.

‘어디?’하던 엄마는 아이에게 말해준다. ‘아니야. 저 글루크라는 글자가 맞단다. 네가 말한 글뤼크는 행복이란 뜻이지만 저 글자 글르크는 작곡가 이름이란다.’ 청소부는 이날 큰 충격을 받는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늘 코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다는 점에서. 청소부는 ‘이대로는 안되지’ 하면서 그날부터 음반을 사서 듣고, 도서관을 다니며 한 사람 한사람의 예술가에 대해 차근차근 공부해나간다. 어느덧 그가 표지판을 닦으며 예술가들에 대해 설명을 하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명한 대학에서 강사로 초빙하지만, 거절한 청소부는 여전히 표지판을 닦으며 문화해설을 하는 것 삶을 살아간다.”

어떻습니까? 배움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누구에게 주입되는 지식보다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해 자신이 필요한대로, 느끼는대로 알아가는 과정. 또한 우리들도 예전의 청소부처럼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는 문화적 소재를 무의식적으로 지나치고 있지는 않는가요?

행복한 청소부를 아이들과 함께 읽은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청주 시내 한복판 청원군청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가서, ‘율곡로’라고 써있는 도로표지판을 올려다보게 했습니다. ‘이율곡’ ‘신사임당’을 모르는 아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대대의 집안에 비치된 위인전집에도 빠져 있지는 않은 인물이지요. 그러나 ‘율곡로’라는 거리 이름이 왜 거기에 붙어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율곡로’ 표지판을 보고난 다음 청원군청 안, 옛 청주동헌 앞으로 갑니다. 율곡 선생이 중앙 행정만 보다가 처음으로 지방 행정을 경험한 곳입니다. 비록 십여 개월 정도 밖에 근무하지 않았지만 율곡 선생은 청주 목사로서 굵직한 일 하나를 남깁니다. 서원 향약을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향약의 보급은 십만양병설과 함께 율곡 선생이 한 일 중에 중요한 일로 역사책에 나옵니다. 율곡 선생이 이 곳에 근무했다는 흔적은 또 있습니다. 청원군청 정문 옆에 보면 ‘栗谷先生 手植松’이라고 써있는 오래된 비석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아이들의 고개가 주억거리기 시작하지요.

그 다음 가는 곳은 중앙공원입니다. 중앙공원 복판쯤, 망선루 앞엔 커다란 비석이 있습니다. 검은색 돌에다 흰 글씨로 새겨 놓은 건데요. 거기에는 좋은 일이란 어떤 것이고, 나쁜 일이란 어떤 것이며, 이웃과 가족과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글이 빼곡이 적혀 있습니다. 입을 모아 함께 서원향약을 읽어본 아이들은 이제 돌아서서 맞은편 망선루를 건너다봅니다. 여기서 아이들의 상상력이 꿈틀꿈틀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선생님 저 망선루에서 서원향약을 만들던 율곡 선생이 술 먹으며 머리를 식혔겠네요?”

그런 다음 하는 활동들도 재미있습니다. 환난상휼, 덕업상권 등 어려운 한문으로 된 향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그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지어보게 합니다. 옛날 이야기로 꾸밀 수도 있지만, 요즘 아이들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로 꾸미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들이 죽고나면 청주에 너희들의 이름을 딴 어떤 거리, 광장 공원 등이 생길까?” 그러면 아이들은 이내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정말 신나게 하는 활동이 있습니다. 왜 오천 원짜리 지폐 있잖습니까? 거기 그려진 사람이 바로 율곡 선생이잖습니까. 오천 원짜리 두 장을 스캐너로 컬러 복사해서 한 장은 그대로, 다른 한 장은 율곡 선생 자리를 공백인 채로 아이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율곡 선생의 캐릭터를 그려보게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의외로 인물들의 특징을 잘 잡아냅니다. 율곡 선생이 어떤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인상평도 잘 씁니다. 이 때 또 한 번 저는 아이들의 기를 살려줍니다. “만약에 너희들의 얼굴이 돈에 새겨진다면 무슨 일을 해서 얼마짜리 돈에 새겨지겠니?” 스캐너를 복사한 나머지 한 장의 오천 원짜리는 바로 아이들의 이 가상의 화폐에 쓰입니다.
 그리고는 또 슬슬 공부를 시작합니다. 이 참에 각 지폐와 동전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거기에 새겨진 인물들에 대해서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해 차례로 알아가게 합니다.
 이런 식으로 역사문화 공부를 하면 이미 공부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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