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싹수있는 야당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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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싹수있는 야당이 되려면”
  • 김영회 고문
  • 승인 2004.0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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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야당 한나라당이 중대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두 차례의 대선에서 패배한 뒤 내우외환이 겹쳐 창당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떼기파동으로 당의 이미지가 복마전이 된데다가 소속의원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의원들, 단체장들이 탈당을 해 옮겨가고, 자살을 하는 등 악재가 잇달고 있습니다.

당 밖에서 들려오는 호된 비판의 소리도 수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군이나 다름없던 보수논객들마저 독설을 퍼부어 댑니다. “한나라당은 싹수가 노랗다”(소설가 이문열)느니 “후궁처럼, 첩처럼 살기로 작정을 했나”(방송인 전여옥)라느니 “명예도 국익도 버린 기생(寄生)정당”(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이라느니, 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언짢은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옵니다.

결론부터 말해 한나라당은 너무 오만했습니다. 다수의석으로 원내 제1당이 돼 무서운 것이 없었던 게 화근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도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이 오히려 패착(敗着)이 되었습니다. 힘을 과신하다보니 시대적 변화에 등한했고 자체 개혁에 소홀해온 것이 실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도 변하고 국민도 변하는데 그걸 모르고 현실에 안주해 미몽을 헤맨 것이 오늘 이런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의원들이, 도지사가, 시장이 배신자소리를 마다 않고 당을 떠나고 본거지 광역시장이 자살을 택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이문열의 표현대로 ‘싹수’가 노랗기 때문이 아닙니까.

국정의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집권당에 있습니다. 하지만 야당이라고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다수당이라는 원내 구조로 볼 때 제1당인 한나라당의 책임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실언이나 즐기며 국정혼란을 부추겨 오지는 않았습니까.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줄은 모르고.

노무현정부 1년 동안 우리는 한번도 한나라당의 협력을 보지 못했습니다. DJ정권 5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협력은커녕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뒤통수치는 일을 다반사로 해왔습니다. 무소불위의 힘을 과신하면서 말입니다.

정책을 제시해 국민의 공감을 얻으려하기보다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전이나 일삼으며 뒷덜미 잡기, 발목 걸기를 능사로 해오지 않았습니까.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공포에 떨던 군사독재시절에도 야당은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탄압이 심했지만 재야단체도, 지식인들도 야당을 사랑했습니다. 야당은 국민의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한나라당은 어떻습니까. 국민의 사랑을 받습니까. 지식인들이, 시민단체가 지지해줍니까. 50, 60대의 보수 층이 있다고요? 영남이? 보수신문이 있다고요? 하지만 50, 60대는 이미 한나라당을 지켜 주기에는 힘이 부칩니다. 텃밭인 영남도 요즘 와 민심이 이상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조건 편을 들던 보수신문들도 논조가 바뀌고있고요.

이제야말로 한나라당은 환골탈태하여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죽고자하면 산다’는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마음을 비울 때 한나라당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눈앞의 당리당략에만 눈이 멀어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를 되풀이하다가는 살아남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후안무치한 서청원석방결의안이 그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물이 없는 곳에 물고기가 살 수 없듯 국민의 사랑이 없는 야당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국민은 눈만 뜨면 싸움이나 벌이는 야당이 아니라 비판하고 견제하되 정책으로 경쟁하는 ‘싹수있는 야당’을 원합니다.

지난 해 11월 최병렬 대표가 노무현대통령의 특검거부에 항의해 단식농성을 하던 현장에 한 시민이 찾아와 방명록에 이렇게 쓰고 갔다고 합니다. ‘虛其心 實其腹’이라고요. “정치란 마음을 비우고 백성을 배불리 해주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 인줄 압니다.
                                                                           /본사고문 kyh@c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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