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감사가 불러온 공직비리 복마전
상태바
느슨한 감사가 불러온 공직비리 복마전
  • 경철수 기자
  • 승인 2011.03.09 0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민 혈세 주식투자·유흥비로 '펑펑'…잇단 공직비리 군민 상실감
"전자결제 시스템 믿을 수밖에"… "꼼꼼히 따지는 대면결제 보완"

   
▲ 감사원은 지난 1년 동안 잇단 공직비리가 터진 영동군에 대해 지난달까지 각종 회계서류 일체를 제출받아 군청 2층 소회의실에 특별 감사장을 마련하고 각종 회계감사를 벌이고 있다. 이는 오는 15일쯤 마무리 될 예정이다.
지난 2일 영동군청 외벽에는 '군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새롭게 태어나겠습니다'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나붙었다. 바로 전국 공무원 노조 영동군 지부(이하 전공노 영동군지부)가 자정노력을 다짐하며 내 걸은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공무원 공금횡령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마치 공무원 공직비리의 복마전이 된데 대한 사과의 뜻이다. 앞서 지난달 1일에는 공개사과와 더불어 자정결의를 밝힌 바 있다.

영동군은 지난해 4월 용산면사무소 여직원 나모씨(29)가 2000여만 원을 횡령한 뒤 대전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해 자살 한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 건설교통과 기능직 10급인 백모씨(28)가 유가보조금 7억 9000여만 원을 빼돌렸다가 경찰에 검거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 영동군보건소에서 근무하던 전모씨(행정 7급)는 재활치료센터 공사비와 의약품 구입비 등 10억 3700여만 원을 횡령한 뒤 잠적해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시작됐다.

감사원은 12명의 특별감사팀을 꾸려 영동군청 2층 소회의실에 특별감사장과 제보 창구까지 마련했다. 우선 지난달 말까지 제출받은 각종 회계서류 일체를 살펴보는 한편 오는 15일까지 각종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에 나선 뒤,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군은 이번 감사를 앞두고 상수도사업소 청원경찰 우모씨(39)가 지난해 납부 받은 연체수도요금 1600만원을 군청계좌에 입금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10일 뒤늦게 입금하기도 했다.

또 재무과 직원들이 지난 2∼3년 동안 관용차량 유류비 등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30여 차례에 걸쳐 2000여만 원을 빼돌려 회식비 등으로 사용한 정황을 잡고 감사 중이다. 또한 감사를 앞두고 지난달 18일 양강면사무소 박모씨(농업 7급)가 갑자기 연락을 끊고 잠적해 경찰이 소재 파악에 나섰다. 경찰은 박씨가 주식투자로 큰 손해를 봤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또 다른 공직비리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특별감사팀은 아직 비리정황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전했다.

"느슨한 감사시스템 시·군협의 보완"
사실 이번 영동군 공직비리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결혼을 앞두고 돌연 자살한 용산면사무소 여직원의 경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정도로 가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사원 특별감사를 불러 온 영동군보건소 전 씨와 잠적한 박 씨는 평소 주식 투자를 하면서 큰 손해를 보거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전 씨가 짧은 기간 동안 수차례 자가용을 바꿔 왔다는 진술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확보했다"고 전했다. 또 이들의 비리는 인사이동으로 후임자가 업무인계를 받는 과정에서 각종 비리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영동군과 상급기관인 충북도의 감사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냈다. 자체 감사를 통해 사전에 차단했다면 군민의 혈세가 공
무원의 유흥비로 탕진되거나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또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 공무원에게 회계업무를 맡겨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영동군 기획감 사실 김명훈 감사담당은 "피감기관으로서 할 말은 없지만 짧은 기간에 작정하고 공금을 유용하는 것을 막을 재간이 없다"며 "특히 지방재정(e-호조) 결제 시스템이란 것이 전자결제로 모든 것이 이뤄지다 보니 이중서류를 꾸며 관리하다 보면 직원을 믿지 않을 수 없다. 대면결제 시스템이면 관련 서류를 꼼꼼히 따져 보겠지만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동군 건설과 직원이 유류비를 착복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 2008년이고 재무과에서 회식비로 사용한 것도 2007년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부실 감사에 대한 책임은 비켜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영동군 재무과 정환웅 과장은 "전임 근무자 시절 발생한 일로 감사원 감사가 끝나봐야 사실여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감사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도 조경선 감사실장은 "시·군 감사에 대한 문제가 있다면 관계자 논의를 거쳐 보완책을 마련하고 공직윤리 확보를 위한 공무원 직무교육 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감사원 특별감사팀 관계자는 "각종 의혹만 증폭 시키는 것 같아 2일 가지려던 감사 중간발표는 철회했다"며 "오는 15일 모든 감사 일정이 마무리 되면 감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서울에서 관련 발표를 하겠다"고 전했다.

"성실한 대다수 공무원도 기억해 주길…"
영동군 공무원 노조 인적쇄신·자정노력 다짐

난계국악, 포도, 와인으로 유명했던 영동군이 수심이 가득하다. 최근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공직비리로 특별감사를 받으면서 '비리 군'이란 멍에를 뒤집어쓰게 생겼기 때문이다. 영동에서 낳고 자라 20여년 이상 영동군에서 공직생활을 한 공무원은 지난 수십 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공직생활이 요즘처럼 창피한 적도 없었다고 속내를 털어 놓기도 했다.

비리 군으로 낙인이 찍히면서 안부 차 물어 오는 '너는 괜찮냐''너도 해 먹은 것 아니냐'는 전화가 가슴에 상처로 남기 때문이다. 더욱이 낮에는 군청에서 퇴근이후에는 구제역 방역 초소에서 업무는 업무대로 일은 일대로 하면서 비리 군이란 낙인 때문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다는 것이다.

'느슨한 감사''견제 기능을 상실한 의회''도덕적 해이에 빠진 공직 윤리' 등 모두가 지적을 받아야 하겠지만 일부 공직 비리가 대다수 열심히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사기마저 꺾어서는 안 된다 의견이다. 이는 행정 서비스의 질 하락으로 최종적으로 군민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란 우려다. 하지만 누구보다 상실감에 빠져 있는 군민들도 창피하긴 마찬가지다.

영동군 읍내에 사는 한 군민은 "타지로부터 전화를 받는 것은 우리도 매한가지다"며 "공복이란 표현도 있지만 공무원은 영동군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이런 잇단 공직비리가 고향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는데 대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공노 영동군지부 임기철 지부장은 "도덕 불감증에 빠진 공직 전반에 쇄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며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는 대다수 공무원도 있음을 알아 달라"고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