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도는 충청도당 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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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도는 충청도당 히스토리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1.05.12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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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민은 자랑스럽다. 유일하게 지역정당을 가진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정당은 이념을 토대로 창당되고 유지된다. 한나라당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영남이 확고한 지지기반이지만 그렇다고 한나라당을 영남당으로 부를 수는 없다. 민주당 계보도 전통적으로 호남강세지만 두 정당은 늘 수도권을 놓고 늘 각축전을 벌여왔다.

이에 반해 충청도에는 지역정당이 계보를 잇고 있다. 스스로도 충청도당임을 자임해 왔고, 충청도 밖에선 당선자를 내지 못했으니 ‘진짜 충청도당’이다. 영호남은 한나라·민주로 양분돼 있으니 그렇다 치고 강원도나 제주도에 지역정당이 있었느냔 말이다.

충청도당의 효시는 JP가 1995년 창당한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이다. 자민련은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 내 민주계가 JP의 2선 퇴진을 요구하자 공화계가 탈당해 만든 정당이다. 자민련이 뜨자 충북까지 녹색바람이 불었다. 창당과 동시에 치른 1회 동시지방선거에서 주병덕 후보가 도지사에 당선됐고, 김현수 청주시장, 변종석 청원군수를 배출했다. 다른 곳에선 겨를이 없어 후보를 내지 못했을 뿐이다.

이듬해 15대 총선에선 충북을 싹쓸이했다. 청주 상당에 구천서, 흥덕에 오용운, 충주에 김선길, 보은·옥천·영동에 어준선, 진천·음성에 정우택 등 8개 선거구 가운데 5곳을 석권했다. 제천·단양에선 안영기 후보가 700여표 차로, 청원에선 오효진 후보가 불과 300여표 차로 졌으니 녹색태풍은 보통 거셌던 것이 아니다.

자민련→국중당→선진당+심대평

그러나 충북에서는 거기까지였다. JP의 고향은 충남 부여. 알고 보니 대전·충남당이었기 때문일까? 충북에서 영향력을 상실한 자민련은 2006년 소멸했으나 국민중심당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공주의 심대평과 논산의 이인제가 투톱이었다. 본류에서 벗어난 얘기지만 이인제는 17대 국회 4년 임기 동안에만 무려 5번(자민련→국민중심당→민주당→중도통합민주당→민주당→통합민주당) 당적을 옮긴다. 그는 ‘다 노무현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18대에는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어찌 됐든 투톱은 정치9단 JP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2008년 창당과 함께 국민중심당을 끌어안은 자유선진당이다. 그 중심에는 한나라당 후보로 두 차례 대선 출마, 무소속으로 2007년 대선을 치른 이회창 대표가 있었다. 그는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의 고향인 예산을 정치적 고향으로 삼았다.

선진당은 국민중심당 이상이었지만 자민련만큼은 아니었다. 12명의 지역구의원 중에 이용희(보은·옥천·영동) 의원을 빼면 모두 대전·충남이다. 참, 충청도당은 하나 더 있다. 심대평 의원이 2008년 4월 선진당을 탈당해 만든 현역 1명의 초미니 정당 국민중심연합이다.

그런데 이회창 대표가 9일 대표직을 사임했다. 언론은 충청권 정당의 위기 속에서 새 판 짜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과 선거연합을 하거나 일부 세력은 흡수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당의 명맥유지가 한나라당의 반(反)충청 기조에 대한 반사이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충청도당의 역사는 지겹게도 쳇바퀴를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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