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람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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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을 죽였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1.11.0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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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희라는 배우가 있다. 개그맨인지 영화배우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이름만 보고 여배우라 착각하는 독자가 있을 듯싶어서 사진을 싣는다. 이렇게 생긴 배우다. 지난 5월 개봉한 코미디영화 ‘체포왕(감독 임찬익)’에서도 그는 감초역할을 했다.

실적경쟁을 벌이는 마포경찰서와 서대문경찰서에 번갈아 나타나 “내가 사람을 죽였다”며 난장판을 만드는 역이다. 그는 미제사건이 발생한 날짜와 피해자의 이름까지 줄줄이 꿴다. 그러나 경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의 실체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핵심이었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내가 돈을 줬다”고 주장했던 두 사람이 있었다.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와 곽영욱 전 대한통운 대표다. 한 전 대표는 한 전 총리에게 “현금과 외화 등 9억여 원의 정치자금을 줬다”고 주장했고 곽 전 대표는 “5만 달러를 줬다”고 털어놓았다.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는 제보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검찰이 눈독을 들이고 달려든 것까지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문제는 이같은 핵심진술조차 간수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수사진행 상황을 언론에 흘려가며 말이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상황에서 곽영욱 사건을 터뜨렸지만 지난해 4월 무죄판결로 일단락됐다. “5만 달러를 직접 줬다”고 진술했던 곽씨가 “돈을 행사장 의자 위에 놓고 왔다”고 진술을 번복한데 따른 것이다. 한만호 사건은 곽영욱 판결 직전에 압수수색을 하면서 별건수사로 시작된 것이다.

법익 약속한 ‘플리바게닝’ 아닌가

검찰에게 있어 결과는 곽영욱 사건보다 참혹하다. 한 전 대표가 2차 공판 때부터 “돈을 준 적이 없다”고 진술을 180도 뒤집었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또 “재기를 하기 위해서 검찰의 도움이 필요했다. 불법으로 조성했던 9억원의 비자금이 있었고 이 비자금은 다른 공사를 위해서 사용됐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재판부는 10월31일 이 사건 1심 공판에서 “한 전 총리가 한 전 대표에게 9억원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 뿐”이라며 “검찰진술은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을 뿐더러 법정 진술 또한 번복하는 등 일관성이 없어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임의성이 증거능력을 부정할 정도에 이르지 않아서” 유일하게 증거로 받아들인 검찰진술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검찰에 협조하는 진술을 하게 된 데에는 ‘수사에 협조하면 가석방 등의 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남 모씨와의 면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남씨는 한 전 대표를 구속으로 이끈 분양사기사건의 관련자료 대부분을 쥐고 있는 인물이란다. 재판부가 검찰수사에 수사기법으로 ‘회유’를 이용하는 이른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을 이용했거나 적어도 ‘무책임한 진술’에 매달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화에선 임원희가 웃겼지만 이번 사태에서 웃음거리가 된 것은 검찰이다. 배우가 웃기는 것은 환영받을 일이지만 조롱받는 검찰은 자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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