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비오는 날 산길 오를 땐 무당도 외롭고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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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 “비오는 날 산길 오를 땐 무당도 외롭고 처량하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2.02.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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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무렵 신병 앓아 무당이 된 권나래씨
정치인들 러시 “그래도 신점이 최고 아닌가요”

양손에 각각 부채와 종을 든다. 화려한 종소리에 귀가 멍멍해진다. 보살은 점사를 봐준다는 할머니 신을 불러들인다. 몽롱한 빨간 조명과 동자승의 눈빛을 번갈아 보니 어질어질하다. 얼마 전 돼지를 이고 탔다는 작두도 눈에 들어온다.

기자의 생년월일만 말 했을 뿐인데 비교적 정확한 인생사가 드러난다. 최근에 아파트 분양받은 것까지 맞추다니, 신기하다. ‘예수천당 불신지옥’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독교 신자인 기자가 ‘취재’를 덧입고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무렵 말을 멈춘다. “그런데 무슨 말이 들리나요.”

보살은 “지금 할머니가 와서 얘기해주고 있어요”라고 답한다. 혹시 보살의 입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숨죽인다.

그 때 제단위에 올려진 장난감 자동차 ‘타요’와 키티 인형, 대형 젖병에 담긴 사탕들이 보인다. 점사를 봐주고 있는 영은 할머니와 동자, 동녀이기 때문에 그들이 좋아할 만 것들이 단에 올려져 있다고 했다. ‘타요’와 키티를 점집에서 만나다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귀가 얇은 기자는 보살의 이야기에 솔깃했지만 질문은 여기서 멈췄다. 점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점을 보는 사람을 취재하러 간 것이기에.

▲ 앳된 얼굴의 권나래씨는 벌써 무당경력이 12년차다.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단골도 있다는 그는 “신은 80%를 맞춘다”고 했다. 타로와 사주보다는 “신점이 최고”라는 말도 반복했다./사진=육성준 기자

보살도 신세가 고단하다

▲ 권나래 보살.
점을 보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무당이다. 만신, 당골래로도 불린다. 우암동 감초당 한약방 근처 천설암의 보살 권나래(34)씨는 점집도 홍보가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케이블방송 ‘엑소시스트’에 출연해 200명의 출연자 중 최종 6인에 들었다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일종의 ‘슈스케’ 방식의 오디션 무당 선발대회였다. 4년 전 할머니가 어디서 죽었는지를 맞추는 문제였는데 최종 2인에서 안타깝게 탈락했다.

그 외에도 방송사에서 출연요청이 쏟아진다. 빙의가 된 가정주부를 위해 굿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1시간 굿을 해도 방송에 나가는 것은 5분뿐이라 실망했고, 또 할머니 신이 방송 출연하는 것을 반기지 않아 다 응하지는 않는다.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을 한 그는 수저를 들 힘조차 없을 정도로 몸이 아파 결국 무당의 길을 택했다. 아버지가 과거에 교편을 잡았

▲ 할머니신이 알려준 대로 권씨는 종이위에 알 수 없는 글자들을 써내려간다.
고, 두 동생들은 엘리트라고 소개했다. “이유 없이 아프고, 갑자기 재산을 탕진하면서 마지막으로 신내림 굿을 받았죠. 그 때가 스무살 무렵이었어요. 이제 법당을 차린 지 12년도 넘었죠.”

절실한 기독교 신자인 권씨의 할머니는 아직도 손녀가 무당이 된 것을 잘 모른다. “어릴 적 옷가게도 하고, 사업도 하고 청주시내 아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무당이 된 게 창피해서 숨겼지만 지금은 다 알고 편하게 지내죠.”

그는 청주시내만 해도 적어도 1000곳이 넘는 점집이 있다고 했다. 최근에 많이 늘어났다고. 예전에 점집은 새 집을 내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동네 곳곳 점집이 있다. 사주카페와 타로 점치는 곳들도 많다. 이들은 신생아 태어나는 수만큼 보살이 생기고, 사람이 죽는 수만큼 보살이 죽는다고 말한다.

그는 천설암이 청주시내 점집 가운데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했다. 하루에 평균 6~7명이 온다. 복채는 3만원. 굿을 하면 청주는 300~500만원이고, 서울은 2000~3000만원선이라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해 겁을 줘서 굿을 강요하는 보살도 많지만, 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만 권하죠. 정말 빙의가 됐거나, 조상이 노해 일이 안 풀리는 사람에게만 얘기해요.”

권씨의 경우 웬만한 샐러리맨보다 수입이 많다. 보살은 법당에서 점만 보는 게 아니다. 적어도 한 달에 2~3번 산기도를 간다. 전국의 산을 1박 2일 또는 당일 코스로 다니고, 때로는 차가운 얼음물에 들어가기도 한다. 잠은 기도터에서 잔다. 몸 안에 함께하는 신에게 정성을 다하기 위해서다. “15일만 기도를 하지 않아도 흐려져서 점을 보지 못하죠. 끊임없이 교통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해요.”

추운 겨울 산에 짐을 지고 오를 때면 외롭고 처량하게 느껴진다. 신세가 고단하다. 그의 배낭에는 떡, 과일, 밤, 대추, 술, 사탕, 방울, 부채 등이 들어있다. 작두를 타기 전에는 숯 돌로 갈아 날을 세운다.

정치인과 점

신년에는 점집이 분주하다. 신년운세부터 게다가 올해는 ‘정치의 계절’이 아니던가. 정치인들은 점집의 단골손님이다. 그간 국회의원부터 시의원들까지 참 많이 다녀갔다. 대선이 있을 때는 쉽게 말해 대권주자 누구에게 줄을 서야 하는 지 구체적으로 묻는다. 공무원들은 승진을 묻고, 사업가는 올해 매출을 궁금해 한다. 지난번 단체장 지방선거에서는 분명히 떨어진다고 알려줬지만 호언장담하고 나온 정치인도 있었다. 물론 그는 떨어졌다.

심지어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단골손님도 있다. “신은 10번에 8번은 맞출 수 있죠. 100% 맞추는 것은 없어요. 그런데 한번 틀리면 바로 등을 돌리죠. 그러다가 또 아쉬우면 다시 찾아오고….”손님에게 서운할 때도 많다.

▲ 동자신들이 좋아한다는 ‘타요’장난감 자동차와 사탕들도 눈에 띈다.
무당도 직업이다

“무당은 미약하나마 고민을 들어주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주죠. 인간 구제중생이 무당의 일이에요. 무당은 좋은 마음을 베풀고, 경제적인 이익도 생기죠.”

무당은 기본적으로 조상신을 모신다. 12신령을 모시고 있지만 권씨에게 점사를 봐주는 신은 할머니와 동자 동녀들이다. 나라 장군으로는 박정희, 최영, 관우, 권율, 이순신, 단군 등이 있다고 한다. 맥아더 장군신도 있냐고 묻자 적어도 청주에는 없다고 한다.

무속신앙을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도 점 보러 많이 와요.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방언하는 것도 일종의 신내림 아닌가요. 천주교에서는 로마교황청에서 퇴마사를 양성한다고 하는데 왜 이리 무속신앙을 하는 무당만 멸시하는지 이해가 안돼요.” 그는 목사도 스님도 대우를 받는데 무당은 천대를 받는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양점보다는 동양점, 신점이 가장 잘 맞는다고 확신했다. “타로와 사주는 3~6개월이면 배울 수 있어 부업으로 하기 좋죠.” 그도 한때 명리학을 공부해 사주도 점 볼 때 함께 해보려고 했지만 할머니 신이 눈을 가려 글자 한자를 쓰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권씨는 지난 2009년에는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그 해 고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배우 최진실씨 등 유명인사들이 세상을 등졌다. 올해도 기이한 꿈을 꿨다. “대통령 밥상을 2번 차렸는데 다른 대통령이 또 오니 한 번 더 차리라고 했어요. 그 때 북한 고위급 관복을 입은 사람이 등장했죠.”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상을 뜬 것을 예지한 꿈이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발표가 나기 3일전 꿈을 꿨다. 발표가 이틀 후 났으니 그는 정말로 죽기 하루 전날 꿈을 꾼 셈이다.

엄마, 무당

“처음 신을 받을 땐 일상생활에서 애기목소리가 나오고, 할머니 목소리로 호통도 치니까 주변 사람들도 놀라고 저 자신도 많이 당황했죠. 지금은 공력이 쌓여서 잘 조절이 돼요.”

권씨는 9살, 5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워킹맘이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게 늘 미안하다. 아이들은 엄마의 직업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 십자수가 취미이고 원두커피를 즐겨 마신다. 미래를 위해 적금도 붓고 아는 사람들과 계도 한다. 무당도 복권을 사지만 당첨확률은 낮다고 웃는다.

그는 어릴 적 수영선수였다. 꿈을 묻자 “평범하게 사는 것 아닐까요”라고 한다. 또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영화 <청담보살>을 봤냐고 묻자 “그건 너무 코믹하고, 차라리 드라마 <왕꽃선녀님>이 현실적으로 다가왔어요”라고 한다.

그는 초파일, 설날, 칠월칠석날, 동지날에는 어김없이 회원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6시까지 영업한다. “이 세상 업을 잘 닦았으면 나중엔 신이 될 수도 있겠죠. 보살들의 꿈은 다 똑같아요. 늙어서 산 밑에 암자 하나 짓고 조용히 기도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기자의 타로와 신점 체험기, 신년운세 물으니…
올해 승진, 45살엔 여성위원장 한다고?

결론적으로 기자의 올해 운세는 대박이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점을 봤기 때문에 운세가 좋은 건지, 아니면 올해 정말로 일이 잘 풀리는지 12월 마지막 달력을 넘겨봐야 알겠지만 일단 기분은 좋았다.

▲ 명품사주를 타고 나면 명품인생을 살게 될까. ‘명품사주’에서 기자는 타로점을 봤다. 하늘거리는 커튼사이로 오늘도 누군가의 인생이야기가 오간다.

타로점은 롯데시네마 3층에 위치한 ‘명품사주’에서 봤다. 명리학 공부를 20대부터 매진한 김지영(가명·54)씨는 공공기관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40대 초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역학인으로 살게 됐다. 철학원을 운영했으며, 대형마트에서 이벤트로 5만원 이상 구입하면 50% 복채 할인 행사를 다니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롯데시네마 3층에 둥지를 틀고 사주와 타로를 봐주고 있다. 타로는 3000원, 사주는 1만원이다. 젊은 사람들이 많다보니 가격을 많이 내렸다. 타로는 학생들이 많이 본다. 학생들의 경우 애정운과 함께 진로고민이 많다. 문과, 이과 등의 선택이나 졸업 후 취업상담도 많이 한다. 그럴 때마다 “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고 강조한다.

또 연애운을 물어봐도 “지금은 공부할 시기”라고 다독인다. 타로는 독학을 통해 3일 만에 배웠다. 이미 명리학을 수십년간 공부한 터라 타로는 내용만 외우면 쉽게 익힐 수 있었다. 명리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들도 많다. 김씨는 “대학 내 평생교육원에서 명리학을 수년전부터 가르쳐왔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배운다. 일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 10장의 카드를 뽑게 한 뒤 한 장 한 장 설명이 이어진다.
김씨는 10장의 카드를 뽑으라고 했다. 그 결과 기자의 운세는 “지금까지는 운이 약해 타고난 재물운을 살릴 수 없었지만 후반기에는 재물운이 강하게 들어와 금전적으로 베풀 수 있다”고 했다.

천설암에서 본 신점 또한 재물운이 타고 났고, 올해 관운이 있어 무조건 시험을 보면 붙는다고 했다. 또 경찰과 군인을 했으면 장관이 될 사주라고(?). 45살에는 적어도 여성위원장 정도는 하고 있다고 한다. 박봉의 기자월급에 재물운이라. 게다가 여성위원장이라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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