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4월호 보도
청주∼조치원∼대전 잇는 삼각 지역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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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4월호 보도
청주∼조치원∼대전 잇는 삼각 지역 골랐다
  • 임철의 기자
  • 승인 2004.05.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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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 비화
"통일 후 서울로 복귀"... 끝내 무산된 '백지계획'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임시 행정수도 건설이 추진됐다는 얘기는 이제 더 이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 행정수도 문제를 검토하면서 통일 후 서울로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임시 행정수도 예정지를 ‘대전∼청주∼조치원’을 잇는 삼각지대로 ‘낙젼했었다는 증언이 신동아 4월호에 보도돼 이채를 띠고 있다.

이같은 증언은 그동안 박정희 정권이 행정수도 후보지로 충남 공주 장기면 일대를 고려하고 있었다는 항간의 소문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인데다, 5월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질 신행정수도 예정지 선정과정에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충청리뷰는 박정희 대통령 당시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실무자의 구술을 근거로 행정수도 이전 계획의 전말을 보도한 신동아 4월호의 기사내용을 요약, 전재(轉載)한다. 신동아에 실린 글은 김병린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68)이 구술하는 형태로 작성됐다.

“임시 행정수도 건설 외에 방법 없다”
1976년 7월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과 서울시장, 그리고 몇몇 장관이 한자리에 모였다. 무임소 장관실에서 기획한 ‘수도권 인구 재배치 기본구상’을 보고 받기 위한 자리였다. 보고 내용의 핵심 중 하나는 나와 박봉환(전 동력자원부 장관) 수도권인구정책조정실장이 작성한 임시 행정수도 건설과 수도권 대학 이전 계획이었다. 두 시간에 걸쳐 보고가 진행되었으나 긴장된 분위기 탓에 침묵만 흘렀다. 대통령이 각료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침묵을 깨지 않았다. 마침내 Y 문교부 장관이 입을 뗐다.

“각하, 행정수도 이전은 국가안보와 민생 안정상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학이 서울에 집중한 것이 수도권 인구 증가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만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연구기관이 연구 중에 있습니다.

” 그러자 박 대통령의 말이 이어졌다. “연구는 무슨 연구! 이렇게 많은 대학생이 한 지역에 몰려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고 하지 않는가. 대학만 바라보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어찌 막을 건가. 6·25 전쟁이 끝난 후에 중부 지역으로 수도를 옮겼어야 했어. 그러나 서울에 계속 머무른 탓에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야. 임시 행정수도 건설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나.”박 대통령은 단호했다. 그는 곧장 임시 행정수도 건설 구상을 승인하고 구체적인 사업계획 수립을 지시했다. …(중략)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백지계획’.
두 달간 작업끝에 박 실장과 나는 임시 행정수도 건설계획을 포함한 인구대책 보고서를 완성했다. 이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파장이 대단히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1976년 7월 하순경 대통령 보고일정이 잡혔다. 보고 상황 전말에 대해서는 나중에 박 실장이 전해주었다. 그에게 이야기를 듣는 내내 등에서는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청와대 보고를 앞두고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가 사전에 보고내용을 듣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박 실장이 총리실에 가서 보고했다. 임시 행정수도 건설 부분에 이르자 최 총리의 눈이 둥그래지면서 보고를 중단시켰다. 침착하기로 정평이 난 최 총리가 큰 목소리로 ‘이 태평한 시대에 무슨 수도를 옮긴다는 말이냐’고 호통치고 나선 것이다.

 보고를 마치고 무임소 장관실로 돌아온 박 실장은 총리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보고 내용 중 임시 행정수도 건설 부분을 삭제하라는 총리의 지시를 전했다. 박 실장은 매우 난감하고 허탈해했다.“김 과장, 어떻게 하면 좋겠소?”
난감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임시 행정수도 건설에 대한 신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냥 보고하시죠. 행정수도 내용이 빠지면 용의 눈이 빠진 꼴이 됩니다. 국익을 위한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알겠소. 각하께서 잘 판단해주시겠지.”

드디어 국무총리, 비서실장, 서울시장, 국방부장관, 건설부 장관, 국무총리, 문교부 장관, 무임소 장관 등 각료들이 대통령을 배석한 보고자리. 박 실장은 대통령에게 임시 행정수도 건설과 명문대학 지방 이전 구상에 대해 보고했다.

임시 행정수도 후보지로는 조치원, 청주, 대전을 잇는 삼각지역을 추천했다. 보고가 끝나자 참석자 모두는 숙연해졌다. 박 실장이 잡은 지휘봉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박 대통령이 박수를 치며 격찬했다. 참석자 중 박 대통령만이 반색하며 보고 내용을 세세하게 재차 확인했다.

앞서 말했듯 문교부 장관이 ‘수도 이전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논의가 필요하고 대학 이전 문제도 쉬운 일이 아니다’며 이견을 말하자, 박 대통령은 “수도 이전은 진작 추진했어야 하는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 계획은 나라의 보약과 같으니 계획대로 추진하되 절대 비밀로 하라”고 지시했다.…(중략)

박 대통령 사망 후 백지화
당시 우리가 작성한 임시 행정수도 건설의 원칙과 방법은 초고로 만들어져 1977년 12월 인쇄에 들어갔다. 이름하여 ‘신행정수도 건설 백지계획’.백지계획에 따르면 세부계획이 나오는 대로 후보지를 선정해 임시 행정수도 건설공사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박 대통령은 이 문제를 잠시 미루겠다는 뜻을 밝혔다.
임시 행정수도 건설을 위해 당시 추산으로 5조원의 예산이 계획됐었는데, 이 예산을 자주국방을 강화하는데 써야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뜻이었다.

요즘 박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백지화한 이유에 대해 여러 설(說)이 난무하지만, 박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앞세우면서 임시 행정수도 건설을 잠시 미룬 것일 뿐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박 대통령이 사망하고 신군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공사는 착수되지도 못한 채 백지화된 것이다.

비전 제시해 국민 지지 얻어야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신 행정수도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수도 이전을 위한 준비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금의 행정수도 이전계획이 일단 결정된 일인만큼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계획을 제대로 세워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당리당략에 따라 흔들린다면 부작용만 남게 될 것이다.

현재 추진중인 행정수도 이전사업에 대해 반대 의견이 적지 않지만 정부와 수도이전 실무자들이 국익의 편에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면 행정수도 이전 사업은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행정수도 이전의 차질 없는 추진을 위해 장기 비전을 제시, 국민 지지를 받고 정치적 힘을 한 데로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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