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도시 청주, 그 많던 책방은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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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도시 청주, 그 많던 책방은 어디로 갔나?
  • 윤석위 대표
  • 승인 2013.09.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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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까지 호황누린 중앙시장 주변 헌책방 골목의 추억
90년대 성안길 대형서점 전성시대, 현재는 ‘우리서점’ 유일

이른 추석이라 해도 추석은 추석인지라 아침저녁 날씨가 제법 삽상하다. 보름 전까지도 숨이 막힐 듯 무덥던 여름이 언제 있었느냐 싶다. 저녁 무렵 성안길을 걷는다.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하교한 학생들이 집으로 가기 전 무얼 하려는지 무리지어 성안길로 모여든다. 들녘 논의 참새 떼 같다. 예나 지금이나 성안길은 늘 사람들로 넘쳐난다.

▲ 청주시청 인근인 중앙시장 골목에는 길게 헌책방,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 옷가게나 음식점으로 변했는데 이젠 보문서점, 대영서점 등 세 곳만 남아 옛 향수를 팔고 있다.

1950년 무렵 청주에는 많은 학교들이 생겼다. 대부분의 초 중 고교가 이때 세워졌는데, 청주중고, 청주여중고, 청주농고, 상고를 빼곤 모두 그랬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가히 한국의 민족성이라고 할 만한 ‘유별난 교육열’에 불이 붙었다. 이는 전쟁으로 인한 절대인구의 감소를 일시에 채우려는 듯한 커다란 불길처럼 보였다. 집집마다 예닐곱 이상의 자식을 낳은 것도 당시의 의무 교육정책과 더불어 많은 학교가 세워지는 바탕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때 그시절, 청주역 부근 헌책방 애용

“제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거나 “숟가락 하나는 물고 태어나는 법”이라는 속담이 가난하고 배움의 기회가 없던 이 나라 부모를 무언으로 격려(?) 하기도 했다. 사실 큰자식이 막내둥이를 업어 키우는 모습은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했었으니….

외지인들의 입에서 ‘청주는 교육도시’라 부르게 된 것은 아마 1960년대를 지나며 얻은 이름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교육도시라는 확고한 증거물을 찾아내었으니 그것은 바로 국보4호 용두사지 철당간의 명문에서였다. 철통의 명문에 ‘학원경’과 ‘학원낭중’이라는 교육직 벼슬이름이 돋을 새김으로 나타나 있으므로 물증까지 확실한 ‘교육도시’가 된 것이다.

60년대 70년대를 지나며 전체 인구의 절반이상 학생이었던 청주는 등하교 무렵이면 희고 푸른 교복에 검정 모자를 쓴 학생들만 보이는 도시였다. 그토록 학생 수가 많았기에 책방이 많았던 것은 당연한 일. 그리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필요했던 헌책방이 많았던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70년대 말까지 청주역과 청주시청 인근인 중앙시장 골목에는 길게 헌책방이 늘어서 청주역에서 기차 통학을 하던 주머니 가벼운 통학생들을 기다렸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 옷가게나 음식점으로 변했는데 이젠 보문서점, 대영서점 등 세 곳만 남아 옛 향수를 팔고 있다.

학교, 학생, 서점 많았던 교육도시

▲ 맥도널드간판이 내 걸린 성안길 북문 쪽에 영재서림이 있었는데 70년대 초 일선문고로 주인이 바뀌어 영업하다가 남문로로 옮겨가고 다시 철당간 옆 옛 청주극장자리 옮기더니 지난해인 2012년 43년 만에 문을 닫았다. /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60년대 어느 날 청주고를 다니던 내 큰형님이 책방순례를 나섰다가 ‘보수서점’에서 “유레카!”를 외쳤던 모양이었다. 마침 형의 눈에 자본주의 경제학의 고전이라는 아담스미스의 책 ‘국부론’이 발견됐던 것이다.

그렇게 소리친 덕으로 큰형은 책값 덤터기를 썼다고 웃으며 얘기했었다. 근 오십년이 넘은 얘기인데 나와 우리집 형제들은 그 헌책방에서 산 많은 헌책들로 교양의 뼈를 굳혀 온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성안길이 된 “本町通 - 본정통, 혼마찌도리”에는 큰 새 책방도 있었다.

이젠 맥도널드간판이 내 걸린 성안길 북문 쪽에 영재서림이 있었는데 70년대 초 일선문고로 주인이 바뀌어 영업하다가 남문로로 옮겨가고 다시 철당간 옆 옛 청주극장자리 옮기더니 지난해인 2012년 43년 만에 문을 닫고 우리문고라는 이름으로 새 주인을 맞았다. 남궁병원 옆의 순천문고가 없어지고 나서 구도심에 있는 유일한 서점이 되었다. 또한 성안길 입구쪽엔 성안길 문고가 청춘남녀들의 약속장소로 애용됐다 사라져 시나브로 작아지고 없어지는 청주의 문화현실이 안타깝다.

요즘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 유명세를 탄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 그렇고 서울 청계천 헌책방 골목도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들의 마음을 길러주던 그 많은 청주의 책들은 어디로 갔을까? 골목 하나를 책으로 가득채워 ‘청주 책골목’으로 만들고 그 골목길 조금은 삐걱거리는 낡은 의자에 앉아 오래된 만화책을 골라 읽는 나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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