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재개발, 삶의 터전 잃고 공동체는 붕괴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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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재개발, 삶의 터전 잃고 공동체는 붕괴되고…
  • 육성준 기자
  • 승인 2013.10.16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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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사회적 경제로 해법찾다
1. 지속가능한 도시, 협동이 대안이다
2. 된장 담그며 도시재생 고민하는 주민들
3. 협동조합법 도시재생에 도입하는 부산
4. 알콩달콩 함께 사니 재미나네
5. 유럽의 재개발, 뭐가 다를까
6. 공동체가 살아나는 행복한 개발
7. 지역 역량을 강화하는 중간지원조직
8. 지역을 살리는 사회적 경제조직

재개발은 주택의 대량 공급과 개발이익의 창출에 초점이 맞추어져 지역공동체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특히 전면 철거방식을 통한 개발로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공동체가 붕괴되기도 했다. 이제는 과도한 개발보다는 내실있는 소규모 계획과 거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혜로운 대안 마련이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도시 재생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지역 스스로의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청주지역의 경우 현재 25곳이 재개발, 재건축, 주거환경개선, 도시환경정비 등이 정비예정구역지정으로 돼 있다. 이중 사직3구역의 경우 재개발반대대책위가 꾸려져 조합해산동의를 받고 있는 상태다.

반면 운천동 피란민촌의 경우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가 앞장서 ‘운천동 피란민촌 행복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실시해 정감 넘치는 마을로 변신했다.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떠나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직3구역

“처음에야 30평대 아파트도 주고 보상금도 준다고 해서 재개발 동의서에 도장 찍었지. 그러더니 인감까지 달라지 뭐야. 조합승인만 나면 다 해결된다고. 얼마나 친절하게 말하던지 간 쓸개까지 다 줄 것처럼 말하더라구.”

주택재개발지역인 청주시 사직3구역에 40년째 살고 있는 서춘섭 할아버지의 분에 섞인 말이 계속 이어졌다.

“난 이집에서 절대 떠나지 않아. 못 나가. 내가 이집을 어떻게 샀는데 다 늙어서 어디 가서 살어. 여기서 죽어야지.” 지난 2007년 재개발업주와 추진위 직원들은 마을 곳곳을 돌아 다녔다. 그들의 손에는 선물꾸러미와 아파트가 들어선 청사진과 조합동의서가 있었다. 655가구 중 절반 이상이 70대 이상의 노인가구인 사직3구역은 그렇게 그들의 친절한 상담에 도장을 찍었고 2013년 6월 청주시는 재개발조합 설립을 승인했다.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과 달리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으로 임대아파트를 전전할 상황이 됐다. 그러자 정든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는 생각에 마을 주민들 사이에 재개발에 반대하자고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조합해산동의서를 받기 시작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의하면 토지 등 소유자의 과반수 동의가 있을 경우 조합해산이 결정된다. 현재까지 50가구 정도 해산동의서를 받아 놓은 상태다. 하지만 이 법은 한시법으로 오는 2014년 1월 종료된다.

한편 마을을 있는 그대로 가꾸려는 도시재생 움직임도 함께 있다. 공공근로사업을 활용하여 골목길 담장에 그 집의 애환이 담긴 글귀와 벽화도 그려놓았다. 사직동에서 40년째 살고 있는 김영선씨는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도심의 주택 같지만 그 안을 살펴보면 그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녹아있어요.” 라고 하였다. 그의 집 담벼락에는 ‘홍시야 기억하니? 너도 젊었을 때 무척이나 떫었지.’ 라고 쓰여 있다. 첫 이사 올 때 심은 감나무가 2층집 높이를 넘어 훌쩍 커버렸다.

재개발저지위원회 간사역할도 맡고 있는 그는 마을 만들기에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미 토지의 3분의 1이 외지인들 소유여서 마을사람들이 부담 없이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모두들 남의 눈치만 보고 있어 일일이 찾아가 재개발 반대를 설득하기 힘들다.”며 “지금 인근 사직4 구역에는 버려진 건물들이 쓰레기로 가득 차 있는데 그곳을 재정비해서 공간을 만들면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서류상으로 오가며 갈등하고 있는 주민들과 청주시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운천동 피란민촌

서른다섯 살 때 200만원 주고 이 집을 샀어요. 살면서 이것저적 고친 거 따지면 그보다 더 많이 들어간 셈이죠. 지금은 사람들이 지붕도 만들어주고 동네를 예쁘게 만들어줘서 이사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청주시 운천동 옛 피란민촌에 45년째 살고 있는 조필 씨의 말이다.

운천동 541번지. 그곳은 6·25전쟁 중인 1952년, 피란민들의 집단 거주지 마련을 위해 군인들에 의해 임시로 조성된 마을로, 지역 주민 모두가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및 홀로 사는 노인 등 22가구가 살고 있는 동네다. 토지주는 따로 있고 주택은 무허가 건물이다.

지난 2010년 본보는 이들의 고단한 삶을 소개했고 소식을 접한 ‘충북참연자치시민연대’는 2012년 ‘운천동 피란민촌 행복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사업을 꾸려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2012년 12월 그 결실을 맺게 됐다. 땅 주인을 만나 설득하여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조립식 패널로, 회색빛 벽은 화사한 그림으로 바꾸고 보도블록 교체와 하수관로 정비 사업 등을 추진하는 등 2년 동안마을 곳곳을 변화시켰다.

운천동 피란민촌 마을 만들기에 앞장섰던 충북참여연대 오창근 사회문화팀장은 처음엔 동네 주민들의 반감이 컸다고 말한다. 그래서 먼저 어버이날 주민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을 시작으로 마을 주민들과 공감대를 넓혀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음에는 낡은 창고를 철거하고 그곳에 화단을 만들어 주었죠. 그랬더니 마을 분들이 서서히 마음 문을 열더라구요. 그래서 마을 잔치도 두 번 열었지요.”

오 팀장은 주민·민·관의 연대도 강조했다. 토지주인 서원학원을 설득했고 한전을 찾아가 노후된 전기시설의 재정비 등을 요구했다. 그 결과 청주시의 예산(4억8000만원)을 들여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조립식 패널로 교체했고 화가들과 주민들이 함께 모여 벽화도 그렸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점은 “교육청(인근 운천초)토지인 3가구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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