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앗아간 지명 ‘방아다리’ 되찾은 지 20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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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앗아간 지명 ‘방아다리’ 되찾은 지 20돌
  • 윤석위 대표
  • 승인 2013.10.1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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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문화사랑모임, 1993년 ‘오정목’ 대신 ‘방아다리’ 지명비 건립
청주 도심 ‘본정통’은 ‘성안길’로 바꿔, 한글날 맞아 20주년 행사도
지난 주, 2013년 10월 9일은 우리 민족문화사 중, 가장 큰 사건이던 훈민정음이 반포 된 지 567년 되는 날이었다. 대부분의 국민들께서 모처럼 맞는 공휴일을 즐기느라 조선 4대 임금님 이도(李淘)씨를 잊고 하루를 지내는 동안 「문화사랑모임」이라는 우리지역 문화단체에서는 상당구 북문로 3가의 북쪽 끝이며 우암동의 남쪽 개울인 교서천에 있었던 「방아다리」에서 관청 행사도 아닌, 지원 없는 순수 민간행사로 “한글 멋내기 대회”며 “아름다운 한글 간판찾기”와 “아름다운 한글작품전”을 열었다. 더불어 방아다리 지명비 건립 20주년 행사를 치뤘다.

그 날은 하루 종일 한글날을 국민 스스로 알아서 경축하라는 정부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제 강점 초기 일본인들은 한글과 조선말을 없애고 마을과 성곽을 없앴고 새로운 길들을 만들었는데 이는 지진이 잦고 습하며 고립된 섬나라라는 일본의 지정학적 한계를 벗어나 사계가 뚜렷하고 땅이 기름지며 대륙으로 통하기 쉬운 조선을 제 것으로 만들어 만대를 이어 살겠다는 그들의 숙원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청주 땅은 그 본보기가 되었다. 남북으로 길게 本町(본정-혼마찌)을, 동서로는 일정목에서 오정목까지 나누었고 동편에는 神社(신사)를 지어 그들의 神을 앉혔다. 슬프게도 그들이 물러 간 지 50년이 지났는데도 그들의 흔적은 이름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 청주문화사랑 모임의 첫 사업은 일제가 남긴 지명 ‘오정목 없애기’ 운동으로 향토사학자, 학계 전문가 등의 도움을 얻어 ‘방아다리 지명비’를 세우게 되었다. /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충북시민회’서 가지 친 ‘문화사랑모임’

1993년초, 충북참여연대의 전신인 ‘충북시민회’ 문화분과의 회원이던 나는 청주에도 제법 규모가 큰 “문화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뜻이 맞는 몇몇 회원들을 모아 “문화사랑 모임”을 만들었다.

그 모임의 첫 사업이 일본인들이 만들어 부르다 남기고 간 “오정목 없애기” 운동이었는데 다행히 향토사학자, 교수 등의 도움으로 세미나와 공청회를 열 수 있었고 바윗돌에 다듬어 뜻을 새 긴 ‘방아다리 지명비’를 세우게 되었다. 세우는 기간 동안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회원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렇게 지명비를 세운 지 꼭 20년이 지났다.
이듬해인 1994년 문화사랑 모임은 전 해 세운 “방아다리 지명비”의 戰果(전과)를 앞세워 청주시민들이 무심히 입에 달고 다녔던 본정통(本町通)도 없애게 된다. 사실 당시 청주사람들은 “그거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겠느냐!” “나는 본정통이 자연스럽다” “먹고 살기 바쁜데 애쓰지 말라”며 회원들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의 회원들은 공청회와 세미나를 열었고 시민공모절차를 거쳐 마침내 “성안길”이라는 우리 이름을 찾게 된 것이다.

▲ 1996년, 문화사랑 모임은 전국에 걸쳐 남겨진 봉수대의 흔적을 찾는 일과 그 봉수대 노선을 잇는 ‘전국 봉화제’를 충청리뷰와 함께 했다. 사진은 것대산 봉수대.

전국 봉수대 잇는 봉화제 주도

1996년, 문화사랑 모임에서는 전국에 걸쳐 남겨진 봉수대의 흔적을 찾는 일과 그 봉수대노선을 찾아 잇는 “전국 봉화제”를 충청리뷰와 함께 하기도 했는데 제주도 사라봉수와 부산 다대포봉수 남해 금산봉수 등 전국의 수많은 봉수대를 찾아 함께 올랐던 회원들의 기억과 것대산 봉수대를 복원하도록 끈질기게 요구하던 일 들이 모두 새롭다.

이제 것대 봉수대를 아는 청주시민들이 많아졌다. 어서 좋은 세월이 되어 남녘과 북녘의 여러 갈래 봉수 길을 따라 봉화대마다 봉홧불을 이어 달리게 하는 멋진 통일행사를 하고 싶다. 나이 들면 산에 오르는 일이 쉽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을 우리는 길이라 부른다. 산기슭 관목이 우거진 숲에도 토끼 길이 있고 노루가 다니는 노룻 길이 있다. 실바람도 지나는 길이 있어 그를 일러 바람 길 이라고 부르며, 비행기들도 비행운을 하얗고 길게 남기며 하늘 길로 다닌다.

길은 이 곳과 저 곳을 이어주며 길어지고 또 넓어지는데 오가던 사람들이 모여 문명을 이루는 것도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길 위를 슬슬 다니며 만든 문화가 쌓여 역사도 되는 것이 아닐까?

지난 봄부터 가을이 깊어가는 몇 달 동안 “청주 근현대사 산책”을 쓰면서 나는 내가 나고 자란 청주의 좁다란 골목들을 어슬렁거렸다.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연민과 나와 함께 사라져갈 것들 그리고 오래 남을 것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래서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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