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저미는 한(恨)이 사무쳐야 나오는 소리
상태바
칼로 저미는 한(恨)이 사무쳐야 나오는 소리
  • 충북인뉴스
  • 승인 2014.05.23 14: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후의 명작이 된 영화 <서편제>
   
강태재 충북참여연대 상임고문

때는 1960년대 초, 배경은 전라도 보성 소리재. 동호(김규철 분)는 소리재 주막 주인의 판소리 한 대목을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부잣집 잔치에 불려온 소리꾼 유봉(김명곤 분)은 그 곳에서 동호 어머니 금산댁(신새길 분)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된다. 유봉은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양딸 송화(오정혜 분)와 동호 모자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동호의 어머니 금산댁이 유봉의 아기를 낳다가 그만 아기와 함께 죽고 만다. 다시 홀로 된 유봉은 떠돌이 소리꾼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도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고 동호에게는 북을 가르친다. 동호와 송화는 소리꾼과 고수로 한 쌍을 이루며 친 오누이처럼 가까워진다.

그런데 송화가 아버지를 따라 소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 반면 동호는 걸핏하면 유봉의 질책을 받는다. 동호는 자신의 어머니가 유봉 때문에 죽었다는 원망과 궁핍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들 곁을 떠난다.

   
▲ 서편제 Sopyonje , 1993
한국 | 드라마 | 1993.04.1012세이상관람가 | 112분 감독 임권택 출연 김명곤, 오정해, 김규철, 신새길
세상은 바뀌어 서양음악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전전하며 판소리를 하는 유봉 부녀는 냉대와 멸시 속에서 생활이 매우 궁핍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명창의 길에 정진하는 유봉은 송화마저도 동호를 따라 떠나갈지 모른다는 우려와 송화를 향한 소리 공부에 집착한 나머지 약을 먹여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유봉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송화를 위해 정성을 다하지만 죄책감과 가난에 시달리다가 숨을 거두고 만다.

혼자 남겨진 눈 먼 송화는 유랑의 길에 떨어져 땅 끝 바닷가 초라한 주막집까지 흘러가고 만다.

한편 유봉의 슬하에서 뛰쳐나와 서울에서 약종상에 근무하는 동호는 송화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틈만 나면 송화를 찾아 나선다. 수없이 헤맨 끝에 마침내 송화를 찾아 낸 동호는 주막집에서 송화와 마주하게 된다. 북채를 잡은 동호가 송화에게 소리를 청하고, 송화는 상대의 북장단 솜씨로 그가 동호임을 안다.

밤이 지새도록 주고받는 소리와 북장단을 그 어떤 말로 대신할 수 있으랴! 날이 새자 동호는 서울로 떠나고, 송화는 길잡이 계집아이를 앞세우고 또다시 길 위에 선다. 한마디 말이 없이도 그들은 그렇게 모든 것을 다 토해 내고 다시 헤어지고 만다.

판소리와 가까워지게 만든 영화

<서편제> 영화를 본 지 벌써 20여년이나 지났지만 영화의 끝부분, 마침내 다시 만난 송화와 동호 두 사람이 소리와 북장단으로 주고받는 애절하다 못해 처절한 장면을 차마 잊을 수가 없다. 서로를 향한 그리움이 연민이 동호의 북장단에 이끌린 송화의 소리에 실려 토해진다. 때론 격하게 파도치듯 격랑을 이루며 때론 끝없는 심연으로 가라앉으며 서럽게 애달프게 겹겹이 쌓인 ‘칼로 저미는 사무친 한’을 풀어낸다. ‘한이 사무쳐야 나오는 소리’임을 깨닫는다.

그 당시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옆에 아내가 있었지만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펑펑 울고 흐느끼었으니, 아내는 지금도 가끔 그 때 얘기를 하며 놀림감으로 삼는다. 아내에게는 말을 않지만 지금도 그 광경을 떠올리면 울컥해지는 것을 어쩌지 못하니 놀림을 받을 만도 하다. 아무려나 서편제만큼 한(恨)의 정서를 표현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영화는 감독(임권택)과 제작(이태원), 촬영(정일성)의 오랜 파트너십 그리고 원작(이청준)이 받침이 된 조합 속에서 서편제를 위한 연기자라 할 오정해, 김명곤과 김규철 주연배우와 안병경의 노련한 연기가 더해짐으로써 원작의 작품성과 재미를 살리면서 흥행에서도 성공하고 영화상까지 휩쓴 불후의 명작이 됐다.

영화 서편제의 성공은 촬영지 청산도와 진도아리랑의 명성을 크게 높였고 판소리를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한 해 겨울 청주시립국악단이 실시하는 시민강좌에서 단가 하나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영화 서편제의 영향일 것이었다. 나이 들수록 판소리가 귀에 들어오니 머잖아 사철가 한마디쯤 불러 볼 날도 있지 않을까. 기왕이면 꽃피는 청산도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