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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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에 대한 추억
  • 충청리뷰
  • 승인 2018.10.0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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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사무실로 알아서(?) 배달되는 각종 간행물 중에서도 꼭 챙겨보는 것이 있다. 충북지방변호사회가 발행하는 회보다. 실린 내용들이 일단 흥미를 가져다 준다. 변호사와 언론인이 늘 사회현상을 좇는다는 공통점도 있겠지만 법조전문인들의 글이라서 그런지 논리적인데다 어느 땐 뜻밖의 인문학적 감성이 물씬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번 호(7호)에도 눈길을 끄는 내용들이 많았다. 회원들의 소소한 신상에 관한 것부터 법률적 전문지식에 이르기까지 비록 30여 페이지의 작은 잡지이지만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변호사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내용은 압권이었다.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이처럼 솔직담백한 고해성사도 없겠다 싶을 정도로 많은 공감을 안겼다.

굳이 변호사 윤리나 변호사 품격 등의 단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변호사라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밖으로 노출되어 평가받는 대표적인 공인의 신분이다. 일반인들은 고도의 전문지식과 공익성을 전제로 우선 변호사를 인식하려 한다. 사회적 신뢰감을 변호사만큼 원초적으로 누리는 직업도 드물다.

물론 변호사 2만명 시대(충북 168명)인 요즘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도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이같은 프레임은 여전히 건재하다. 법조3륜으로 통칭되는 판사 검사 변호사의 역학관계에서 국민적 정서상 상대적으로 여론에 덜 휘둘리는 곳도 변호사 업계다. 선출직에 도전해 성공신화를 일구거나 방송의 시사프로그램 등에 등장해 맹활약하는 변호사들이 많은 현실 또한 이같은 호의적 선입관에 근거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대접을 받는 변호사들은 정작 올바르게 행동하고 처신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 이번 회보에 실렸다. “소위 인권변호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변호사들 모두가 사회적 약자, 법률적 약자의 조력자이고 인권옹호자입니다.”(신인순 변호사) “의뢰받는 사건이 변호사에게는 일상적인 업무의 하나이지만 당사자나 그 가족에게는 평생을 좌우하는 문제일 수 있다....변호사는 단순히 법률적 조언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친구처럼, 가족처럼 따뜻한 가슴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한상진 변호사)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오래 전 일들이 떠올랐다. 충청리뷰가 성역없는 보도의 진보매체를 추구하다보니 늘 끊이지 않는 것이 기사와 관련한 법적 소송이다. 하지만 재정형편상 변호인 선임없이 이른바 나홀로 쟁송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재판부의 주선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임했는데 공판과정에서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문제의 변호사가 자신이 변호할 피고의 혐의조차 모른채 심리에 임했다가 판사로부터 질책을 받고 재판을 연기시킨 것이다.

국선인 만큼 답변서등 관련 서류를 피고 스스로 작성해 변호사 면담을 요구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번번이 거부당한 결과로 보였다. 아무리 국선이지만 저렇게 무성의할 수 있을까? 언론사한테도 저런데 일반인들한테는 어떨까?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 변호사가 이미 고인이 되었어도 불편한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또 한가지 오래 전 일이다.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검찰에 근무할 당시 그의 숙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저녁 퇴근길이어서 친구는 한 보따리 서류를 들고 우리를 맞았다. 뭐냐고 물었더니 “잡범들”이라면서 시간이 없어 집에서 일괄 처리하려 가져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폭행, 음주운전, 도로교통위반, 단순사기사건 등이 잡범이라고 했다. 내가 “비록 잡범이라도 당사자들한테는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일 수도 있으니 성의있게 봐야잖어”라고 하자 친구는 “맞는 말인데 시간이 없다”고 푸념했던 기억이 난다.

사건과 소송에 휘말린 사람들이 변호사에게 바라는 것은 딱 한가지다. 믿음으로 대해달라는 것이다. 내 말을 들어주고 진정으로 내 고민을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주변에는 여전히 “내 돈 들여서 변호사를 샀는데 오히려 내가 을”이었다는 경험담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좁은 지역사회 탓도 있겠지만 지방의 알만한 변호사들은 각 각의 성격이나 성향까지 거론되며 사석의 안주가 되기도 한다. “누구는 수임계약만 끝나면 안면몰수고 누구는 돈만 밝히고 누구는 태생적인 갑질분자이고...” 이런 식이다. 물론 의뢰인에게 법률이나 인간적인 최선을 다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정보로써 공유되는 변호사들도 있다.

소송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의뢰인이 변호사를 대하는 자세는 절대적인 믿음과 무조건 기대려는 의탁의 심정이다. 어느 땐 변호사의 말 한마디에 생사를 넘나드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일단 신뢰감이 구축되면 설령 결과가 잘못 되더라도 자신을 탓할 뿐이지 책임을 전가하지는 않는다. 인권 변호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의뢰받는 사건이 변호사에게는 일상의 업무이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평생을 좌우하는 문제일 수 있다는 신인순 한상진 변호사의 말은 백번이고도 맞는다. 결국 이를 원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변호사를 찾는다.

이 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법정에서 공판중심과 구술변론이 활성화되더라도 일반인들은 판사와 검사, 변호사 사이의 관계를 법조의 폐쇄성이나 기득권,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하던 ‘고정관념’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요즘 국가적 현안이 된 사법부 개혁 또한 남들 얘기로만 들릴 뿐이다.

“나는 어느새 의뢰인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안 된다는 논리로, 어차피 해도 안 된다는 논리로, 판례라는 이유로, 당사자들의 얘기를 듣지 않고 내 말만 하고 있는 변호사가 되어 있지는 않은지, 그런 판사들은 비난하면서 나 역시 내가 힘들고 내 마음이 괴롭다는 이유로 그런 마음을 버린 채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 또 반성하게 되었다.” 역시 이번 호 충북변호사회보에 실린 글 중의 내용이다.(권오주 변호사)

글쓴 이가 자아비판 했듯 이를 거꾸로 받아들이면 사람들이 과연 변호사한테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는지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계적인 감정이입도 좋지만 인간적인 교감을, 어차피 안 된다고 판단되어도 마지막까지 심혈을 다하며, 기존 판례를 뒤엎는 새로운 판례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의뢰인들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변호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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