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기자의 '무엇'>청주시립미술관장은 왜 사표를 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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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기자의 '무엇'>청주시립미술관장은 왜 사표를 냈나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9.05.09 09: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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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영국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아트팩토리(art-factory)열풍이 바로 이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바꾼 테이트모던을 시작으로 일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곳에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건 미술관 내 터빈홀에서 진행된 전시였다.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의 작품 ‘크랙(Crack)’은 제목 그대로 전시장 바닥을 무심하게 깨놓았다. 그것도 손을 집어넣을 만큼 깊숙이. 실제 아이들은 이곳에서 손과 발을 틈에 집어 넣으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도리스 살세도의 작품은 제3세계 여성작가가 남성중심, 서구중심의 미술계의 질서를 ‘깨는’ 작품이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른바 선진현장을 견학하기 위해 모인 전국의 기자들의 얼굴은 상기됐다. 우리들의 첫 질문은 바로 이랬다. “이렇게 미술관 바닥을 깨도 괜찮아요”“관리팀에서 뭐라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이 기가 막혔다. 미술관 관리팀이 구조진단을 해서 “정확히 무너지지 않을 정도만 깼다”는 설명이었다.

테이트 모던 탄생의 배경에는 이른바 2000년 영국 정부가 벌인 밀레니엄 프로젝트가 있다. ‘예술로 지역을 개발한다’는 기조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런던 아이’, ‘밀레니엄 브릿지’, ‘밀레니엄 돔’과 함께 ‘테이트 모던 현대미술관’을 만들어냈다.

테이트 모던의 터빈홀은 공공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미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1년에 한 번씩 작품이 바뀐다. 전위적인 작품을 전시하면서도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 퍼블릭 프로젝트는 테이트 모던의 대표적인 후원기업인 유니레버사가 지원하고 있었다.

이러한 얘기는 청주시가 갖고 있는 연초제조창과 비교해서 많은 사례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연초제조창의 모습을 봐라.

최근 홍명섭 청주시립미술관장이 사표를 냈다고 했을 때 다시 이 강렬한 기억이 떠올랐다. 만약 청주에서 이러한 전시를 한다고 하면 과연 무사히 ‘통과’될 수 있었을까. 만약 작가가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전시장 바닥을 부수겠다고 나선다면 과연 허용했을까 싶다.

청주뿐만 아니라 전국의 시립미술관들이 다 그러할 것이다. 관리팀과 학예팀은 늘 충돌하고 있고,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 결국 2년 임기에서 8개월을 남겨둔 미술관장은 청주시립미술관을 떠나면서 “청주시 문화행정이 개선돼야 한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문화행정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미술관이 도화지처럼 자유롭게 놀 수 있는 토대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산을 넘어야 할까. 앞으로도 그런 일은 안 일어날 수 있다.

어쨌든 모처럼 청주시립미술관이 좋은 전시기획으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앞으로의 공백이 빨리 메워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기획을 허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경직한 사회, 농담이 허용되지 않는 청주시 공무원 체계에 누가 ‘균열’을 낼 것인가. 시장이 모든 사안을 최종 결정하는 구조에 대해 시민들이 요즘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제기 하고 있지만 이것이 그동안 축적돼 온 청주시의 개발 행정을 뒤바꿀지는 미지수다. 이번에는 좀 화끈하게 균열을 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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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스더 2019-05-22 10:39:23
홍명섭 관장도 중도 사퇴 했고, 최근 청주공예비엔날레 핵심 인사인 기획위원장과 기획위원도 집단 사퇴했다는 소문이다...누가 그들을 청주에서 떠나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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