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용서의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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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용서의 등을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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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진(관음사 주지)
   
관음사 극락보전 앞뜰에는 지금 불두화가 한창이다. 그 은은한 향기가 방문을 열 때마다 바람결에 흩날린다. 꽃의 모양이 부처님의 머리를 닮았다고 이름 붙여진 불두화(佛頭花). 올해에도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만개한 불두화는 마치 이 날을 봉축하는 상서로운 꽃 같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부처님은 무우수(無憂樹) 꽃향기 가득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셨다. 무우수 향기가 얼마나 신비로웠으면 마야 왕비가 감동하여 손을 뻗었을까. 부처님이 탄생하는 순간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땅은 은은히 진동하였다고 한다.

만약 부처님이 이 아름다운 5월에 오시지 않았다면 봉축의 기쁨은 반감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날을 기억하고 축복하는 것은 단순히 한 인간의 탄생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밝은 길을 열어준 원년(元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 양식과 인간의 길을 보여준 여래(如來)가 오셨다는 뜻이다. 여래가 진리를 전하는 포교사로 중생 곁에 오신 날이나 다름이 없다.

중생이 태어나는 모습은 업의 그림자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 여래의 탄생은 중생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여래의 본원(本願)은 중생 구제나 다름없다. 그 본원은 중생과 마주보고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대화를 통해서 인간의 본질을 묻고 실존을 자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집과 미망이 사라지면 청정한 자신과 마주할 수 있으리라. 다시 말해서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불교는 인간이 본래의 마음자리를 놓치고 살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모순과 갈등이 심화되기도 하고, 번뇌와 고통이 끊이질 않는다고 본다. 한 마디로 내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진정한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까닭에 생기는 감정의 그늘이다.

지금처럼 인간의 자각이 필요한 때가 있을까? 인간이 인간을 외면하는 성장과 경쟁을 하는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는 까닭이다. 지금 우리의 삶은 공존의 논리가 무시되고 공멸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세상은 서로 맞물려 있는 거대한 네트워크와 같다.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연기적 구조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연기적 사고는 스스로 마음이 주인이 될 때 회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주인이 되면,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 하나의 이웃의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상생과 조화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이웃이 되는 것을 뜻한다. 알고 보면, 이러한 이웃과의 대화는 매일매일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삶의 물음표인지도 모른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中道)의 삶은 어느 한쪽에도 손을 들지 않는 적당한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적인 양극을 부정하고 가장 합리적인 자주적 행동 양식을 뜻한다. 그러므로 중도는 독선적인 주장보다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조용한 대화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가득 차 있는 대립과 갈등은 중도의 실천이 가능할 때 해소될 수 있다.

또한 부처님은 몸소 인간의 길을 걸었고 세상의 부귀와 영화가 부질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어른이다. 어느 누구보다 훌륭한 삶의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그 발자국은 우리에게 제시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다.

인간이 하나의 생을 살면서 남기고 가는 흔적은 여러 가지다. 우리가 남기는 삶의 발자국은 번뇌와 욕심으로 각인된 흔적이므로 결코 뒷사람이 따르거나 배울 것이 못 된다. 결국 뒷사람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사월 초파일은 내 안에서 그 분의 존재를 확인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연등을 밝히는 마음은 욕심과 갈등의 마음이 아니라 자비와 용서의 마음이다. 어두운 마음을 밝은 마음으로 바꾼다는 뜻이다. 마음에 환한 등불을 밝히는 일이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는 현실적 수행이기도 하다. 올 해 사월 초파일에는 감사와 발원을 담은 연등을 마음과 마음으로 밝히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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